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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언론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때는 언제일까?
③ 죽어간 대구 사람들에 주목한 <한겨레>, 왜?

'말(言)의 힘'은 강하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말을 다루는 기자들은 종종 대중에게 '기레기'라 욕을 먹을 때가 있다. 대중은 한 사회의 평균이므로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평균 이하의 '기레기'들도 존재한다.

지난 4월 한양대 김대욱 강사, 남서울대학교 최명일 교수 연구팀이 한국언론학회에 발표한 <의미망연결분석을 이용한 2005~2014년 자살보도 분석>은 미디어가 정치성향에 따라 자살을 다르게 보도하며, 뉴스 수용자의 자살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도 다르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언론의 '논조'가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은 언론을 질타하자”며 패션디자이너 4명이 제안한 ‘너희들은 필요없다! 검은 티셔츠 행동 캠페인‘이 10일 오후 청계광장앞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앞에서 개최됐다.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은 언론을 질타하자”며 패션디자이너 4명이 제안한 ‘너희들은 필요없다! 검은 티셔츠 행동 캠페인‘이 10일 오후 청계광장앞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앞에서 개최됐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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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에 따르면 미디어, 공중 보건 학자들은 심리학자 버코비츠와 반두라의 이론을 원용해 자살보도가 자살행위의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축적해왔다. 우선 버코비츠의 '점화효과' 이론에 따르면 자살보도를 접한 수용자는 자살의 상징·의미를 무의식적·자동적으로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보도량·보도시간이 많을수록, 내용이 선정적일수록, 자살자의 지명도가 높을수록 자살시도에 영향을 끼친다.

한편 반두라의 '사회학습'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다른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학습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를 통해 자살행위를 자꾸 접하다 보면 자살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지고, 특히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유명인의 자살을 자신이 처한 문제해결의 대안으로 생각하면서 모방자살을 하게 될 수 있다. 실제로 유명인의 자살보도는 일반인의 자살보도보다 14.3배 더 높은 모방 효과를 유발한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하면 미디어가 자살보도를 잘못하면 뉴스 수용자에게 자살을 암시하고, 모방자살을 유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특정 자살 사건이 반복보도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노출될수록 증가한다.

연구팀은 "한국 언론은 유명인의 자살보도를 할 때 무분별한 경쟁보도에 집중하거나 자살과 연관된 우울증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통한 대안제시보다는 흥미 위주의 프레임과 기사의 클릭 수 혹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홍보 및 프로모션 프레임을 주로 활용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언론도 자정 기능은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 윤리강령'과 '자살보도 권고지침'을 이미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규정이 잘 지켜지느냐다.

'자살' 어휘 많이 쓰고 자살 방법 묘사한 <조선>

연구팀은 10년 동안(2005~2014) 자살 관련 기사 제목의 핵심어를 추출해 출현 빈도를 분석했다. 추출은 <조선일보> 기사 1308건, <한겨레> 기사 1303건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제목은 기사의 대표성과 방향성을 드러내고, 수용자의 시선을 본문으로 유도하며, 포털이 메인에 올릴 기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참고가 된다. 아래는 <조선일보>측 핵심어들의 출현 빈도를 글자 크기로 나타내는 워드클라우드 기법으로 시각화한 결과다.

연구팀의 10년간 <조선일보>의 자살보도 핵심어 56개 출현 빈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워드클라우드 분석을 실시했음. 단, 연구팀이 직접 어휘별로 범주를 나누지는 않았으며 기자가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 나눴음을 밝혀둠.
 연구팀의 10년간 <조선일보>의 자살보도 핵심어 56개 출현 빈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워드클라우드 분석을 실시했음. 단, 연구팀이 직접 어휘별로 범주를 나누지는 않았으며 기자가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 나눴음을 밝혀둠.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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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한국기자협회는 자살이란 말을 헤드라인에 쓰는 걸 되도록 피하도록 요구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도 뉴스 수용자가 자극이나 정보의 기억을 위해 그것들을 서로 의미 있게 연결시키거나 묶는 인지 과정인 청킹(chunking)을 너무 쉽게 해버려 초점이 제한되거나, 자살을 손쉽게 개인 문제로 돌리는 태도를 취하지 못하게 유도한다(가령, '자살' '자살하다' 대신 '자살로 사망하다'로 늘여 쓰는 게 바람직). 하지만 <조선일보>의 '자살'이라는 어휘의 출현 빈도는 546에 달한다. 이는 <한겨레>의 462보다 약 15.4% 더 높은 수치다.

둘째로,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이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투신(49), 동반(21), 기도(16), 시도(16), 목 매(10), 아파트(9), 한강(9), 선택(9) 등 출현 빈도가 139에 달하고 다양한 서술로 자살을 묘사했다. 반면 <한겨레>의 경우 110으로 이에 못미쳤다.

셋째로, 연구팀은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자살문제를 보도할 때 공통적으로 장자연, 카이스트 사건과 같은 유명인의 자살이나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등과 같이 특정한 자살사건이나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략) 유명인의 자살보도는 자살모델로서의 동일시를 더 높게 일으키기 때문에 더 쉽게 모방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기별로 상세 분석을 해보면 2시기(2009~2011)에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에 집중한 반면 <한겨레>는 카이스트 사건에 더 높은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당시 <한겨레>는 카이스트 연쇄 자살 사건을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의 부작용으로 보며 '서남표' '총장'의 교육 방향에 의문을 던졌다. 유명인 개인보다 사회적 차원에 더 지면을 할애한 거다.

