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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 살기 좋기는 좋은가 보다. 4번이나 쫓겨난 천덕꾸러기가 다시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 대전에 서식하는 백로 이야기이다. 대전은 백로와의 전쟁을 4번 벌였다. 항상 벌목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들고 싸움에 나선 대전시는 늘 승리했다.

그 과정에서 백로가 서식하던 녹지는 무참히 짓밟혔고 백로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백로 개체수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1500여 마리에 육박하던 백로는 2016년 200쌍 400여 마리로 반에 반 토막이 났다. 현재는 다시 카이스트 기숙사 뒤편 야산에 번식하고 있다(참고 : 생태도시 대전, 백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흰색을 좋아했던 백의민족과 외형적으로 희고 깨끗한 백로는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백로는 이런 흰색 이미지 때문에 과거부터 청렴함과 고고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시조나 그림에서 백로가 왕왕 등장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란, 고고한 백로가 까마귀랑 놀아서 되겠냐는 의미가 담긴 시조까지 있을 정도이다.

가마귀 디디는 곧애 백로야 가지마라
희고 흰 긷헤 검은 때 무칠셰라
진실로 검은 때 무티면 씨을 길히 업사리라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백로는 이처럼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새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도심에 대규모로 살면서, 악취, 소음, 분진 등으로 인한 주민 민원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길조에서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대전에서도 이런 일이 생겨났다. 수백에서 수천마리에 이르는 새들이 집단번식을 하다 보니 생겨난 일이다. 인간이 사는 마을 주변에서 번식하려는 백로의 습성이 화를 자초했다. 대전 3대 하천인 대전천, 유등천, 갑천 등지에서 먹이를 구하며, 주변 농지를 이용하는 백로는 참 힘든 4년을 보냈다.

중백로가 먹이를 사냥중이다.
▲ 대전 주변의 농경지에서 먹이를 구하는 중백로 중백로가 먹이를 사냥중이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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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는 카이스트(2000~2013년)와 충남대학교 궁동 근린공원(2013년), 남선공원(2014년), 내동중학교(2015년)에서 백로류의 집단번식이 이루어지면서 이로 인한 냄새와 소음, 배설, 털 등으로 인근 주민과의 갈등이 심해졌다.

결국 4개의 서식지는 모두 벌목과 간벌이라는 정책으로 녹지를 훼손하면서까지 백로를 쫓아내기에 이른다. 벌목 이외 다른 방식에 대한 논의는 주민의 집단민원에 묻혀 버렸다. 이발기로 머리를 밀듯이 벌목을 진행한 4개 지역에서 이제 백로를 만나기는 어렵게 되었다.

벌목된 남선공원의 모습
▲ 2014년 벌목된 남선공원의 모습 벌목된 남선공원의 모습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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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벌목이라는 최악의 수로 도시림을 훼손한 데 있다. 도시 숲은 생태적·경관적으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거점 역할을 한다. 또한 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외곽의 산지와 생태계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도시 내 열섬현상을 저감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지구온난화의 대비책이 되기도 한다.

토사유출을 막아 주어 산사태 등을 예방하기도 하는 등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도심 녹지이다. 따라서 종자 갱신이나 민원으로 인해 시행되는 강도 높은 간벌은 중단되어야 한다. 간벌이 지속된다면 도시 숲의 질적·양적 소실이 발생하게 된다.

백로 서식처의 모습
▲ 2015년 내동 백로 서식 백로 서식처의 모습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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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올해 대전에 서식했던 백로는 새로운 서식처를 찾았다. 최초 카이스트 내에 있던 숲과 약간 떨어진 북쪽 숲에서 번식을 진행 중이다. 대전발전연구원 이은재 박사에 따르면 200상, 400여 마리가 번식하고 있다.

기숙사 뒤편 야산에 자리 잡은 백로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다. 4년간 여름이면 꾸준히 언론을 도배했던 백로 기사가 사라졌다. 이번엔 느낌이 좋다. 다행히 제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번에도 쫓겨나면 다음은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 대전의 백로 이동경로 이번에도 쫓겨나면 다음은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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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한 새끼들이 깨어나 활동할 시기인 6~8월에 대학교는 방학이다. 또한, 대학교내 기숙사 뒤편 넓은 야산에 자리를 잡았다. 기숙사와 일정한 거리만 확보한다면, 악취나 소음에 대한 위험성은 사라질 것이다. 주변지역에 인가가 없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대학교라는 특성상 재산상 피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의 특성상 백로의 서식에 대한 연구나 학습장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전발전연구원에서는 내동백로에 위성장치를 달아 백로의 이동경로를 확인했다.

대전에 번식한 백로가 베트남 남부 해안까지 이동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연구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오히려 카이스트는 대학이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백로의 행동이나 생태 등 연구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또한, 다양한 생태학습이 필요한 초·중·고와 연결하여 교육장으로 활용한다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대학이란 이미지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카이스트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다.

때문에 입장조율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숙사 거주자들과의 소통을 통한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다양한 내용들을 대전시가 나서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밟지 못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써질 수 있다. 현재 200쌍의 백로가 급증하여 카이스트 측에서 또 다시 벌목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이후에는 다시 지역사회에서 백로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200~300쌍 수준의 현재 개체수를 유지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백로의 집단번식처를 유지하고 보전할 수 있도록 협의가 필요하다. 국내외 전문가 및 환경 단체, 지역 주민과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보다 개선된 백로 관리방안을 마련한다면 대전 시민의 건강한 삶과 백로의 보전이란 공생의 해법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백로 번식지를 생태관광 자원화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는 백로와 야생동물에 대한 대전 시민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태그:#대전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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