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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3사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환경 프로그램인 SBS <물은 생명이다>가 방송 700회를 맞았다. 2001년 1월 시작해 16년째를 이어 오고 있는 <물은 생명이다> 제작진은 700회 특집으로 백두산 일대를 취재했다. 과학 측정기기 및 분석 전문업체인 영인과학의 협조를 받아 백두산 천지와 두만강의 수질 분석도 했다. 기자는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중국 백두산 일대에서 진행된 <물은 생명이다> 700회 특집 제작 현장을 동행했다. - 기자 말

"내일 아침에 비가 많이 오면 천지가 또 안 보일 수 있어요."

백두산 북파 코스에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 일행의 가이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짙은 안개와 비 때문에 카메라는커녕 육안으로도 천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한 일행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백두산 산신령님이 야속하기만 할뿐. 속이 타들어 가는 건 영상 확보에 비상이 걸린 <물은 생명이다> 제작진이었다.

백두산 서파 천지길은 1,500개의 계단을 통해 가야 한다.
▲ 백두산 서파 천지 오르는 길 백두산 서파 천지길은 1,500개의 계단을 통해 가야 한다.
ⓒ 한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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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둘째 날(24일) 일정은 백두산 등반 중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서파 코스. 또한 이후 일정 때문에 대략 하루 동안 6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물은 생명이다> 한건규 피디는 "이동 시간만큼 촬영을 할 수 없다는 얘기"라면서 "그러고도 천지를 못 찍으면 완전 허무할 것 같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제작진은 천지의 입체적 영상을 위해 드론까지 준비했었다.

방송은 영상이 생명이다. 국내 촬영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해외 촬영은 한정된 시간 동안 시청자들을 공감시킬 수 있는 영상을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관건이다. 해외 촬영은 국내보다 더 많은 돌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라서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겠지만, 30분짜리 <물은 생명이다> 한 편 만드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행은 아침 8시 30분, 버스로 1시간 30분을 달려 서파 산문 주차장에 도착했다. 새벽녘 잠시 주춤했던 비는 다시 내리고 있었다. '장백산은 아름답다'는 중국어 노래가 반복되는 셔틀버스는 높이 올라 갈수록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40여 분만에 도착한 천지 부근 주차장, 여기서부터는 목재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약 1500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고산지대로 이어진 백두산과 장백산맥의 모습이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 백두산 및 장백산맥 고산지대로 이어진 백두산과 장백산맥의 모습이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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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여의도의 3배

굵어진 빗줄기 때문에 주차장 부근 대피소 안에서는 위, 아래 우비와 신발에 비닐을 덧씌우는 사람들로 혼잡스럽다. 천지 오를 때 우산 쓰는 건 금물.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번개가 자주 치기 때문에 낙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실제 빈번하게 발생했었다는 것이 현장 가이드의 설명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SBS 오기현 부장은 내려오는 중국인들에게 천지가 보이는지 물었지만, 하나 같이 "칸부따오(看不到)", 즉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늘은 그래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던 일행의 표정이 굳어만 갔다.

1962년 김일성과 저우언라이의 합의에 의해 북한과 중국의 확정됐고, 백두산 서파 정상에는 그 경계선을 표시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 조중경계비 1962년 김일성과 저우언라이의 합의에 의해 북한과 중국의 확정됐고, 백두산 서파 정상에는 그 경계선을 표시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 한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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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파 정상에도 적지 않은 관광객이 몰려 있다. 우선 계단이 끝나는 지점 우측에 세워진 대리석이 눈에 띈다. 한자로 '중국(中國)', 반대편에 한글로 '조선'이라 새겨진 이것은, 1962년 저우언라이(周恩來)와 김일성이 합의에 따라 양국의 국경을 확인하는 '조중경계비'다. 중국 당국은 백두산 관광을 위해 일부 지점을 북측에게서 임대했다(이로써 기자는 난생처음 북한 땅을 밟아 봤다).

천지는 대략 북한이 60%, 중국이 40%를 분할하고 있다. 서파 정상에서 바라 본 천지는 여전히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나마 전날 북파 정상과 달리 힘껏 안력을 돋우면 어렴풋하게나마 천지 호수의 윤곽이 보이긴 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빗줄기가 잦아드나 싶더니 천지의 안개가 조금씩 옅어져 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와'라는 기대에 찬 탄성이 흘러 나왔다. 기자는 속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물은 생명이다> 제작팀도 천지의 모습을 담고자 분주히 움직였다. 숨죽이며 기다리기를 몇 분, 드디어 천지가 눈에 들어 왔다. 옅은 안개가 남아 있지만 녹지 않은 얼음이 호수 위에 떠다니는 모습마저도 뚜렷하게 보였다.

자료에 따르면 천지 면적은 여의도(2.9㎢)의 세배가 넘는 9.18㎢에 이른다. 평균 수심 214m,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384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깊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칼데라호(화산 호수)이다. 이곳에 담겨진 물량만 해도 우리나라 소양강댐 저수량의 약 2/3에 해당하는 20억4천만㎥에 달한다.

짙은 안개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천지가 한 눈에 들어 왔다. 우리 일행과 비슷한 시기 백두산을 찾아던 이들 중에도 천지를 못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천지 보기는 쉽지 않다.
▲ 천지를 보다 짙은 안개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천지가 한 눈에 들어 왔다. 우리 일행과 비슷한 시기 백두산을 찾아던 이들 중에도 천지를 못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천지 보기는 쉽지 않다.
ⓒ 한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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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사는 물고기는?

