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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아, 그쪽 소개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미 언론에서 끔찍할 정도로 많이 말해주었으니까요. 스물, 만으로 열아홉 살의 비정규직 노동자. 컵라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스크린도어 수리공.

생각해보면 우린 동갑이에요. 저도 당신도 모두 1997년에 태어났으니까요. 다만 저는 학교에 일찍 들어가 한 학년 위에서 생활했습니다. 흔히 이런 상황을 '족보가 꼬였다'고 하는데, 우리가 친구였다면 호칭을 두고 입씨름을 벌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당신은, 더는 나이 들지 않는 스무 살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죠.

멈춰버린 스무 살, 저는 당신의 죽음만 알 뿐입니다

구의역 앞에 붙은 추모 메시지.
 구의역 앞에 붙은 추모 메시지.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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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꿈은 '강단 노동자'입니다.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강의를 하며 공부하는 게 제 꿈이에요.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아마 더 능력 있는 기술자, 모두에게 인정받는 실력을 갖춘 숙련공이었겠죠. 생각해보면 당신과 저는 참 달랐을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다른 삶의 궤적을 걷고 있어서, 우리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요. 나도 당신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고, 당신도 나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죠. 우리는 그런 사이였어요.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그리고 여전히, 저는 당신의 존재를 몰라요. 당신의 삶을 몰라요. 당신의 죽음만 알 뿐이죠.

당신이 꿈꾸던 20년 후, 30년 후 미래의 모습은 어땠나요. 능력을 인정받는 기술자. 후배에게 선망받고 선배에게 인정받는 숙련공.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헌신적인 리더.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어찌 보면 고리타분한, 하지만 그래서 더 존경받는 사람. 자신의 손을 거쳐나간 이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뿌듯함. 손에 익은 물건들.

밖의 일이 힘들어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만드는 가족.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변함없이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식처럼 당신을 따르는 동생. 그리고 어머니, 당신의 어머니.

제가 꿈꾸는 미래도 비슷합니다.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 학생에게 선망받고 동료에게 인정받는 사람. 언제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죽비 같은 사람. 나이가 들어서도 놓치지 않는 호기심, 열정,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 방을 열 때면 훅 들어오는 오래된 책 냄새.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가족들. 서로에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는 친구들. 나를 응원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 나에게 등 돌리지 않을 믿음직한 이들. 그리고 아버지, 나의 아버지.

우리가 꿈꾸는 삶은 그랬습니다.

하지만, 설령 당신이 살아있다 해도, 우리가 그리던 삶은 다가오지 않았을 거예요.

죽음을 유예한 청춘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없습니다

구의역 추모 메시지, 인건비 아끼려다 사람을 죽였다.
 구의역 추모 메시지, 인건비 아끼려다 사람을 죽였다.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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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에서 일했다더군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도 구분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은성PSD. 2015년 10월에 당신을 채용한 그 회사는, 2017년 10월에는 당신을 정규직으로 받아줬을까요. 아마 아니었을 겁니다.

서울메트로는 어땠을까요. 아마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요. 주말이면, 서울메트로 앞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해 오셨으니까요. 그간 서울메트로는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에야 겨우 대책과 답변을 내놓았지요

장밋빛 미래는 이제 없습니다. 아마 우리는 정규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겠지요. 여기저기를 떠돌다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을 때쯤, 우리는 그 직업에서 도망쳐야 했을 겁니다.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140만 원 남짓한 월급 봉투가 사라졌을 뿐이고, 자기를 소개할 말이 없어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밀려오는 세상의 압박. 당신은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여기저기, 먹고 살 궁리를 해결하다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저물었겠죠.

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온갖 모욕적 대우를 참아내며, 임금 같지도 않은 임금을 쥐고 대학원을 다녀야겠죠. 100만 원도 되지 않는 월급을 견뎌야 할 겁니다. 그마저도 방학 때는 나오지 않겠죠. 다음 학기에도 강의할 수 있을까 늘 전전긍긍할 겁니다. 회의와 유혹이 몰아치겠죠. 저는 아마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는 사이, 또 저의 세상도 저물어갈 거고요.

그래요, 이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세상입니다.

우리는 IMF와 함께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경험 속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은 없습니다.

집도 사랑도 직업도 없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습니다  

구의역의 추모 메시지와 노란 리본
 구의역의 추모 메시지와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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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힐링'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아마 우리가 온갖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증거일 겁니다. 20, 30대 소득은 작년부터 감소세로 돌입했습니다. 국민 총소득 역시 감소하고 있으며, 부채는 이미 소득을 앞질렀습니다. 우리는 아마, 시간이 갈수록 더 나쁜 세상에 살게 될 겁니다.

