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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부터 총 열하루 동안 유로 2016에 대한 첫 번째 모험을 시작하려 합니다. 축구의 본토인 유럽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해보고 싶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기대해주세요! - 기자말

'세상에!'

정말 오랜만이다. 어제(6월 13일 오후 9시) 리옹의 올림피끄 리옹 경기장에서 펼쳐진 이탈리아와 벨기에의 조별예선 1차전을 보고 난 첫 느낌이다. 아, 언제부터 이탈리아의 축구가 이렇게나 박진감이 넘치는 스피드를 전달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데, 어제의 경기는 최근 2~3년을 통틀어 최고로 멋진 승부였다. 후반 40분 경, 일행이 "6분 남았다" 하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고?'

리옹역에 2시 반쯤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있던 친구들의 반가운 마중으로 리옹이라는 도시에 첫 인사를 전했다. 오전에 출발했던 니스에 비해서는 역도 복잡하고 도시의 규모도 비교할 바가 못되었지만, 프랑스 제2의 도시답게 파리와는 또 다른 개성으로 유로 여행자를 맞이했다. 일행이 묵고 있던 숙소에 들어가 며칠째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오늘 경기에 대비해 들고 온 이탈리아 유니폼을 꺼내 입는다. 벨기에가 세계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이탈리아에 마음이 가는 이유가 선수들의 '잘생김' 때문이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정성껏 끓여주신 라면으로 점심 즈음의 허기를 달래고는, 근처의 구시가지를 잠깐 돌아본 후 경기장으로 향하기로 한다. 아직 시간이 5시밖에 안되었기에, 9시 경기까지는 넉넉한 여유가 있다(고 생각 했었다).

구시가지에는 벌써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벨기에 응원단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간간이 비도 추적거리는 날씨였지만, '원조' 붉은 악마다운 그들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응원은 리옹 구시가지의 오래된 골목을 쩌렁쩌렁 울려대고 있었다. 그들의 신나는 응원전에 주눅이 들었는지,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팬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어딘가, 경기시작 전, 이탈리아 의문의 1패, 덩달아 오래된 이탈리아 유니폼을 챙겨입고 나온 나도 주눅이 든다.
리옹 구시가를 가득채운 벨기에 응원단 도대체 언제부터 '축구발성'을 배우는 것인지, 모여서 지르는 소리에 구시가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이탈리아 유니폼을 챙겨입은 저는, 의문의 1패! ⓒ 이창희
거리를 잠시 산책하고, 경기장으로 방향을 잡는다. 일행이 여행을 위해 차를 빌렸기에 경기장까지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하다. 게다가 지도로 확인한 결과, 경기가 벌어지는 올림피끄 리옹 경기장은 숙소가 있는 도심에서 13키로미터나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경기장으로 가는 중에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진다. 경기장의 구조를 고려하며 비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면서 향하고 있는데, 아뿔싸! 경기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부터 차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든다. 경기 시작은 한 시간 반쯤 남아있지만, 그래도 자꾸만 조마조마하다. 두려운 마음을 애써 달래가며, 간신히 기다려 경기장 진입을 통제하는 운영인력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경기보러 왔어. 주차하려고."
"유렉스포(EUREXPO)라는 곳에 차를 세우고, 셔틀을 이용해. 경기장까지 5분 걸려."
"그래. 고마워!"

급한 마음에 차를 몰고 나왔는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어진 빗방울에 한 번 길을 잃는다. 경기에 늦을까봐 쿵쾅거리는 마음인데, 비는 점점 더 굵어져서 이젠 시야까지 거의 확인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길을 잃을 만한 곳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운영요원들도 보이질 않는다. 초조함과 불안함을 가득 안고 차 안에서 긴장하고 있는데, 운전을 하고 계신 일행분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기어코 주차장을 찾아내고야 만다. 아, 인간은 위기의 순간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고 하던데, 어제의 긴박했던 순간에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느낌이랄까?

이미 주차장에는 차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 멀리로 널찍한 공간에 차를 주차한다. 차를 세우고 나니, 이것 또한 축구의 신이 베푸는 기적인지, 언제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 거짓말처럼 비가 그친다. 아직 바닥에 고여있는 물이 다 빠지지 않아서 구멍이 숭숭뚫려있는 운동화는 몇 발자국 걷지 않아 다 젖어 버렸는데, 머리 위로는 개인 하늘이니 이것 역시 비현실적이다.

어쨌거나, 안내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가서 셔틀버스를 잡아타고 경기장으로 향한다. 시간이 너무 늦었는지, 버스 안에 유니폼을 입은 승객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걱정스러웠는데 "이거 경기장으로 가는 거 맞아"라는 다른 승객들의 답변에 간신히 안심을 한다.

