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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가 팽배하던 작년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여성 혐오가 발생하게 된 것인가'라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누군가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불안정해진 개인의 지위를 이유로, 그로 인해 불안해진 남성성을 이유로, 심지어 누군가는 부동산 위기를 원인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 같은 질문과 답변을 보며 나는 의문에 빠졌다. 경제적으로 호황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항상 특정한 불안에 마주했다. 우리가 볼 때 계급적으로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특정한 성별의 사람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하는 식으로 그것을 해소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성차별 때문에 남자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런데 왜 유독 '남성'들은 항상 '여성'을 때리거나 혐오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는가. 말하자면 왜 남성의 불안은 여성을 통해서 해소되며, 누구도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않는가.

우리가 남성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 김모(34)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9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고 있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 김모(34)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9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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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남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이 '묻지마 범죄'라고 칭했다. 묻지마 범죄, 이 같은 표현은 이 범죄가 불특정의 다수를 향해 있으며 일탈적인 사건임을 함축한다. 다시 말해,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었는데 운 없는 누군가가 희생자가 된 범죄라는 것이다.

이 같은 표현에 발맞추어, 일각에서는 이 사건은 비정상적인 개인이 저지른 범죄일 뿐 다른 차원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범죄가 정말 그런 범죄인가.

경찰에 체포된 범인은 '평소에 여성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졌다. 이 같은 답변이 의미하는 바는 범죄 대상은 애초에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다. 이 범죄는 명백히 '여성 일반'이라는 특정한 대상을 향해 행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살인은 '묻지마 살인'이 아니다. 이 살인은 여성 전반을 대상으로 한 혐오 살인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더 이상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묻지마 범죄'가 아니게 된다. 특정한 성별을 대상으로 한 범죄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광범위한 여성 혐오의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두에서 제기한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가고자 한다. '왜 여성은 쉽게 폭력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가'라는. 아니 정확하게는 '왜 남성은 여성을 그렇게 쉽게 혐오와 폭력의 대상으로 만드는가'.

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강력 범죄의 비율에서 알 수 있듯, 이 같은 상황은 이미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질문에 대한 답 역시도 사회적인 차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한국 남성들이 사회에서 하는 성적 수행들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느냐를 질문해야 한다. 즉 한국 남성들의 젠더, 한국 남성들의 남성성이란 어떠한가를 이야기 해야한다.

오직 여성만이 '규범의 대상'이 되는 상황

17일 새벽 발생한 강남역 살인남 사건에 대한 트위터리안들의 반응. 영화배우 김의성의 트위터.
 17일 새벽 발생한 강남역 살인남 사건에 대한 트위터리안들의 반응. 영화배우 김의성의 트위터.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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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새벽 발생한 강남역 살인남 사건에 대한 트위터리안들의 반응.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트위터.
 17일 새벽 발생한 강남역 살인남 사건에 대한 트위터리안들의 반응.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트위터.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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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에 앞서 이번 사건을 두고 한 남성이 남긴 반응을 언급하고자 한다. 이 남성은 죽은 희생자를 추모하며 '앞으로 여성들을 더욱 보호하겠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이 정도면 이번 사건을 두고 남성들이 보인 반응 중 매우 온건한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바, '보호'는 무조건적이고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보호자는 보호하는 대상에 대해 권력을 가진다. 이 같은 구도는 우리 사회에서 아동이 점한 위치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엄격한 규율의 대상이다.

아이가 충분히 보호받으려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일탈적이거나 아이답지 않은 일을 해선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보호의 대상이 될 때, 필연적으로 보호의 조건과 자격이 정해진다. 이런 것들을 규정하는 보호자는 자연히 큰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반응이 흥미로운 것은, 이 발언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유사한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성들을 혐오하는 이유가 '한국 여성들은 지나치게 허영심이 많기 때문에', '한국 여성들은 지나치게 이기적이기 때문에', '한국 여성들은 너무 남자에게 기대기 때문에'라고 말하곤 한다.

이같은 말들이 전제하는 것은 '원래 여성들이 지켜야 할 본분이 있는데, 한국 여성들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규범적인 여성상을 만들어 두고,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는 여성들을 혐오하는 방식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건, 애정의 대상으로 여기건,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건 간에, 그 배경에는 이상적인 여성에 대한 젠더 규율이 존재한다. 이러니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이 여성을 만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죽고 못 살 것처럼 굴던 사람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거꾸로 남성에 대한 규범은 없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에 대한 규범은 대부분 탈젠더적이거나(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규범) 혹은 여성의 것처럼 큰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지키면 미덕, 안 지키면 어쩔 수 없는 것)하지는 않는다.

의도적인 미러링을 제외하고, 한 남성이 남성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규범을 어기고, 한순간에 'OO남'으로 전락한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한 마디로 남성은 남성으로서 대상화되거나, 남성이기 때문에 규범을 부여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런 식의 대상화는 오직 여성들에게만 적용된다.

불평등한 젠더 관계가 초래한 결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특히나 '한국 여성=김치녀'라는 등식이 성립된 이후,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출구도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거기에 '여성이기에 해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을 정하는 권력은 남성에게 있기에, 혐오 받지 않으려면 지켜야 할 규범은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도래한 상황은 이렇다. 여성을 혐오하고 때리고 죽여야 할 이유는 발로 차일 정도로 넘쳐나는데, 그 반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이처럼 젠더 권력이 불평등하게 배분된 상황에서, 남성들이 폭력적이 되는 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동등한 개인으로 본다면, 그 사람이 날 무시하거나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기까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잘 해주거나 나를 우러러보는 것이 당연한 대상이라면? 그것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응징해야 할 엄청난 잘못이 된다.

심지어 나는 '여성을 사람으로 보기는 하는 걸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특히나 또래 남성 집단에서 여성을 단지 '구멍'으로 묘사하거나 '맛있는 것'이라고 언급하는 표현이 돌 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쉽게 혐오하고 때리고 죽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아니라 '구멍'이나 '먹을 것'에게 그런 짓을 하는데 무슨 죄책감이 들겠는가. 특정 대상의 인간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혐오 발생의 필수적인 단계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이제는 '남성'이 변화해야 한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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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사건이 막을 수 없는 돌발적인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우리가 여성만이 극단적으로 대상화되고, 여성에게만 젠더적인 규범이 부과되고, 그로 인하여 혐오와 폭력이 발생하는 것을 막았다면, 강남역에서 그 사람이 죽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불평등한 젠더관계와 이로 인해 발생한 폭력적인 남성성이 있다.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죽였다'.

남성으로서 나는 좋든 싫든 한국 사회에서 수혜를 입어왔고, 때로는 집단에서의 배제가 무서워 문제에 침묵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무고한 사람이 죽었고, 이번 사건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다. 남성은 변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불평등한 권력 관계위에 서있고, 그것에 기반해 폭력성을 표출하거나 그런 상황을 방관해왔는가를 직시해야한다. 젠더는 본능적인 것이 아니고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 지점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그것이 무고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방치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태그:#여성주의,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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