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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버스 정류장 앞에 붙어 있는 국민투표 포스터. 스위스는 이달 5일 기본 소득 외에도 연방정부 안 5건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한다.
 스위스 버스 정류장 앞에 붙어 있는 국민투표 포스터. 스위스는 이달 5일 기본 소득 외에도 연방정부 안 5건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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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이상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 원), 그 이하의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650스위스프랑(약 80만 원)을 매월 무조건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것인가'를 묻는 스위스 국민투표가 현지 시각으로 지난 5일 부결됐다.

일종의 국민배당금인 기본소득 문제는 비록 이번엔 부결됐지만, 분위기나 흐름으로 본다면 앞으로는 더욱 더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1982년부터 천연자원 판매수입을 재원으로 모든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룰라 대통령 시절인 2004년 이 제도를 채택한 바 있다. 핀란드·네덜란드·영국·캐나다·뉴질랜드 등에서도 제도의 도입을 추진 혹은 검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거대한 흐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일자리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나,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가 준 쇼크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인간 노동력의 고용이 반비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간의 취업률보다 기계의 취업률이 높아지기 쉬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체 인구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대할 수밖에 없다. 

세계 인구는 이미 70억을 넘었다. 이 숫자가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실업률마저 급증한다면, 이로 인한 세계적 정치 불안도 덩달아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안을 완화하려면, 국가가 국민의 기본 생계를 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 생계를 보장하고 기본소득을 주지 않는다면, 거대한 실업자 그룹과의 정치투쟁에서 국가 자신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기본소득의 지급은 국민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국가 자신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도 '기본소득'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발상은 지금뿐 아니라 옛날에도 있었다. 자본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했다. 실업자를 줄이고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자면 백성들에게 일률적으로 생활 터전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발상이 과거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옛 중국에서 발견된다.

고대 이래로 중국의 혁명가들이 항상 복원을 시도했던 것이 있다. 기본소득과는 똑같지 않지만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고대 주나라에서 처음 시행된 '정전제'라는 토지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맹자(기원전 4세기 출생)가 활동하기 이전의 어느 시점까지 존재한 제도였다.

맹자.
 맹자.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중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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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제는 토지를 우물 정(井)처럼 9등분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스마트폰의 샵(#) 표시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9등분된 토지 중에서 9분의 8은 여덟 가구가 각각 경작하고 9분의 1은 여덟 가구가 공동 경작했다. 9분의 1에서 나온 재원은 공동 비용으로 사용됐다. 이 제도에 관한 설명이 <맹자> 등문공 편에 나온다. 아래에 나오는 '무(畝)'는 토지 면적을 재는 단위다.

"井은 900畝이니, 그 가운데가 공전(公田)이다. 여덟 가구가 100무씩을 자기 것으로 경작한다. 공전의 작업이 끝난 뒤에는 사전(私田)의 작업을 할 수 있다."

900무 중에서 100무는 공동 경작하는 공전으로 두고, 나머지 800무는 각각 경작하는 사전으로 둔다는 내용이다. 국가가 백성들에게 골고루 토지를 나눠준 것은, 백성들의 기본 생계를 보장해줌으로써 국가경제의 기본 단위인 가계 경제를 튼튼히 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조세 수입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국가 자신을 위한 일이었던 것이다.

북위 효문제의 균전제

국가가 백성들의 기본 생계를 보장하는 정전제의 기본정신은 맹자를 비롯한 후대의 사상가나 왕망을 비롯한 후대의 혁명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북위 황제인 효문제만큼 그 정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인물도 없을 것이다.

한고조(한나라 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왕망에 의해 멸망한 뒤, 한나라를 계승한 후한이 세워졌다. 후한이 위·촉·오 삼국으로 분열된 뒤에는 서진이라는 통일 국가가 등장했다. 그 뒤 5호(胡) 즉 다섯 유목민족이 16개 국가를 북중국 전역에 세우는 5호 16국 시대가 도래했다. 기존에 북중국에 있었던 중국 한족 정치세력은 이로 인해 남중국으로 밀려났다. 이 때문에 중국대륙은 대혼란의 시대로 빠져들었다.

5호 16국 시대의 대혼란을 수습하고 중국대륙의 대결구도를 북중국 대 남중국의 양강 구도로 만든 나라가 있었다. 북중국 대 남중국, 즉 북조 대 남조의 남북조 구도로 중국대륙을 재편한 나라는 선비족이 북중국에 세운 북위(386~534년)였다. 효문제는 471년부터 499년까지 이 북위란 나라의 황제를 지낸 인물이다.

효문제 역시, 정전제와 똑같지는 않지만 그 기본 정신을 계승한 '기본소득제'를 실시했다. 백성들이 기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토지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균전제'를 실시했던 것이다.

효문제가 실시했던 균전제가 북위 역사서인 <위서>의 식화지에 소개되어 있다. 식화지(食貨志)는 재정 및 경제에 관한 파트다. 여기에 소개된 균전제의 일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래에 나오는 '9년'은 효문제 때의 연호인 '태화 9년' 즉 485년을 가리킨다.

"9년, 조서를 내려 천하의 민전(民田, 민간 사유지)을 균등하게 분배했다. '15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노전(露田, 일반 토지) 40무를 받고 부인은 20무를 받도록 한다. 노비는 양인과 같게 한다.'"

여성과 남성의 몫을 차별한 것이 현대인의 눈에는 거슬릴지 모르지만,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백성들에게 토지를 배분함으로써 이들이 기본적인 생계수단을 갖도록 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노비는 양인과 같게 한다"는 부분이다. 노비도 양인 즉 자유인처럼 토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비도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고대 북중국의 농촌 풍경. 그림은 요나라(916~1125년)가 지배할 당시의 북중국. 중국 내몽골자치구 파림좌기에서 찍은 거리 벽화.
 고대 북중국의 농촌 풍경. 그림은 요나라(916~1125년)가 지배할 당시의 북중국. 중국 내몽골자치구 파림좌기에서 찍은 거리 벽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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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제가 시작한 균전제는 북위뿐만 아니라 북제에서도 시행됐다. 북제는 북위가 망한 뒤인 550~577년 기간에 북중국을 다스린 왕조다. 북중국의 정통성을 계승한 통일국가인 수나라와 당나라에서도 이 제도가 시행되었다. 대략 300년 정도 시행된 셈이다.

균전제는 백성들이 경제적인 '기초체력'을 다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백성들이 자기 집과 평생직장을 가진 상태에서 인생을 출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평생 가도 '은행 대출 없는 자기 집'과 번듯한 직장을 갖기 힘든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나라에서 집과 직장을 보장해준다면 인생을 훨씬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균전제는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가가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국가 자신을 위한 일이다.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울지라도, 실상은 국가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균전제도 마찬가지였다. 표면적으로는 백성들의 기초 경제력을 다져주는 것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국가의 재정구조를 튼튼히 하는 것이었다. 백성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결국에는 국가의 조세 수입구조를 튼튼히 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균전제가 국민보다는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이 제도를 실시한 북중국이 남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중국을 통일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북중국을 계승한 수나라와 당나라가 각각 중국을 통일 혹은 재통일한 것은 북중국의 재정적·군사적 역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적인 강대국이었던 당나라의 전성기를 지탱한 제도가 균전제였다는 점은 국민의 기초 경제력을 살려주는 일이 국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긴요한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토지로든지 현금으로든지 국가가 국민에게 베풀면 국가는 그 이상의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중국 역사는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본소득 제도는 국가 입장에서 수지맞는 장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기본소득, #스위스 국민투표, #정전제, #균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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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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