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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웨이벌리 브리지에서 로열마일 방향의 풍경입니다.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 옆에 자리 잡은 노숙자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웨이벌리 브리지에서 로열마일 방향의 풍경입니다.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 옆에 자리 잡은 노숙자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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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지금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성에서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맥도날드에서 잠시 글을 쓰고 있단다. '로열 마일'이라고, 에딘버러 성이 있는 언덕에서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한참을 찾았는데, 어디에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걷다가 걷다가 성에서는 한참 멀리 보이는 곳까지 걸어왔지. 오다 보니까 스타벅스가 보이더구나. 너무 반가워서 문을 미는 순간, 아빠는 당황하고 말았지. 열리지 않았거든. 안에서는 사람이 청소를 하면서, 유리 창에 적혀 있는 영업 시간 표시를 손으로 가리키더구나. 몰랐는데 벌써 저녁 8시 10분이었어. 사실, 우리나라 같으면 한창 바쁠 시간인데, 이 동네는 술집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6시 정도면 문을 닫는 거야.

화장실 가기 힘든 스코틀랜드

게다가 가게마다 화장실 인심도 좋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는 동양인은 아빠 밖에 없는 것 같아서, 선뜻 아무데나 들어가기는 겁이 나기도 했어. 너무 지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갈까 하던 차에 익숙한 노란 아치가 보였어. 뭐였을까? 바로 맥도날드야.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데, 어떤 카키색 점퍼를 입은 백인이 다가와 아빠에게 배가 너무 고프다며, 자기에게 동전을 좀 줄 수 있냐고 물었어.

아빠는 거절했지.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 맥도날드를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또 다른 거지가 아빠에게 손을 내밀었어. 너무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지나쳐서 문으로 들어 갔단다. 화장실부터 찾았지. 2층에 있다는 표시를 보고 그쪽을 바라보니, 키가 190센티에 육박하는 거인 같은 백인 2명이 경비복을 입고, 계단에 서 있었단다. 왠지 주문을 하지 않으면 2층에 올라가서 앉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얼른 커피를 시키고, 자리도 잡지 않은 채 화장실을 찾았단다.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화장실 앞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었지.

"Collect token from counter or ask member of our dining area staff' 그러니까 직원한테 이야기해서 토큰을 받은 후에 박스에 넣어야 문이 열리는 구조야. 정말 겨우 일을 보고 나니까 맥이 다 풀려 버렸지. 그러고 나니 갑자기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에딘버러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아빠가 멋있다고만 생각했던 에딘버러 성 풍경이 올려다 보이는 웨이벌리 브리지(Waverley Bridge)에서는 노숙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많은 가게들에서는 보디가드들이 사나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기 시작했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돌로 만들어진 집의 문에는 "Fucking Police(퍼킹 폴리스, 망할 경찰)"라는 욕이 써져 있고, (아마, 그 집 주인이 경찰이지 않을까 싶어) 아빠가 영어를 못하는 중국인인 줄 알고 아빠가 근처에 있어도 함부로 말을 하는 백인 아줌마들도 있었지(예를 들면 '동네 지저분해지게 왜 이렇게 아시안들이 많아' 같은). 영국이란 곳, 보여지는 곳은 너무나 아름다운데, 도시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존재하는 가난, 차별, 폭력 등의 현실이 이 곳에도 존재하는구나 싶었단다.

한국의 보험시장이 세계 7위인 이유

가끔 아빠 주변 사람들 하고, '한국을 떠나서 사는 건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하곤 한단다. 성장률이 낮아지고, 기존의 사회 구조가 점점 굳어져서 새로운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곳,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게 되는 한국 사회가 싫어서 '좀더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 살면 어떨까?'하는 생각 말이야. 아빠도 사실 조금은 관심을 가져왔단다.