시대의 낭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절망입니다. 어느 공간이든 서로를 잡아먹어야 승리합니다. 우리는 '무한 경쟁 사회'라는 말을 초등학교 때부터 주입받았습니다. 당신을 눌러야 내가 승리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내 집 마련이요? 제 친구는 아버지가 모아 둔 주택 청약을 깨 등록금을 냈습니다. 1년은 학교에 다니고 1년은 알바를 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온 나라에 반값 등록금을 해냈다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만,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공무원 두 분의 임금으로 사는 저희 집은 등록금을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습니다.

결혼이요? 우리는 외로움조차 둘 공간이 없는 좁은 자취방에서 살아갑니다. 함께 살 집도, 함께 할 여유도 없습니다. 이 세상을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우리는, 그 정도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빈민입니다. 난민입니다. 집도 사랑도 직업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런 상태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정의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죽음의 유예일 뿐입니다.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제 환상과 거짓의 주술은 통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논하는 자는 비웃음의 대상입니다. 저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죽어간 스물의 노동자 당신과, 그리고 죽음을 유예받고 있는 우리 세대 모든 사람들이, 함께 희망의 언어를 비웃을 것입니다.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지 못하고, 스물의 노동자를 지하철이 달려오는 스크린도어 뒤로 밀어 넣는 일은 국가가 존재한다면 벌어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학생들과 같은 나이더군요. 저는 해병대 캠프 참사에서 죽어간 아이들과 같은 나이였습니다. 심지어 저도 그 현장에 있을 뻔했고, 실제 현장에는 제 친구들도 몇 있었습니다.

저는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우연치 않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국가가 어디 있고 정부가 어디 있습니까. 자본주의와 돈, 오직 돈만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세상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비명 소리를 타고 생각합니다

구의역에 들어오는 지하철
 구의역에 들어오는 지하철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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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도 구의역에 다녀왔습니다. 많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사실 당신이 죽고 바로 다음 날, 저는 2호선을 타고 구의역을 지나쳤습니다. 당신에 대한 생각 따윈 없었죠.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역의 이름을 확인하며 몇 정거장이나 더 가야 하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가끔 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동요 없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구의역에 갔습니다. 조용하고 잠잠한 세상 속에, 당신의 죽음을 위로하는 약간의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위로의 쪽지를 붙이고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꿈꾸던 세상은 이미 무너져 버리고 없습니다.

지하철이 들어왔습니다. 당신의 몸뚱어리를 부셔버렸던 지하철. 끽, 하고 울리는 브레이크 소리가 당신의 비명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연히도 자가용을 가질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당신의 몸을 부셔버린 지하철에 올라가, 당신의 비명 소리를 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어제와 오늘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비명 소리를 타고 서울 곳곳을 다녀야 하겠죠.

구의역에 붙은 포스트잇
 구의역에 붙은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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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상상해 보았습니다.

더는 삶과 죽음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누군가의 죽음에 분노보다는 슬픔을 먼저 느낄 수 있는 세상. 컵라면 하나로 한 끼를 때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 고된 노동 끝의 주말을 쪼개 1인시위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 스물의 노동자가 140만 원 남짓한 월급 봉투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자신이 원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도 되는 세상.

그렇게 굴러가고 그렇게 발전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런 세상이라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돈의 대가로 죽음을 요구하는 직장에 당당히 저항할 수 있었겠죠. 그리고 20년, 30년이 지나면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여전히 들끓는 열정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겠죠.

아마, 그런 세상이 오면 저도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강단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학교 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살아야 하는 세상은 없을 겁니다. 더 편하게 강의하고,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겠죠. 큰 걱정 없이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세상이었다면, 당신과 내가 이렇게 죽음으로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아마 언젠가 한 번쯤은 마주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는 당신이 고친 지하철 위에서 노트북을 꺼내 글을 썼을 거고, 그렇게 완성된 책이,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대신 당신의 가방 속에 들어있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서로를 잘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서로의 죽음보다, 서로의 삶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다시, 당신의 비명 소리와 같은 지하철 소리에 상상에서 깨어났습니다. 부질없는 상상일 뿐입니다. 저는 다시 죽음의 유예 속으로 들어갑니다. 당신은 다시 죽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의 살아있음이 누군가의 죽음의 증거가 되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구의역 앞에 놓인 음식
 구의역 앞에 놓인 음식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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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비더슈탄트, 세상을 읽다>와 팀블로그 <이승로그>에 게재됩니다. 딴지일보 독투불패 게시판에도 올라가며, <이승로그>에 올라간 글은 <직썰>에 중복 게재될 수도 있습니다.



태그:#구의역,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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