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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거 뭐야?"
"헛! 자두네!"

아내와 내가 산행을 하고 돌아와 우리 집 현관 앞에서 나눈 대화다. 그랬다. 현관에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건 막 딴 자두들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분명히 어제(26일) 자두나무를 베어버렸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사연은 이랬다.

외출하고 돌아 오니 현관 앞에 자두 봉지가 있었다. 소쿠리에 쏟으니 아주 먹음직스럽다. 무슨 사연일까.
▲ 돌아온 자두들 외출하고 돌아 오니 현관 앞에 자두 봉지가 있었다. 소쿠리에 쏟으니 아주 먹음직스럽다. 무슨 사연일까.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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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서 벌어진 '농약 난상토론'

우리 마을 '덩치총각'(왕년에 주먹깨나 썼던, 지금은 착실하게 살고 있는 총각이라 내가  붙인 별명)이 며칠 전 우리 집 앞을 지나가다가 나를 보더니 멈춰 섰다.

"저, 마당에 풀 농약이라도 좀 치시지…."

그 말을 들은 내가 살짝 속이 상했다. 속으로야 '남의 집에 풀이 나든 말든. 풀 농약을 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암튼 시골 사람들 농약 엄청 좋아해'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겉으로는 말 못했다. 꼭 덩치총각의 주먹이 무서운 것만은 아니었다(하하하하...).

"우리가 풀 키우는디, 뭐 할라고요. 하하하하."

이렇게 웃어넘기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농약을 치면 땅이 오염되고, 오염되면 지하수로 흘러가 우리한테 올 테니 안 치는 거유."

덩치총각도 질 새라….

"에이, 그까짓 거 농약 얼마나 된다고. 비 오면 다 씻겨 내려 갈건디."

그래서, 나도 질 새라….

"비 오면 씻겨 내려가 결국 돌고 돌아 내 입으로 들어올 건디."

그러면서 서로 한바탕 웃었다. 거리에서의 짧은 난상토론은 나의 승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사실 이런 토론 아닌 토론이 가능한 건 평소 덩치총각을 포함한 마을주민과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관계가 형성도 되지 않은 채 이런 식으로 주민과 토론(?)하면 당장 그 마을에서 '아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앗! 그 덩치총각이 이번엔 또 무슨 일로

그 다음날(26일)에 또 덩치총각이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 멈춰섰다.

"저…."

이때, 속으로는 '저늠이 또 무슨 말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어찌 감히(?) 그러겠는가. 이번에도 비단 그 주먹이 무서워서만은 아니었다(하하하하...).

"실은 길가 화단에 핀 자두나무 때문에…."
"자두나무가 왜요?"
"자두나무가 길가 쪽으로 나와 있어서 차에 자꾸 긁혀요."

이때도 속으로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였지만, 우리집 길가화단 속 자두나무를 쳐다봤다.

"어, 진짜 자두나무가 바깥으로 많이 휘었네 그려."

내가 사는 마을엔 담도 없고 대문도 없는 게 특징이다. 우리 집도 그렇다. 그렇다 보니 마당에 풀이 난 것도 오가며 마을 주민들이 다 보게 된다. 이번 자두 사건은 바로 이 풀 사건으로부터 발생했다. 하하하하
▲ 대문 없는 우리 마당 내가 사는 마을엔 담도 없고 대문도 없는 게 특징이다. 우리 집도 그렇다. 그렇다 보니 마당에 풀이 난 것도 오가며 마을 주민들이 다 보게 된다. 이번 자두 사건은 바로 이 풀 사건으로부터 발생했다. 하하하하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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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몰랐다. 자두나무가 열매가 없을 땐 괜찮다가, 열매가 맺혀 그 무게로 인해 자두나무가 길가 쪽으로 많이 휘었다는 걸.  그렇게 말해오는 덩치총각의 건의는 사실 정당한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이러고 있는데, 마침 옆을 지나가던 마을 형수님이 또 한마디 거든다.

