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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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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세워져 사람들의 관심과 논란이 되었던 일베 상징 손 모양 조각상이 심하게 훼손됐다. 부서진 조각상 위에는 훼손한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A4용지 두 장이 붙어 있었다.

"너에겐 예술과 표현이 우리에겐 폭력임을 알기를,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님을, 모든 자유와 권리엔, 다른 권리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이 조각상을 만든 홍기하씨(22)가 작품의 창작 의도라고 하며 말했던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일베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이것에 대한 논란과 논쟁을 벌이는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 '일베 상징물' 작가 "작품 훼손, 일베와 다른 게 뭔지")

이 조각상은 일간베스트를 상징하는 손가락 모양으로 제작되어 설치 이후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이는 홍익대 조소과의 전시 활동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의 이름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다.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8조, 제21조, 제22조에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조항을 두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19조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판례는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보다 더 엄격한 제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가치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표현의 자유는 예술표현의 자유에서도 똑같이 인정되는 것이다.

판례에 따르면 예술표현의 자유는 창작한 예술품을 일반 대중에게 전시, 공연, 보급할 수 있는 자유다. 예술품 보급의 자유와 관련해서 예술품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 출판자 등도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의 자유를 보호 받는다. 하지만 이런 표현의 자유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 도덕이나 사회 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날 자신이 조형물을 파손하는 데 가담했다고 주장한 한 홍익대 학생은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그 행동은 충분히 계산되고 의도된 행동이었고, 행인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쓰러뜨릴 방향이라든지 방식도 충분히 고려된 상황이다. 뒤처리를 위해 대형 비닐 백도 준비하는 등 우발적이 아닌 계획적인 행동이었다"라고 전하며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의 우월적 지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표현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 상당 부분 제한되고 있지만 미국 등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특히 미국은 표현의 자유 제한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정부나 권력이 표현의 자유 침해를 통제하는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는 여성에 대한 혐오,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비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롱,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악의적 표현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아 왔다. 그리고 일부 일베 회원은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베의 행동과 이번 조각상의 설치는 엄격하게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단체를 언급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일베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설치하는 것은 온전한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이다. 더구나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주최한 행사가 아니라 홍익대라는 학문 단체의 활동의 일환으로 제작한 일종의 사유재산이다. 만일 이 일베 조각상에 의해 자신의 명예나 권리가 침해받거나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하면 법에 의한 구제나 심판을 구해야 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다고 판단할 때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가가 제한하는 것이지 개인이 판단해서 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미학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1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일베 조형물의 훼손 행위에 대해 "일베보다 더 무서운 게 이런 짓 하는 놈들"이라고 비판하며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에 '일베 옹호'라는 딱지를 붙이는 해석적 폭력에 물리력을 동원한 실력행사까지... 어떤 대의를 위해서 남의 표현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짓밟아도 된다고 믿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들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박정희는 영웅이다

경북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앞에 세워진 높이 5미터짜리 박정희 동상.
 경북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앞에 세워진 높이 5미터짜리 박정희 동상.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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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 들어서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관련 사업에 수백억 원의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 구미 박정희 생가 복원에 286억 원, 생가 주변 테마공원 조성 사업에 785억 원, 박정희 민족중흥관 설립에 65억 원, 서울 신당동 박정희 사저 기념공원 조성 사업에 297억 원, 서울 상암동 박정희 도서관 건립에 208억 원, 문경 박정희 하숙집 복원 사업에 17억 원,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울릉도 시찰 때 1박을 했던 옛 울릉군수 관사를 기념관으로 꾸미는 일에도 12억 원의 세금을 사용한다.

난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는다. 박정희를 민족의 영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렇게 전국에 기념공원을 세우고 우상화하는 것은 더더욱 기가 차고 한심한 생각이 든다. 더구나 구미에 있는 박정희 동상을 보면 북한의 김일성 동상과 그 생김새가 비슷해 더더욱 보기가 싫고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기분 나쁘다고 해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정희 동상을 끌어내릴 수는 없다. 나는 일베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들의 생각과 표현에 단 한 번이라도 수긍해 본 적이 없다. 또한 그런 일베 사이트를 상징하는 조각상을 수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의 정문에 전시하는 것도 반대한다.

하지만 학교 측이나 조각상을 제작한 홍씨가 자발적으로 치울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그 조각상을 훼손하거나 치워 버릴 수는 없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또는 자신의 생각이 다수의 생각이라 착각하고 상대방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표현과 창작물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것 또한 표현의 자유이다. 하지만 나와 내가 속한 집단만이 옳고 상대방과 그가 속한 집단과 그 표현과 창작물이 그르다고 판단하여 폭력을 가하여 없앤다고 한다면 그건 '또 다른 박정희 우상숭배자', '또 하나의 일베'일 뿐이다.


태그:#일베조형물, #표현의자유,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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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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