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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인도교, 제1한강교 등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한강대교로 불리는 서울 용산에서 동작구 본동을 잇는 다리, 이 다리의 한가운데에는 노들섬이 있다. 그래서 한강을 건너는 최초의 다리 건설 지점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한강대교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66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초기 북한군의 물밀듯 한 공세에 우리 국군이 속수무책 당하면서 후퇴하는 전황임에도 "우리 국군이 잘 싸워서 적군을 물리치고 있으므로 흔들리지 말고 생업에 종사해 달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을 라디오는 계속 내보냈다.

이 방송을 믿은 서울시민들은 피난을 생각하지 않고 정부 지시대로 생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그 방송과는 다르게 대통령과 정부는 은밀히 서울을 빠져나갔으며 이들의 철수가 완료되자 우리 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다는 작전으로 이 다리를 폭파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서울 시민들은 결국 북한 치하의 서울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했으며 이후 수복된 서울에서 또다시 부역에 대한 조사와 함께 곤욕을 치러야 했다. 지금은 한강대교로 불린 이 한강인도교에 담긴 우리 역사의 슬픈 한 페이지다.

지난 10년 전부터 민간단체들은 이 슬픈 역사를 지닌 한강대교에서 그 폭파일인 6월 28일을 기해 추모제를 올린다. 이번에 10회를 맞은 이 행사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28일 오전 11시 한강대교에서 평화재향군인회와 한국전쟁희생자유족회의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한강대교 중간 노들섬 다리 밑에서 진행된 한강 인도교 폭파 희생자 합동 추모제
 한강대교 중간 노들섬 다리 밑에서 진행된 한강 인도교 폭파 희생자 합동 추모제
ⓒ 유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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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향군인회 최사묵 대표가 인도교 폭파에 얽힌 사연을 말하고 있다.
 평화재향군인회 최사묵 대표가 인도교 폭파에 얽힌 사연을 말하고 있다.
ⓒ 유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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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 현수막과 제단, 그리고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추모제 현수막과 제단, 그리고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 유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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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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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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