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리벳공 로지 포스터.
▲ 페미니즘 남성과 여성의 능력이 차이가 없음을 의미하는 페미니즘 구호.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하기에 따라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페미니즘의 핵심 명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인지를 규명하는 것은 대단히 민감하고 정치적인 문제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은 그 경계를 설정하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메갈리아'를 비롯해 곳곳에서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최근의 한국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을 인지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차별 발언, 성적 대상화, 유리천장.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이 모든 것들을 경직된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이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 경직성조차도 남성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차별에 대한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마찬가지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까지 짜냈던 용기에, 사회는 언제든지 경의를 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이 어떤 차별을 겪고 살아가는지 몰랐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차별성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라넷'과 같은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아니면 나는 그런 사이트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여성들이 받아야 했던 피해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최근의 논의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 그것은 '여혐'이라는 용어에 대한 부분이다.

흔히 '여혐'이라고 하는 말은 '여성혐오'의 줄임말로, 영어의 'misogyny(미소지니)'라는 말의 번역어다. 이 말 자체가 'miso- (싫어하다)'와 '-gyny (여성)'의 합성어라고 하니, '여성혐오'라는 번역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영어 사전을 찾아봐도 그렇다. 'misogyny'는 "여성을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영어에서 말하는 'misogyny'도, 우리가 말하는 '여성혐오'도 단순히 '여성에 대한 혐오'만을 지칭하는 표현은 아니다. 'misogyny'는 "흔히 성차별, 적대감, 남성 우월주의, 여성 폄하, 여성에 대한 폭력, 성적 대상화를 통해 드러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여성에 대한 편향적 사고"나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우리말의 '여성혐오'도 정확하게는 이와 유사하게 넓은 의미를 가진 용어다.

영어의 'misogyny'가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여성혐오'는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싫어하는 감정이나, 여성 집단에 대한 극렬한 혐오주의 정도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SNS상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저 여자 좋아하는데요" 류의 답변이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여성혐오를 단순히 "여성 개인에 대한 혐오"로 이해하고,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편견과 차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영어 'misogyny'는 쉬운 말로 만들어진 합성어는 아니다. 하지만 '여성혐오'라는 말은 지나치게 단순해서, 그 용어에 대한 성찰을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여성혐오'를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사고의 과정이다. 단어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니까. 여기서 '단순하다'는 것은 '단편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명료한'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용어에 대한 편향적 이해는, 성차별적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는 사람이라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여성혐오"라는 단어와 여성혐오적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는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차별에 대한 의식과 고민이 일상이 되는 사회로 나가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결국 대중을 이끌고 가야 하는 철학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성을 혐오하는 이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혐오'라는 용어를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해야 할 사람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에서 너무도 쉽게 "여성 집단에 대한 극렬한 혐오주의"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다.
 '여성혐오'라는 용어를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해야 할 사람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에서 너무도 쉽게 "여성 집단에 대한 극렬한 혐오주의"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있다. 그리고 그 말을 써먹어야 하는 대상, 그러니까 '여성혐오'를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그것은 그들의 사고의 단순성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여성혐오'라는 용어의 단순성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떤 단어든, 그 단어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정의된다. 내가 책을 냉장고라고 불러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고로 만약 사람들이 '여성혐오'라는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 용어의 단순성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정작 이 용어를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해야 할 사람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에서 너무도 쉽게 '여성 집단에 대한 극렬한 혐오주의'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다.

무작정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섣부른 결론이다. 사회적인 합의가 만들어지기에는, 이 단어가 대중과 만난 기간이 너무 짧다. 아직은 이 단어와 대중의 인식이 만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 단어가 제대로 된 의미로 정착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대중은 이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까? 알 수 없다. 언중의 선택이 어디를 향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바꿀 수도 있다. 아니면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유지한 채로 사회 대다수가 정확한 의미를 받아들이게 힘쓸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사실 크게 관계는 없다. 이것은 단순히 효율성의 문제다. 페미니즘의 당연한 명제에 대중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이것이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라면,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지키기보다는 정확한 단어로 교체하는 것이 더 편리하지는 않을까? 이런 의문 자체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여성혐오'를 대체할 적절한 단어가 무엇일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그 대체재가 더 효율적으로 대중 인식을 끌어낼 수 있다면, 굳이 '여성혐오'라는 말을 수호할 필요는 없다.

대체재의 후보는 지금도 몇 가지 떠오르긴 한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도 있고, '성차별'이라는 아주 쉬운 단어도 존재한다. '여성 차별'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고, '미소지니'라는 원어 그대로를 쓰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다만 말마다 약간의 어감 차이가 있고, 어느 용어가 "여성에 대한 편향적 사고"라는 정확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페미니즘 공동체 내에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떤 노력이 더 효율적일까? '여성혐오'라는 말을 대중에게 제대로 인지시키려는 노력과, '여성혐오'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여성혐오'라는 말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함이, 전자를 쉽게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사회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여성혐오'의 본질적 속성을 논하려는 것도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대중을 상대하기에 효율적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대체재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주 간단한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비더슈탄트, 세상을 읽다>와 팀블로그 <이승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