이 많은 물은 어디서 왔을까? 한라산 백록담의 경우 100% 빗물에 의해 형성되지만, 백두산 천지는 지하수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2001년 백두산 현장을 조사한 바 있는 이덕희 박사(58·환경보건학·영인과학 랩 프런티어 사장)는 "천지 호수는 빗물 약 38%, 지하수 62%에 의해서 형성됐다"고 밝혔다.

백두산 일대는 연간 강수량이 1500~2000mm에 달할 정도로 비교적 많은 비가 내리는데, 이 때문에 지하수가 풍부한 편이다. 천지는 물속 10m까지 보이는 투명함과 지하수의 영향으로 물의 온도가 낮은 것도 특징이다. 2001년 7월 영인과학 조사팀이 실측한 결과 5.1℃를 기록했는데, 이 정도면 거의 냉장고의 냉장실 온도와 비슷하다.

천지에는 산천어, 참붕어 등 다섯 종의 물고기가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천지는 영양물질이 부족한 빈영양 호수다. 이 때문에 물고기들이 자연적으로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북한 동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1960년~1990년대까지 두만강, 압록강, 삼지연 등에서 잡은 어류를 인공적으로 방류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추운 곳에 적응할 수 있는 캐나다 산천어 치어를 들여와 방류했다는 말도 있다. 현재는 30~50Cm 크기의 산천어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도 관찰된다고 한다.

천지부근에서 볼 수 있는 꽃으로, 6월 하순이지만 아직 녹지 않은 눈 사이 곳곳에 꽃을 피우고 있다.
▲ 백두산의 야생화 천지부근에서 볼 수 있는 꽃으로, 6월 하순이지만 아직 녹지 않은 눈 사이 곳곳에 꽃을 피우고 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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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까지만 해도 천지 산천어를 직접 잡아서 회를 치거나 매운탕으로 먹기도 했지만, 현재는 보호지역으로 설정돼 천지 접근 자체가 불가능 상태다. 그에 따라 이도백하 등 백두산 부근 식당에서 판매되는 '천지 산천어'는 진짜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물론 '앞문에서 안 되면 뒷문에서 해결한다'는 중국 현지 격언이 작용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백두산은 천지뿐만 아니라 탐방할 곳이 무수히 많다. 우리 일행이 찾은 백두산 북파 부근의 지하삼림(地下森林)은 화산활동으로 대규모 지층이 내려앉아 형성된 곳으로, 땅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과 30m 높이로 빽빽하게 들어선 원시림을 확인할 수 있다. 백두산 일대의 이런 원시림 때문에 백두산에는 각종 희귀종을 포함한 2700여 종의 식물과 호랑이, 긴꼬리올빼미 등 멸종위기 희귀 야생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백두산 북파 인근 지하삼림은 독특한 지형 속에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다.
▲ 이끼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 백두산 북파 인근 지하삼림은 독특한 지형 속에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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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오염원 분석

우리 일행은 두만강 수질 조사에 나섰다. 원래 계획은 천지에서 동쪽으로 60km 떨어진 두만강의 발원지 원지(圓池)를 조사하고자 했다. 원지 행에 대해 가장 우려한 이들은 현지 가이드와 중국인 버스 기사였다. 비가 많이 온 상태에서 내비게이션은 고사하고 이정표도 제대로 없는 밀림 속 비포장 길을 갔다간 버스 바퀴가 수렁에 빠져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이라 만약 사고가 나도 어찌할 방법이 없단다. 실제 2001년 영인과학 조사팀이 갔을 때도 밀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버스 기름이 떨어져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해야 했다. 지나가던 벌목 차량에게서 기름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도 사회면에 '집단 실종' 기사 떴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잦은 비 때문에 두만강은 황토빛으로 변했다. 50m 건너편은 북한 땅이다.
▲ 황토빛 두만강 건거 북녁땅 잦은 비 때문에 두만강은 황토빛으로 변했다. 50m 건너편은 북한 땅이다.
ⓒ 한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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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선족 표현으로 '옥녀늪'이라 불리는 원지를 포기하고, 두만강 중류에 위치해 북한과 국경을 접한 도문(图们)행을 선택했다.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 용정(龙井)을 거쳐 도문(图们)까지는 북간도 지역으로, 역사책에 등장한 익숙한 지명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비구름은 마치 우리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비를 퍼붓는 듯했다.

흥건히 젖은 만주벌판, 그 때문에 도문에서 생전 처음 만난 두만강은 노랫말과 달리 황토빛이었다. 중국 오성홍기 깃발을 단 20인승 유람선이 떠다니는 건너편으로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이 들어온다. 바로 옆 건물에는 붉은색으로 김정은을 찬양하는 글귀가 쓰여 있다. 불과 50m도 채 안 되는 거리, 그러나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서글픔이 든다.

두만강 정밀 수질 분석은 물을 한국에 가져와서 분석한다.
▲ 두만강 수질 조사 두만강 정밀 수질 분석은 물을 한국에 가져와서 분석한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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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어진 빗속에서 한국으로 가져가기 위한 채수를 했다. 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은 현장에서 고정시약을 넣어 정밀 분석을 준비했다. 두만강 상류 북한 쪽에 철광과 제지공장이 있어 수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이번 분석을 통해 일정 정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영인과학 조사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두만강 수질 결과는 7월 6일 SBS <물은 생명이다>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태그:#백두산, #천지, #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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