얼마 전에 아빠 회사 외국인 대표와 함께 '인슈어테크'라는 벤처기업들의 포럼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어. 외국계 보험사의 CEO인 대표에게 한 청중이 물었어. "한국의 보험 시장은 세계 7위라고 합니다. 경제 규모가 세계 7위 수준이 아닌데, 왜 이렇게 보험시장은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고 생각하십니까?" 거기에 대해서 그 분은 이렇게 말했지.

"저는 네덜란드 사람입니다. 제게는 3명의 아이와 한 마리의 강아지가 있지요. 만약, 제가 어느 날 급작스러운 사고로 죽게 된다면, 제 아이들이 무사히 자라서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전 네덜란드 사람이고, 나라에서 무상으로 학비를 지원하고, 기초적인 생계비를 지원할 테니 이를 기반으로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저와 함께 온 한국인 동료의 예를 들어 볼까요? 그에게도 2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만일, 그에게 사고가 나서 아이들과 부인이 남겨진다면 그의 아이들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청중들의 보이는 반응과 같이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한국인들의 불안감, 사회 안전망 대신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보험을 가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빠는 매우 놀랐어.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거든. 얼마 전에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담론>이라는 책에서 본 비슷한 맥락의 글이 생각이 났어. A라는 마을과, B라는 마을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는 거야. 두 마을에 각각 10살짜리 여자아이가 갑작스런 사고로 고아가 되었다고 가정을 해보는 거지. 10년이 지나서 그 아이들을 찾아봤을 때, 한 아이는 농협 직원이 되어 있고, 다른 한 아이는 창녀가 되어 있다면 어떨까?

머리 속에 정리하고 살지는 않지만,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불안, '부모가 없는 아이가 제대로 크기 어려운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단다. 아빠도 예외는 아니지. 만일 아빠가 잘못된다면 이렇게 사랑하는 너에게 너무 큰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불안할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선진국으로 이민을 하면 달라질까? 외국 출장을 다녀 보고, 해외의 사회 안전 망에 대한 자료들을 직업적인 이유로 공부를 하고, 유심히 관찰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게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아.

에딘버러 스콧월터 기념탑 주위의 노숙자
▲ 스콧월터 기념탑의 노숙자 에딘버러 스콧월터 기념탑 주위의 노숙자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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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단다. 서구사회는 우리보다 먼저 그런 고민들을 하고, 그들의 아이를 함께 키우는 데 동의를 하고 노력을 해온 점을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노력을 타 국가의 사람들이 와서 무임승차 하는 것을 지켜볼 정도로 천사 같은 사람들이 될 수는 없단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어느 나라에든 거지와 가난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

지난 번에 우리 함께 갔던 해외 여행을 기억하니? 사람들은 친절하고, 이국적인 풍경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지. 그렇지만, 그 풍경이 변하는 순간이 있어. 여행이나 유학같이 돈을 쓰기 위해 외국에 있는 것과, 직업을 구해서 돈을 벌기 위해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단다. 특히나, 낯선 사람은 경계 당하기 마련이고, 그들과 피부색, 언어, 문화가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 힘든 일이지. 거기에 더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편견이 존재하기 마련이지.

언젠가 네가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런 점들을 한번 꼭 스스로 생각해 보고 정리해 봤으면 싶어. 아빠는 앞으로도 일주일은 더 영국에 있을 예정이야. 네가 보고 싶기는 하지만, 외국에 나와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만큼, 좀 더 충실하게 보고 듣고 느껴보고 싶구나. 그리고 네게 이야기 해주고 싶어. 지금 다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이렇게 적어놨다가 천천히 해줄게.

언젠가 네가 스스로 경험해보고 판단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그 때 출장중이었던 아빠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 에딘버러에서 이런 글을 썼었는 지 한 번 생각해봐 줄래? 돌아가면, 너를 포함한 예쁜 아이들이 좀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관심을 가지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네가 살아갈 사회가 좀 더 희망적이기를 소망하며...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칸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 http://electricjin.blog.me/)



태그:#선진국의복지, #사람사는곳의현실, #이민, #사회, #아이키우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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