'도저히 5분이 걸릴 거리가 아닌데.'
주차장이 이렇게 멀다니!! 셔틀로 5분이라니, 말이 안돼! ⓒ 이창희
주차장으로 찾아가며 들었던 생각이다. 구글맵의 거리상으로는 6.1키로라고 나와 있었고, 우리가 가는 동안에도 20분 이상 걸렸기에 다시 한 번 운영위원의 안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럴수가! 셔틀을 타고 8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곳 지리가 익숙하지 않으니 이해가 안 되기는 하지만, 경기장 도착 8시 35분, 오늘은 킥오프를 놓치지 않을 수 있겠다. 정말 다행이다.

경기장에 들어가는 동안 비는 완전히 그쳤고, 멀리 서쪽하늘로 구름이 열리며 숨어있던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 아마 오늘의 빅매치를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인데, 애석하게도 경기가 9시 시작이라 오래 같이하지는 못 하겠네, 미안하다 햇님!
마침내, 경기장에 들어왔습니다. 해가 들고, 노을이 붉게 물드는 시간, 오늘의 열광을 즐기러 들어갑니다. 포르자, 아쭈리! ⓒ 이창희
얼굴을 내밀어주신 햇살 언제 비가 왔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네요. 주차장을 찾으면서 시야가 하나도 안 보일 지경이었는데. ⓒ 이창희
눈앞에 리옹의 경기장이 드러나면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미숙한 관객 유도로 인해 올라왔던 짜증이 눈녹듯이 사라진다. 역시, 축구팬들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좋은 경기'이고, 그 경기를 보기 위해 어떠한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은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래도, 이번 대회에서 이것저것 보이는 대회 운영의 미숙함과 안내의 부족함은 여전히 너무 아쉽다. 혹시, 이것도 '프렌치 시크'가 지니는 그들만의 여유(?!)인가? 역시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8시 50분이 되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벨기에와 이탈리아의 빅 매치라서 입장에서도 경계가 강화되었을까봐 걱정되었는데, 입장은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만, 일행 중 가방을 맡기면서 카메라까지 못 가지고 가게 하는 것은 너무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팁. 가능하면 큰 대회의 경기를 보러 가실 때는 짐을 줄여서 가시는 게 좋습니다. 경기장의 안전 때문에 짐 검사도 철저히 할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은 것들은 뺏길 수도 있어요.)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 입장! 간신히 경기장에 입장합니다. 비도 감쪽같이 그쳐주시고, 하늘이 환한만큼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눈녹듯이 사라집니다. 이젠, 정말 즐기는 것만 남았네요! ⓒ 이창희
드디어 식전 행사가 끝이 납니다. 아이들의 활발하고 즐거웠던 식전행사도 드디어 즐기게 되네요. 게다가 오늘은 킥오프에도 늦지 않았습니다. ⓒ 이창희
그 뒤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세계 최강이라는 벨기에는 이탈리아의 '한몸'처럼 움직이는 일사불란함에 제대로 된 공격 시도도 해볼 수가 없었고, 반면에 이탈리아는 순간적인 공수 전환 뿐만 아니라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어떠한 공격 루트도 허용하지 않는 수비를 보여주며 전후반 90분을 온전히 '자신들'의 시간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관중석에 자리잡은 관객들에게도 그들의 집중력과 경기에 대한 치열한 의지를 고스란히 전달하며, 도저히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90분을 선물했다. 아마, 최근 몇 년을 통틀어서도 이렇게 긴박감으로 손에 땀을 쥐는 경기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세계 최강팀 간의 매치업의 하일라이트만 90분을 모아놓은 느낌이랄까? 이날 이탈리아는 벨기에를 2대 0으로 이겼다.
너무도 멋진 선물, 이탈리아에게 감사합니다. 어떤 경기보다도 집중도가 제일 높았고, 흥분이 가시질 않는 경기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멋진 시간을 선물해 주실 수 있었을까요? 감사합니다! ⓒ 이창희
아... 너무도 좋은 경기를 보았다. 관중석을 양분하여 꽉 채운 채, 선수들의 호흡을 그대로 공감하며 응원을 던지는 관중들의 모습도 좋았지만, 누가 뭐라해도 어제 경기의 주인공은 피치를 누비던 이탈리아의 '아쭈리 군단' 이었다.

역시, 축구라는 것이 추구해야 하는 본질은 '좋은 경기'를 통한 치열함에 대한 관중과의 공감임을 다시 한 번 '직접'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진심으로 이탈리아와 벨기에 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포르자, 아쭈리! 그라치에! (Forza, Azzurri! Grazie!)

잠을 자고 일어났으나, 여전히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오늘은 유로의 세 번째 경기를 위해 마르세유로 이동하게 된다. 여러분, 98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와의 5대 0 흑역사의 도시인, 마르세유에서 뵐게요!
태그:#유로2016, #이탈리아와 벨기에, #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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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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