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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학생회관에 걸렸었던 ㅅㅅ파티 현수막
 고려대학교 학생회관에 걸렸었던 ㅅㅅ파티 현수막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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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각나눔은 '젠더'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메갈리아 등 온라인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다시 화제를 얻었으며, 서점가에서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서적들이 잘 팔리고 있다. 온라인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있었던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후에 추모장소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들과 여러 단체들의 캠페인 또한 활발하다. 이런 움직임은 대학가도 마찬가지다.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학내 문화를 바꾸기 위한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학생회관에서는 'ㅅㅅ파티'가 있었다. 고려대학교 제33대 동아리연합회 '모람'에서는 여러 이슈에 대해 자유로이 의견을 나누는 '생각나눔'을 열고 있다. 1회와 2회에서는 위안부, 장애를 다뤄왔고 세 번째 주제는 '젠더'다. 여기에는 중앙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 여성주의 교지 [석순], 미디어학회 여성주의 모임 [시소], 여성주의 학회 [시선]등 학내 여성/젠더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단체들이 함께 했다.

진행은 각 단체에서 간단하게 발제를 후, 여러 질문으로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장에 참석해 들은 이야기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옮겨본다.

Part1. "나를 짓누르는 것" - '혐오'에 대해서

"타고난 생식기, 이분법적 성별 체제로의 편입, '여류작가, 여선생' 등의 단어는 디폴트(기본값)를 남성으로 전제해요. 즉, 혐오는 정체성을 전제로 하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게이는 남성임에도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존재'인거죠." - <사람과 사람> 발제 中

Q. 다시 생각해보니 혐오였구나, 싶었던 경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공부할 때 졸지 않기 위해 먹는 습관이 있는데요, 그 날도 편의점에서 물건을 들고 계산대에 갔어요. 남성 분이었는데, 계산해주면서 '단거 먹어도 될 분은 안 드시고, 안 먹어야 될 분이 드시네요?' 하는 거예요. 또 최근엔 외국친구가 놀러 와 번화가에 갔어요. 여성분들이 정말 수준 높은 춤을 추시고 계셨어요.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 뒤에서 어떤 남자가 자기 애인에게 '쟤들 몸 좀 봐, 춤은 저렇게 잘 추지만 몸 관리는 안 하잖아'라고 했어요.

두 가지 사건에서 느낀 건 하나에요. 자기도 지키지 않는 것들을 여자가 춤을 추고, 새벽에 간식을 사 갔다는 이유로 프레임을 씌웠다는 거."

"최근에 트위터에서 '혐오가 극에 달할 때는 대상이 지워져서 보이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봤어요. 할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히어로 중에서 백인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잖아요. 여성이나 흑인들은 자연스레 지워지는 거예요."

"선배(남자)들과 밥 약속을 하면 후배(여자)들에게 '가장 잘생긴 남자 1, 2, 3' 뽑아봐 이런 질문을 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남자(여자)친구 있어?'라고 묻는 것도 폭력이에요. 모두가 이성애자일거라 생각한 거잖아요. 한 언니가 그거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는데 '걔는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냐?", "귀찮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당장 엄청난 것을 제안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조차 귀찮다고 여겨지는 분위기에 실망했어요."

"저는 학내에서 고양이 쉼터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오늘 제보가 들어왔어요. '사람을 위한 벤치에 고양이가 앉아있는 게 맞나?' 그런데 벤치는 4개가 있고 가득 차 있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혐오가 극단적으로 치달으면 지워진다는 말씀이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동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가정폭력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잦아요. 약자에 대한 혐오는 동물에 대한 혐오와 맞닿아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에 실습을 나가면 남성들은 정장 구두, 와이셔츠, 넥타이, 머리까지 검은색이어야 해요. 그 명분은 환자에게 보이는 신뢰감과 마음가짐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런데 여학생은 피어싱을 하든 염색을 하든, 의사로서의 모범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아요. 남자 동기들은 성차별이다 뭐다 얘기하지만, 사실 여성이 정상시민이 아니기에 그런 것들이 고려되지 않고, 특혜로 포장되어 여자들만 이득을 본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이중으로 혐오를 겪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우리는 모든 행동을 할 때, 모든 소수자성을 고려하며 얘기해야 할까요?

