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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신승철 저)이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편리한 마트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은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인데요. 저자는 골목상권의 붕괴와 살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현실 뒤에는 대형마트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오마이뉴스는 'NO마트, GO시장'을 기획하고 그 세 번째로 '2주 동안 대형마트에 가지 않았더니'라는 주제로 체험기를 싣습니다. 마트에 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편집자말]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주말 내내 비소식이다. 아이들은 좀이 쑤신 듯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소란을 피운다. 잠시 고민한다. 녀석들의 넘치는 활력을 어떻게든 집 밖으로 돌려야 한다. 결국 내 입을 통해 나온 말은, 울던 아이도 그치게 만든다는 마법의 주술과도 같은, "마트 가자!"였다.

사실, 대형 마트를 즐겨 찾는 편은 아니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식사를 주로 밖에서 해결하는 편이며, 동네에 중급 규모의 마트가 여럿 존재하는데다가, 지역 경제를 초토화시키는 대형마트에 어느 정도 반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쉬 발걸음을 떼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상 악화로 주말 동안 집에 있어야 하거나, 아이들의 기념일에 등 떠밀리듯 가게 되는 곳이 또한 대형마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삶 속으로 기생하듯 파고들어온 대형마트. 비정규직 문제니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이니 늘상 도마 위에 오르지만, 주말에는 주차할 곳이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누리는 거대 공룡. 우리는 과연 마트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번 이야기는 지난 5월 마지막주부터 2주 동안 대형마트 없이 살아본 경험담이다.

마트를 끊고 찾은 곳은 바로 재래시장

운좋게도 직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다.
▲ 직장 근처에 위치한 재래시장의 모습 운좋게도 직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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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보러 간날은 현금으로 2만 원을 들고 갔다. 싱싱한 표고버섯 5000원 어치를 비롯해 오이, 호박, 마늘쫑 등 정확히 2만 원 어치의 장을 봐왔다. 양이 많은 것들은 함께 장 본 직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재래시장의 맛은 그런거다.
▲ 두번째 장날에 장본 물건들 두 번째 장보러 간날은 현금으로 2만 원을 들고 갔다. 싱싱한 표고버섯 5000원 어치를 비롯해 오이, 호박, 마늘쫑 등 정확히 2만 원 어치의 장을 봐왔다. 양이 많은 것들은 함께 장 본 직원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재래시장의 맛은 그런거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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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형마트의 대안을 찾아봤다. 집 근처의 '생활협동조합'은 종종 이용하는 곳이긴 하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필요한 채소나 야채가 없는 날이 많은 편이다. 동네 슈퍼와 야채 가게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됐으나, 이왕 마트없이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마당에 좀 더 클래식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재래시장이었다. 다행히 직장 근처에 재래시장이 하나 있는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5일마다 장도 들어선다.

첫 번째 장보는 날. 장 볼 품목은 김밥에 들어갈 야채와 주말 캠핑을 위한 꼬치 재료다. 아침 출근길에 아내에게 현금 3만 원을 받았다. 싸고 좋은 것으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오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섰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아침의 기세는 한풀 꺾였고, 혼자서 시장에 간다는 것이 영 쑥스럽기도 해서, 흥정에 도움이 될 만한 입심 좋은 직원 몇몇을 대동했다.

시장 입구부터 어묵을 튀겨 파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바구니에 담겨진 생선들에게서는 신선한 비린내가 났다. 사야 할 품목보다 찐 옥수수나 설탕 가루가 잔뜩 묻은 도나쓰(도넛보다 익숙한 표현인)에 더욱 눈길이 가는 건 30여 년 전 엄마 손 잡고 시장에 따라다니던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흥정을 위해 함께 같던 직원들의 꼬임에 빠져 당초 계획에 없던 품목들로 장바구니를 채우게 됐다.

첫날은 그저 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다녔다면, 두 번째 장날에는 시장 곳곳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이번에도 흥정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직원들이 따라붙기는 했지만, 굳은 마음으로 주전부리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채소 하나, 야채 하나를 직접 만져보고 향도 맡으며 장보기에 열중했다. 그러자 재래시장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재래시장의 네 가지 미덕

종이상자의 모서리부위로 약간은 불안하게, 하지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진열된 채소류. 고추와 가지와 브로콜리가 숨을 쉬고 잇는 듯한 기분이 든다.
▲ 자유분방하게 진열된 재래시장의 채소들 종이상자의 모서리부위로 약간은 불안하게, 하지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진열된 채소류. 고추와 가지와 브로콜리가 숨을 쉬고 잇는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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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어진 호박잎 2000원 어치를 사면서 사진 촬영을 부탁 드렸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신다. 된장 찌게와 찐 호박잎이 그날 저녁 식탁에 올랐다.
▲ 직접 다듬은 야채를 팔고 계신 할머니 다듬어진 호박잎 2000원 어치를 사면서 사진 촬영을 부탁 드렸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신다. 된장 찌게와 찐 호박잎이 그날 저녁 식탁에 올랐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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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 3000원 어치를 사자 작은 바구니에 담긴 것 외에도 몇주먹을 더 넣어주신다. 재래시장의 인심은 아직 건재하다.
▲ 바구니에 탐스럽게 담긴 앵두와 감자 앵두 3000원 어치를 사자 작은 바구니에 담긴 것 외에도 몇주먹을 더 넣어주신다. 재래시장의 인심은 아직 건재하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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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없는 2주 동안 나는 재래시장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재래시장도 대형주차장과 카트를 완비한 곳도 많고, 카드 단말기는 필수에, 구획 정리가 잘 돼 장보러 온 사람들끼리 부딪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마트에 비해 재래시장이 불편한 점들은 분명 있을 것이나,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잠시 미뤄둔다. 재래시장에서 찾아낸 소중한 가치들이 몇몇 불편함 정도는 덮고도 남으니 말이다.