"그려요. 우리도 그 말 할라 했는디. 잘 됐네. 그냥 자두를 좀 묶어서 길가로 안 나오게 좀 해줘유."

아내와 회의 끝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쯤 민원이 발생하니, 행동해야 할 때가 됐다. 물론 행동하기 전에 회의는 필수. 아내와 회의를 했다. 처음엔 자두나무를 묶어야 되나로 의견이 모아지다가, 내가 과감하게 한 가지를 제시했다.

"여보, 우리 저거 베어 버리자."

아내가 살짝 놀랐다. 하지만, 아내도 이내 찬성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사실 그 자두나무의 자두가 너무 조그맣고 많이 열리기만 해서 실용성은 없고 자리만 차지한다고 생각해왔던 터였다. 사실 해마다 이 자두나무 때문에 분쟁이 조금씩 있어 왔다. 이참에 분쟁의 근원을 잘라버리자는 결단이었다.

회의가 끝났으니, 이젠 행동개시다. '단칼'이라곤 표현했지만, 설마 그럴 리가. 톱을 가져왔다. 톱으로 작지 않은 자두나무를 잘랐다. 나무가 쓰러졌다. 자두나무엔 파랗고 조그만 자두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자두나무야 미안하다. 이웃과의 평화를 위해서 니 한몸 희생해다오."

이렇게, 모든 일은 처리되는 듯했다.

마을 형수님이 왔다 가신 후 두고 간 것은...

다음날이었다. 아내와 산행을 하고 돌아오니, 검은 봉지에 자두가 담겨져 있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우리 집 현관 문 앞에 농작물이나 과일 봉지가 놓여 있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종류가 자두라는 게 뉴스다. 아내가 말했다.

"알겠다. 누가 갖다 뒀는지."

아내의 직감이 바로 맞춰버렸다. 윗집 마을 형수님(어제 지나가면서 자두나무를 언급했던)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그 형수님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99.9999999% 확실한 일이다. 우리가 하루이틀 이 마을에 산 게 아니다.

그 형수님은 차에 긁히니까, 자두나무를 좀 묶어서 길가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거였는데, 내가 그 나무를 단칼에 베어 버렸으니, 미안하셨던 게다. 야생 돌 자두나무라 너무나도 조그맣고 볼품없는 자두들이 열려있었는데, 그것을 베고 나니 큼직하고 맛난 자두로 우리 품에 돌아왔다. 그 마음이 고맙고 또 고맙다.

사실 나무를 단칼에 벤 것은 나무보다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내 마음이 주요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덩치총각이 우리집 풀 난 것을 잔소리(?)한 것에 대한 응징이기도 했다.

민원이 발생하자마자 당장 자두나무를 베어 버렸다. 자두나무에게 차마 미안해서 뿌리는 살려두었고, 미래를 기약했다. 다음에 커면 다른 밭으로 옮겨 볼까 생각 중이다.
▲ 잘린 자두나무 민원이 발생하자마자 당장 자두나무를 베어 버렸다. 자두나무에게 차마 미안해서 뿌리는 살려두었고, 미래를 기약했다. 다음에 커면 다른 밭으로 옮겨 볼까 생각 중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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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마을엔 집집마다 담과 대문이 없고, 우리 집 또한 그렇다. 그래서 지나가는 마을주민들이 우리 집 마당을 언제나 보고 다닌다. 시골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우리 마당에 풀이 나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몇 년 동안 살아도, 마을 어르신들이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젊은 덩치총각이 그렇게 나오니까, 싸울 수는 없고, 화해의 제스처도 하면서, 나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게다. 나의 무언의 메시지는 이랬다.

"이렇게 까지 당신 말을 당장 실천했으니까, 앞으로는 소소한 일로 간섭하지 마라."

앞으로 덩치만 컸지, 순진한 그 덩치총각이 잔소리하는 일을 멈추고 나에게 고분고분할 일만 남았다(하하하하하...).


태그:#마을, #공동체, #흰돌리마을, #더아모의집,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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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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