반면 <조선일보>는 카이스트(18)보다 장자연(51)이 세 배 가까이 높은 출현 빈도를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목적이 여론의 주도권을 선점하거나 조회수를 높이는 것이든 '경마 저널리즘'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불과 2주도 안 되는 기간 동안(2011년 3월 6일~3월 18일) <조선일보>가 '장자연'을 정확히 포함해 쏟아낸 기사는 약 42건에 달했으며(다음 뉴스 검색) 포털 메인에 올라간 기사도 4건이다. 화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연구팀은 "장자연 사건은 <조선일보>의 고위급 지도층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관심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살이 개인만의 문제? '사회 구조' 외면하면 사람 죽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워드클라우드에서 나타난 '가족주의 관련어'나 '예방상담 유도어'는 뭘까. <조선일보>는 자살과 관련해 아들(21), 가족(19), 딸(15), 아이(13), 어머니(13), 부모(11), 남편(9), 아버지(9) 등 총 110의 출현 빈도로 가족에 관한 어휘들을 언급했다. 이는 <한겨레>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또한 예방(33), 상담(9) 등 총 42의 출현 빈도로 예방상담에 관한 어휘들을 언급했다. 이는 <한겨레>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자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밝혀준다. 자살에 대한 편견과 정신적 충격으로 그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겪을 고통이 언급되어야 한다" "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를 넣어라" 등의 기준을 제시하며, 가족과 예방상담 관련어들이 보도에 언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이 부분 만큼은 <조선일보>가 <한겨레>보다 괜찮게 보도한 것일까.

연구팀의 10년간 <조선일보>의 자살보도 동시단어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미망을 재구성했음. 단, 스프링 임베디드 알고리즘에 따라 유씨아이넷6으로 시각한 연구팀과 달리 기자는 10개 동시단어분석 관계만 추려 하렐-코렌 멀티스케일 알고리즘에 따라 노드엑셀로 시각화했음.
 연구팀의 10년간 <조선일보>의 자살보도 동시단어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미망을 재구성했음. 단, 스프링 임베디드 알고리즘에 따라 유씨아이넷6으로 시각한 연구팀과 달리 기자는 10개 동시단어분석 관계만 추려 하렐-코렌 멀티스케일 알고리즘에 따라 노드엑셀로 시각화했음.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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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을 고려하면 그렇지 않다. 한국기자협회는 "자살은 다수의 복합적인 원인들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도록 강조한다. 또한 연구팀은 "미디어가 특정한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고 보도하는지에 따라 이슈에 대한 수용자의 이해방식과 문제해결 방안이 달라진다. 자살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시각에서 원인규명과 해결방안 도출에 초점을 두고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살보도를 반드시 모방자살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하거나 자살을 개인 책임으로 환원할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등 다수의 복합적인 원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자살보도는 복합적인 원인이 구체적 자살행위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계기'이며, 복합적 원인에 대해 다루고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게 합리적이며 언론인으로서의 의무다. 그리고 한국에서 자살은 이미 '개인 책임'으로 떠넘길 문제가 아니며 '사회적 원인'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한국인의 자살은 아시아 국가 중 가파른 증가세, 10년째 OECD 1위, 연령별 사망원인 1~2위, 사회경제적 손실비용 6조4769억 원 추정 등의 지표들을 보인다. 자살 연구자들은 아시아, 특히 한국의 경우 고용 및 노년 생계 불안정, 복지 수준, 경제성장률 등의 사회경제적 요인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임을 지적해왔다. 이때 자살을 사회경제적 차원이 아닌 가족과 같은 사적 친밀성 영역이나, 이미 실패한 테라피(힐링) 담론으로 주로 다룰 경우 초점이 흐려질 수 있어 <조선일보>의 보도 경향은 긍정적으로 보기 힘들다(연재 3편 참조).

한국기자협회 역시 "가족 동반자살의 경우 희생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살해한 부모의 비정함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자살을 결심한 부모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지 못하거나 왜곡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모의 '계층'도 중요한 맥락이므로 이를 잘라내면 자살에 대한 이해의 폭이 편협해질 수 있다. 연구팀은 "<한겨레>는 <조선일보>보다 다양한 계층의 문제 또는 사회문제의 시각에 비중을 뒀다"고 평가했다.

위 자료와 같이 연구팀이 공개한 핵심어 간 동시출현 데이터를 활용해 의미망을 시각화해보면 <조선일보>의 보도 경향은 더 뚜렷해진다. '자살'을 '아들' 같은 가족구성원의 문제 혹은 '예방' 같은 테라피의 문제로 자주 연관 짓는다. 또한 '학교' '폭력'의 문제로 인식되거나 '학생' 집단의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관점은 '왕따' 같은 학생 개인의 위상을 넘어 사회구조적 맥락으로 향하지 못한다. 동시에 '투신' '동반' '기도' '시도' 등 자살 상황을 묘사하고, '장자연' 같은 유명인의 자살에 집중하는 등 모방자살을 유도하는 보도 경향도 보인다.

한때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열심히 살아라'라는 훈계가 만연했다. 하지만 요즘은 '자살은 용기가 아니라 좌절로 하는 건데요'라는 청년 세대의 답변이 시대 정신에 더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기성언론이 할 말은 자살자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자살자가 어떤 사회 구조 속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결핍됐고 자극적 보도로 모방자살 위험이나 증가시키는 기자들. 이들을 뭐라 부를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


태그:#조선일보, #한겨레, #한국기자협회, #보도윤리, #의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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