재래시장에만 존재하는 첫 번째는 바로 '덤'이다. 옥수수 한 봉지에 끼워주는 쑥떡 한 조각, 가지와 호박 사이로 슬쩍 넣어주는 양파 한 개, 더 큰 걸로 달라고 옥신각신 흥정 끝에 얹어주는 참외 한 개까지 장터의 인심은 비교적 너그럽다. 시골 할매들의 인심이 예전만 못하다고 볼멘 소리하는 분도 있겠지만, 사위뻘 되는 남자 손님에게 한 주먹 더 집어주는 마음 씀씀이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재래시장에는 생동감이 있다. 10원 단위까지 야박하게 끊어서 가격표가 붙은 마트의 상품들은 뭔가 박제된 느낌이다. 투명한 비닐 안에 숨쉬기 힘들 정도로 비좁게 갇혀서 차곡차곡 쌓여있는 마트의 그것과는 달리 시장의 상품들은 자유분방하다. 담겨진 바구니보다 더 빨간 앵두의 유혹은 차마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이며, 방금 다듬어 내놓은 채소와 나물은 자연의 향을 여전히 머금고 있다.

세 번째, 재래시장에는 정다움이 있다. 싱싱해 보인다는 한마디에 그 자리에서 표고버섯을 바로 찢어 입에 넣어주는 정겨운 손길이 있다.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뒤돌아 앉아 먹는 할매의 도시락은 비록 변변치 못한 찬일지라도 얻어먹고 싶어진다. 사진 한 장 찍고 싶다는 부탁에 어색하게 씩 웃으며 호박잎을 담는 모습에서는 정겨움이 느껴진다. 꼬깃한 지폐를 고쟁이 속에서 주섬주섬 꺼내어 거스름돈을 챙겨주는 손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외할머니에게서 받던 용돈이 생각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재래시장에는 '사람'들이 있다. 부지런히 파리를 쫓아내는 생선가게 아저씨의 손놀림에도, 땀을 훔쳐가며 열무를 다듬는 흙 묻은 손길에도 삶의 열정이 흠뻑 배어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어묵을 튀겨내다가 맛이나 보고 가라며 툭 던지는 상인의 세련되지 않은 호객 행위에서도 잔정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팔아선 남는 게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과일 하나 더 챙겨주는 아주머니의 인정 속에는 더불어 사는 삶이 지닌 뜨끈한 유대감이 존재한다.

당신은 마트 없이도 살 수 있다

생선가게 아저씨는 열심히 파리를 쫓다가 잠시 쉬는 중.
▲ 재래시장 풍경-1 생선가게 아저씨는 열심히 파리를 쫓다가 잠시 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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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 앉아 완두콩 껍질을 까고 있는 아낙들
▲ 재래시장 풍경-2 모여 앉아 완두콩 껍질을 까고 있는 아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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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마다 장이 서는 직장 근처의 재래시장
▲ 재래시장 풍경-3 5일마다 장이 서는 직장 근처의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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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며 느낀 것은, 인간은 마트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물론 가격 면에서나 편리성 면에서 대형마트는 재래시장이나 동네의 중소형 마트를 훨씬 앞지를 수 있다. 대량구매를 통해 싼값에 물건을 사고, 굳이 여러 군데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마트에는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이 없다. 마케팅 전략에 따라 배치되고 진열된 상품들을 기계적으로 혹은 충동적으로 카트에 던져 넣고 있는 자신을 떠올려보자.

더구나 핵가족 사회에서 마트의 기획상품은 일주일 만에 소비하기가 버겁게 포장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상하거나 방치됐다가 버려지기 십상이다. 현명한 소비란 소비할 만큼만 소비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재래시장에서 장보기는 어쩌면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선택하는 경제적 소비일수도 있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재래시장으로 향하는 남편이 있다. 뭘 꼭 사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시장 상인들의 사는 모습들을 둘러본다고 한다.

몇백 원 에누리를 위해 목청을 높이고, 밥 한술 떠넣기 바쁘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삶의 에너지를 보고 있노라면 한낱 감정과 이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져 마음이 수그러진단다. 그리고 나면 반찬거리 몇 가지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화해한다고.

시장은 잊힌 것들을 깨우쳐준다. 마트에서는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살가운 풍경들이 오늘도 재래시장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레 연출되고 있을 것이다. 고기류는 집 앞의 친절한 총각네 정육점을 이용하고, 가공식품은 동네의 작은 마트를 이용한다면, 그렇게 약간의 수고로움만 보탠다면, 우리는 대형마트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적이고, 합리적이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태그:#대형마트,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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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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