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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있었던 전문연구요원 폐지 반대 기자회견 모습.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국 30개 이공계 학생회 대표들이 참가했다. (사진제공: 카이스트신문)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있었던 전문연구요원 폐지 반대 기자회견 모습.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국 30개 이공계 학생회 대표들이 참가했다. (사진제공: 카이스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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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전국의 30개 이공계 학생회 대표들이 국회를 찾은 것이다. 이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외친 메시지는 "전문연구요원 폐지 반대"이다. 나 역시 KAIST 학부 총학생회 대표로 정론관 단상에 올라갔다. 국방부가 전문연구요원 등 대체복무제도 폐지안을 발표하자 전국 이공계 학생회가 결집한 것이다.

국가가 지정한 기관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병역의무를 다하는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국방부는 입영 대상자 수가 감소해 병역자원이 부족하다는 근거로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대체복무제도를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타 분야와 이공계 간의 형평성 문제도 한 가지 이유였다.

전문연구요원이 특혜? 현역병과 같은 '을'

사실 대체복무제도, 특히 전문연구요원 제도에는 시정되어야 할 문제가 많다.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대학원생들이 전문연구요원 지원 기간이 되면 너도나도 연구를 중단하고 텝스 공부를 하게 되는 이공계 연구실의 풍경이 그렇다. 영어성적이 전문연구요원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큰 잣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간에 연구를 그만두게 되면 잔여 기간 동안 현역병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전문연구요원은 연구실 내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일 우려가 크다.

지난해 사회적으로 큰 분노를 산 '인분교수' 사건이 보여주듯 대학원생 인권 문제는 심각하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인분교수 사건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대학원생과 정해진 시간 없이 밤낮으로 연구실에 갇혀 있는 연구원들이 겪고 있는 비인권적 문제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연구요원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상황이 이쯤 되니 '가끔은 군인들이 진심으로 부럽다'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노래, '카이스트 애가'가 떠오른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특혜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나 역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국민정서상 본 제도가 특혜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을까 많이 걱정했다. 그러나 특혜 시비는 내무반 생활을 하며 현역병이 겪는 열악한 처우에서 기인한다. 많은 국민들이 비합리적 군문화와 인권침해 요소들에서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자유롭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상대적 박탈감이 특혜 논란을 불러온다.

이러한 열악한 처우 문제는 현역병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사회가 국가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는 한, 내무반과 연구실 모두에서 청년들의 도구화, 객체화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역병과 전문연구요원 모두 현 제도 하에선 철저한 '을'일 수밖에 없다. 불의에 침묵하기를 강요받고 국가발전을 위한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현실은 우리 청년들 모두가 반드시 바꿔나가야 할 공동의 문제이다.

이공계 학생 의견 반영 안 돼... 국방부의 기습 폐지


이번 사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직접당사자인 이공계 학생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역자원 감소 현상은 20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현실이다. 다른 정부부처나 당사자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기습적으로 졸속 폐지안을 발표한 국방부는 지난 20년 동안 도대체 무얼 했는가?

국방부의 발표 직후 많은 부처와 기관에서 반대 의견을 내자 국방부는 부처 간 협의 과정을 거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는 며칠 만에 '한국식 탈피오트 제도'니, '현역 판정 기준 강화'니 하며 대안을 발표했다. 여론을 의식해 부랴부랴 내놓은 대안이나 소통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는 폐지안이나 모두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입영 대상자 감소 현상에 대한 미봉책일 뿐이다.

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당사자인 우리 이공계 학생들이다. 2019년부터 전문연구요원을 전면 폐지하면 현재 전문연구요원을 고려하여 진로계획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는 학생의 인생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다. 적어도 이런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의 대화가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한 언론사의 폭로기사를 보고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당사자 학생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모습은 국방부가 이 땅의 수많은 청년들을 한낱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나아가 이번 문제는 국방부의 국방을 바라보는 인식이 병사 수 유지에만 한정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입영 대상자 감소에 대비하고자 대한민국은 국방개혁 2020, 2030 등을 마련하여 병사 수 축소와 국방기술력 강화를 추구해왔다. 현대전을 대비한 장기 정책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방부는 국방기술력 향상에 직간접적 기여를 하는 전문연구요원을 모조리 현역병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국방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국방부를 바라보면 다시 한 번 20년 동안 국방부가 무엇을 해왔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국방은 국방부만의 몫이 아니다. 경제력, 외교력, 과학기술 경쟁력 등이 모두 결합되어야 현대적 의미의 국방력 향상을 이룰 수 있다. 병역자원 감소 문제를 주먹구구식으로 받아들여 독단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국방부는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국방 R&D 예산을 매년 확대하면서 국방 R&D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전문연구요원에게는 펜 대신 총을 들게 하는 국방부의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죽하면 병사 수 유지에만 급급한 국방부를 보며 군의 현대화나 국방력 향상보다는 소위 '별'들의 자리보전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청년은 군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도, 도구도 아니다.

국방 기여의 형태가 과거의 현역복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는 현대의 추세에 맞춰 이공계, 비이공계를 떠나 대체복무제도를 보다 확대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국방부는 이제라도 근시안적 대체복무제도 폐지안을 철회하고 이공계와 산업계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영역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독단을 버리고 이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병력 감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항님은 KAIST 학부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입니다.



태그:#전문연구요원, #이공계, #국방부,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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