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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출근길 버스는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 사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은 '어느 하루'인 오늘을 시작하며, 저마다의 길을 재촉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를 마음에 담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날은 누군가에겐 별다를 것 없는 날이겠지만, 남겨진 이에게는 마음 깊이 새겨진 '그날의 또 하루'가 됩니다.

여기, 2014년 5월 17일을 가슴에 새긴 채 2016년 5월 17일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 센터 밑 주차장, 옥상, 사무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여 묵념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 이들은 염호석 열사 기일을 맞아 그의 넋을 기리고 열사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17일 아침 단체 묵념은 서울, 경기, 인천, 충남, 대구, 경남, 부산양산, 울산에 위치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인근에서 이뤄졌다.
▲ 17일 아침 묵념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 이른 아침 센터 밑 주차장, 옥상, 사무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여 묵념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 이들은 염호석 열사 기일을 맞아 그의 넋을 기리고 열사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17일 아침 단체 묵념은 서울, 경기, 인천, 충남, 대구, 경남, 부산양산, 울산에 위치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인근에서 이뤄졌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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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본관을 바라보며 꿈을 꿨던 하청노동자

2014년 5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리기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서 근무했던 고 염호석(34) 열사입니다. 그는 밝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청년으로, 많은 동료들이 따르고 인터넷에서는 고객 미담이 목격되기도 했던 그런 엔지니어였습니다.

삼성 마크를 달고 삼성전자서비스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성? 좋은 직장 다니네"라고 말했습니다. 고객을 만날 때는 삼성 기사로 불리며, 제품 문제에 대한 불만·항의까지 받아내야 했던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는 사실 96%가량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서비스에게, 삼성전자서비스가 100여 개 협력업체에게 이중도급을 준 형태에서 일했던 수리기사의 삶은 팍팍했습니다.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하는 수리기사들은 성수기에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으며, 비수기에는 생활에 대한 마땅한 보장 없이 빚 잔치를 해야 했습니다. 시간과 생활의 여유가 없어 일하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으로는 '햄버거·라면·김밥'을 꼽았습니다.

또한 삼성의 실적관리와 경쟁체계에 따라 자아비판, 대책서를 쓰고 업무가 끝나도 퇴근하지 못한 채 무급으로 '해피콜'을 해야 했습니다. 주말에는 관리자의 소집으로 산에 올라가 "회사에 폐가 되지 않도록, 실적 달성하겠다"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새벽녘 잠꼬대에도 "고객님,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위험한 실외기 수리 작업에도 안전장비 없이 난간에 몸을 맡길 때면, 이 직장 계속 다녀야 하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3년 7월 14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용기 있게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나선 수리기사들에게 사람들은 "골리앗에 맞선 다윗"이라고 말했습니다.

염호석 열사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간부였습니다. 그는 양산센터분회 분회장으로 활동하며,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소비자와 엔지니어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오자"라고 앞장서서 외쳤습니다. 그는 삼성의 표적 감사, 위장폐업, 노조탄압의 홍수 속에서도 노동조합을 인정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염호석 열사가 과거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던 글
▲ 염호석 열사의 페이스북 게시글 염호석 열사가 과거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던 글
ⓒ 염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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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4일, '임단협 쟁취, 생활임금 보장, 노조탄압 중단'을 외치며 삼성본관 앞에서 상경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염호석 열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동료들의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7일, 그는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겠습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슬퍼했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지가 있었기에 절망에 빠져있을 순 없었습니다. 그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호석아! 너의 꿈, 우리가 이룰게"라고 외치며 노숙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울고 또 웃으며 노숙농성을 벌였고 2014년 6월 28일 기준단협을 체결, 삼성의 76년 무노 경영을 끝냈습니다. 그가 죽은 지 45일 만에 전국민주노동자장이 치러졌습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 우리 스스로 만들어갈 미래를 꿈꾸며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5월 17일, 2년이 지났지만 염호석을 기억하는 동료들은 또다시 호석이의 꿈과 희망을 이어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2016년 임단협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의 기일을 맞아, 그를 기억하는 동료들이 지회로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2016년 5월, 우리는 호석이를 단순히 추모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또다시 민주노조를 꿈꾸기 위한 거대한 투쟁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전 조합원이 하나 되어 염호석 열사정신을 계승하고 2016년 임단투 승리로 나아가 호석이의 꿈과 희망을 이어갑시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라두식 지회장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한 5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 전하지는 못하지만…. 유일하게 그 말을 최근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호석이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태원 양산센터분회장

"현장에서의 실천과 행동만이 염호석 열사가 바라던 마지막 당부를 지키는 것, 삼성을 바꿔서 동료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했던 그의 다짐을 이뤄내자."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이동석 해운대센터분회장

염호석 열사 2주기 추모 사진전
▲ 2주기 추모 사진전 1 염호석 열사 2주기 추모 사진전
ⓒ 염호석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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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호석 열사 2주기 추모 사진전
 염호석 열사 2주기 추모 사진전
ⓒ 염호석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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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민지 시민기자는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에 함께하고 있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선위원입니다.



태그:#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2주기, #염호석열사회,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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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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