"얼마 전 한 여성학자분의 책을 읽었는데요, 그분이 강연을 하러 가셨는데 쉬는 시간에 '각자 화장실 다녀오세요'라고 했데요. 청중 중에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분이 있었는데 강의가 끝나고 강연자분께 그건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말이라고 하셨다고 해요. 여성학을 10년 넘게 공부한 사람도 다른 감수성에 대해서는 예민하지 않듯,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모든 것을 미리 고려하고 말한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오히려 실수를 하고, 남에게 상처를 줘서 타인에 지적해줬을 때, 그걸 인정하는 태도,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장애인 당사자기도 하고, 학내 장애인권위원회 회장도 했었어요. 최근에 회식자리에서 실수를 했어요. '다 먹었으니 일어나자!'라고 말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그게 큰 실수일 수 있거든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배려하기란 불가능해요. 정말 지적받았을 때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바라는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저는 제가 성소수자라는 걸 밝히고 다니지만 사람들이 잘 까먹거든요. 저도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 여성이라는 당사자로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다른 모든 것들을 고려할 수는 없어요. 저 자신의 한계도 많이 느끼고, 좌절도 많이 하고 같이 운동하는 이들의 한계를 보면서 또 좌절해요. 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공부나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안 할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어차피 할 거니까."

part2. "나를 만드는 것" - 젠더와 정체성

ㅅㅅ파티 발제문 표지
 ㅅㅅ파티 발제문 표지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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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 이소라 track 9 가사 中(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여성주의 모임 시소 발제문에서 인용)

Q. 사회나 타인으로부터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 있는가? 그때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말해보자. 그리고 나는 어떻게 불리고 있는가?

"예전에 한 사람이 '동성애가 괜찮으면 근친은? 수간은?'이라는 질문을 했어요. 동성애자인 제가 '정상'이라는 범주에 포함되고 싶다면 증명해내야 해요. 사실 이성애자가 다수이기에 자신들을 정상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누가 2등을 할지 결정하라는 건 의미 없는 고민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커밍아웃을 못 하고 위장해서 살고 있어요. 제가 게이라는 걸 밝히는 순간 제가 하는 모든 행동과 잘못은 '게이의 행동'이 돼요. 인간으로서의 제가 지워져 버리죠. 그 외에도 지금까지 안전했던 제가 혐오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비겁하게 남성의 지위를 위장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근친에 대한 금기, 동성애에 대한 금기는 신라 시대까지만 해도 없었어요. 그걸 지칭하는 단어도 없었고요. 결국 역사적 구성인 셈이죠."

"'정체성을 허물고 인간으로 나아가자', 저는 발제문에서 이 말을 들으며 개개별 사람들을 정체성으로 묶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허물어진 상태에서 차별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나서 구분 짓고, 나눌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는 왜 레즈비언이니?'라는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동성애자나 이성애자의 구분이 없는 세계를 꿈꾸기 때문에, 그 정체성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자도 레즈비언이지만 자신이 얘기를 하면 중년, 노년의 레즈비언들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배제되잖아요. 결국 사회운동의 동력으로서 정체성은 필요하지만, 항상 배제되는 사람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중학교 때 수업에서 정체성, 자아실현에 대해서 배울 때는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어요. 제가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제가 여자인데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 거예요. '왜 좋아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과정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었어요. 애초에 다수로 불리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정체화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아직도 제 정체성을 확정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 남자가 되고 싶은 건지, 그런 구분이 없이 좋아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중에 무언가를 택하는데 확신이 없어요. 정체화의 과정은 복잡하고 어려운 거라서 택하기가 힘든데 '나눠서 택해!'라고 하며 분류를 만드는 순간 차별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작년 출간됐던 <이기적 섹스>(은하선, 동녘) 같이 일상의 경험과 젠더를 잇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ㅅㅅ파티 또한 전문적인 지식들을 공유하기보다는 일상속의 젠더, 혐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풀어놓는 자리였다. 청년들이 있는 여러 자리에서 제2의, 제3의 ㅅㅅ파티가 이어지기를.

지난 6월 6일 홍대에서 있었던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현장>
 지난 6월 6일 홍대에서 있었던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현장>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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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ㅅㅅ파티, #페미니즘,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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