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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시작을 인류의 탄생이 아니라 우주의 탄생부터 본다면 어떨까? 빅뱅부터 시작해서 별의 탄생, 생명의 탄생, 인류의 탄생을 거쳐 문명의 건설과 오늘날 사회까지 본다면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시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과학과 역사의 통합도 가능하지 않을까?

표지
▲ 빅 히스토리 표지
ⓒ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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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시도를 하는 책이 있으니 바로 <빅 히스토리>(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베인 지음)다. '한 권으로 읽는 모든 것의 역사'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인류학 그리고 역사를 한데 버무린다.

이 책은 거대사의 체계를 잡기 위해 '우주의 역사에서 8가지 거대한 전환점'(임계 국면)을 제시한다. '빅뱅' '별의 출현' '새로운 원소의 출현' '태양계와 지구' '지구 상의 생명' '집단 학습' '농경', '근대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빅뱅부터 시작해서 시간 순으로 8가지 거대한 전환점을 제시하며 기나긴 역사를 살펴본다.

우선 이 책은 여러 분야를 한 권에 버무려놨고, 설명이 무척 쉽다. 여러 분야의 지식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날 학문과 도서는 분야가 너무 세분화·전문화돼 있는데, 이는 일반 독자의 피로감을 낳으며 통합적 지식에 대한 요구를 낳을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 판매도 꽤 많이 됐다. 더구나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도 매료돼 적극 후원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재미난 편집 디자인도 눈에 띈다. 강의에 사용한 PPT 자료를 잘 활용했는데, 시선을 끄는 멋들어진 자료들을 감각적으로 배치했다. 문구와 도표 등을 강의의 현장성이 느껴지게 편집했다. 보통은 강의를 글로 옮기면 현장감과 생생함이 줄어들어 밋밋해지는 일이 생기곤 하는데, 이 책은 강의의 현장성을 맛깔스럽게 살렸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빅 히스토리>는 감탄할 만한 내용을 담았다거나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이러한 거대한 시도를 할 수 있던 배경을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빅 히스토리'가 놓인 담론의 지형

우선, 이는 기존 세계사에 대한 반성 덕택에 나올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사는 유럽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유럽 중심주의 세계사는 근대화라는 '유럽이 걸어온 길'을 역사 발전의 경로로 상정해 다른 세계사가 구성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다.

그래서 그간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 신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마틴 버낼의 <블랙 아테나>, 안드레 프랑크의 <리오리엔트> 등의 걸작은 유럽 중심주의 시각을 돌아보게 했다.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유럽 중심주의 세계사를 극복하기 위해 비교사적 접근, 연구 영역의 시공간적 확대, 비서양 지역의 역사 재평가, 유목 역사에 대한 재인식 등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통합하는 아프로유라시아사, 교류의 세계사, 세계체제사, 지구사 등 다양한 구상이 시도되고 있다.

'빅 히스토리'는 이렇게 기존 세계사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로, 역사학계의 기존 세계사 해체 작업과 다양한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지구사라는 새로운 구상이 있었기에 우주까지 포괄하는 '빅 히스토리'도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빅 히스토리>는 이런 역사학계의 흐름에 빚을 지고 있다.

<빅 히스토리>가 지고 있는 또하나의 빚은 과학의 영향력에 있다. 이것은 더욱 오래된 큰 흐름이다. 근대에 들어 과학 분야의 발전은 눈부시다. 오늘날 과학은 인문학 분야의 담론에 매우 중요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철학의 영역이었던 우주론은 아예 과학의 한 분야인 천문학으로 넘어가 버렸다. 본성론은 진화심리학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인지론도 뇌과학을 중요하게 참고하고, 사회생물학이 나오면서 여러 인문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심지어 사회생물학은 '통섭'을 주장하며 과학으로 인문학을 통합하고자 한다.

이렇듯 과거 인문학의 중요한 영역들이 아예 과학으로 넘어가거나, 과학의 주장을 중심으로 재편되거나, 최소한 과학의 성과를 중요하게 참조하고 있다. 이렇게 과학이 다른 분야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빅 히스토리>는 과학의 성과를 그대로 역사 분야로 가져 온다.

정리하자면, <빅 히스토리>는 역사학계의 기존 세계사 반성과 과학의 큰 영향력이라는 이 두 가지 흐름을 타고 나올 수 있었다.

137억 년의 역사는 더욱 복잡한 것들이 출현해 온 역사?

우주의 탄생서부터 역사를 시작하는 빅 히스토리.
 우주의 탄생서부터 역사를 시작하는 빅 히스토리.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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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밥 베인이 지은 <빅 히스토리>는 무척 안타깝다. 가장 큰 문제는 137억 년의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복잡성 증가'의 역사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도를 서문에서부터 명확하게 드러낸다.

"빅 히스토리 강의는 우주, 지구, 지구 상의 생명, 인류의 진화에 대한 간결하고 명료한 설명으로 137억 년 동안 더욱 복잡한 것들이 출현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진실로 오늘날의 현대 인류 사회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것 중의 하나이며, 이 순간은 전체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5쪽)

이 책은 자신이 제시하는 임계 국면(거대한 전환점)마다 복잡성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우주의 복잡성을 증가시킵니다"(112쪽)라거나 "농경은 복잡성이 증가하는 일곱 번째 주요 임계 국면입니다"(317쪽)라고 빼놓지 않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런데 정작 '복잡성'이 무엇인지 정의하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우주와 인간의 역사가 정말 복잡성이 증가해왔는가? 애매모호한 '복잡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우주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동일하게 재단할 수 있을까?

사실, 복잡성 증가라는 주장은 이미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이명현·장대익 등 한국 저자들이 새롭게 쓴 <빅 히스토리> 시리즈(와이스쿨)도 '복잡성 증가'라는 애매한 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또 주목할 것은 그러한 주장이 '우주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밥 베인이 지은 <빅 히스토리>는 오늘날 인류 사회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 "우주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증명 가능한 사실'인가?

게다가 '근대 혁명'은 '빅뱅'과 마찬가지로 '우주적 사건'으로 자리매김된다. 도대체 '빅뱅'과 '근대 혁명'이 같은 수준의 사건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이 공포스러운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대체 인간 중심주의의 오만한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신화에서 존재 의미를 찾곤 했다. 어쩌면 빅 히스토리는 우주적 차원에서 인간의 역사와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조망하거나 우주의 역사 속에서 인류의 위치를 잘 이해하고 통찰력을 얻으려 한다면, 오히려 우주의 티끌인 지구에 사는 인류가 겸손함을 기본 미덕으로 갖춰야 할 테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어 안타깝다.

이과-문과 나누어 서로 멀리했다면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과학책은 보지 않는 인문학도와 인문학책은 보지 않는 과학도에게 다른 분야 입문서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평소 과학책이라면 무조건 멀리했던 이도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라는 네 가지 기본 힘이나 플라스마 우주, 광자, 에너지 섬광, 별의 탄생과 태양계의 형성 등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대중적인 눈높이의 과학 입문서로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자극하는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기존 세계사를 극복하는 데에는 상당한 독창성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앞으로 빅 히스토리가 계속 개선돼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 주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좋겠다.


빅 히스토리 - 한 권으로 읽는 모든 것의 역사

데이비드 크리스천 & 밥 베인 지음, 조지형 옮김, 해나무(2013)


태그:#빅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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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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