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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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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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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성아파트 1층 전용대(75)씨의 집에는 지게가 한 짐이다.

과학 원리로 짐의 부피와 무게를 배분해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 짊어지도록 고안한 도구, 지게. 각종 운송수단들이 발달한 시대에 이제는 시골에 가도 보기 어려워진 그 지게를 전씨는 아파트 거실에서 만들고 또 만든다. 물론 크기는 아주 작다. 말하자면 미니어처다.

그의 집 거실에는 백개가 넘는 지게와 미처 몸통을 만나지 못한 바지게 수십개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벽 모서리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있는 지게들은 무슨 무늬 같기도 하다. 장식장 위 손녀의 돌사진, 자식들 대학졸업사진 사이사이에도 지게가 놓여 있다.

"벽인지, 방인지 정신이 하나두 읍서. 이것도 내가 치운 게 이려."

푸념하듯 말하는 부인 옆에서 전옹이 한마디 한다.

"먹고 그냥 있으면 심심혀서 장냥삼아 허는 거지."

전용대옹이 자신이 만든 지게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용대옹이 자신이 만든 지게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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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가 좋아 지금도 목수일을 나간다는 전씨는 미니어처라도 바지게 싸릿대의 간격, 개수, 지게다리의 각도와 구멍(지게는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맞춘다) 위치 등을 정확히 계산해서 만든다.

"숫자적으루 계산을 잘 못허믄 안되여. 하나하나 맞출라믄 정확혀야지. 또 나무는 각각이란 말이지. 남자 여자 승질 다르듯 그려서. 또 바지게는 만든다구 안허구 친다구 허는 겨. 엮는 거니께. 이게 보매는 간단한 거 같애두 90전(목수들이 현장에서 쓰는 길이 단위)짜리 싸리가 한 270개 내지 280개 들어가야 되여…"

그러고는 충청도 원단사투리가 구수한 전씨의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지게 만드는 법을 아예 처음부터 가르칠 것처럼 지게의 구조와 제작순서, 재료 고르는 법까지.

누구로부터 배운 것도 아니고, 도움 받은 적도 없이 혼자서 연구해서 만들기 시작했다는데도 크기별로 수치와 개수, 나무 형태까지 상세하기 이를데 없다.

옆에서 봄나물 다듬던 부인이 나선다.

"싸리두 다 산이 가서 찐거유. 날이 추운지 더운지 상관 않고 눈 하얗게 와도 산으로 가유. 차나 있어? 버스 타구 댕이지. 겨울같은 때는 하루종일두 만들어유."

"지게가 원은 소나문디 은행나무로다 혔어. 농전에 있던 은행나무 죄 벴잖여? 근디 거기서 움나오길래 쪄왔지."

아름드리 나무까지 모두 베어버려 100년 넘는 역사의 흔적이 사라진 예산농고, 전옹이 만드는 지게의 몸통이 되고, 다리가 되고 작대기가 됐다니 다시 보인다.

20여년 전 금오산 오르다 소나무 주워 지게 만들기 시작

전용대씨의 아파트 거실 벽에 줄 맞춰 걸려있는 지게들과 바지게(왼쪽).
 전용대씨의 아파트 거실 벽에 줄 맞춰 걸려있는 지게들과 바지게(왼쪽).
ⓒ <무한정보신문>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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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가 지게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년전 쯤. 금오산에 오르다 "지게다리는 원래 오여짝, 바른짝 따로 있는디, 딱 좋은 소나무를 주워 우연히 만들면서부터"란다. 그 첫 작품은 지금도 그의 집 현관 입구에 놓여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지게일까?

"내가 조실부모 허구 쬐그마서부터 지게질부터 헌 거여. 열한살, 열두살쯤 됐지 아마? 옛날에 배고팠을 때는 움직이지 않으면 밥 안줬거든. 남의 지게 져다가 돼지풀이라두 베다 주믄 '이눔 싸가지 있네' 허구 밥 먹을 수 있구.

그 기억에 못박혀서 내가 걸어온 인생을 생각한 거지. 내가 옛날에 바지게를 만들었다. 지게를 지었다. 지금에 와서 지게가 뭐라구. 내가 사회발전 헌 것두 아니구,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 헌다는 뜻에서 허다 보니께 늘어놓은 거여."

부인 반대를 무릅쓰고 거실에 이어 주방까지 간격 맞춰 걸어두는 걸 보면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 보인다.

"그런거 읍구. 그냥 남이 볼적이 무득헌 사람이 이런 거 만들어놨다는 게 흠흠헌 거지 뭐."

바지게에 말린 꽃이며, 과일, 장식품들을 올려놓으니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그만인데 정식 판매는 하지 않는단다.

"일헐 때 품매갖구 허믄 안되는 거구, 또 재미두 읍서지는거구, 보고 느끼는 게 있으야지. 돈이루 생각혀서는 안맞어."

"남들이 이러구 저러구 맘에 드는 거 다 가져가구 우리집에는 치래기만 남어서 지발 허지말라구 해두 그리키 만드네유."

"누구 줄 때는 제일 이쁜 거를 주야, 그래야 그다음으로 이쁜 게 또 젤 이쁜 게 되는 법이여. 사람두 그려. 100명 중이 이쁜 사람 있는디, 그 사람 빠져나가믄 그 밑이눔이 이쁜눔 나오잖어. 그 밑이 사람두 생각혀야지."

평생 날일하며 부지런히 살아온 전옹의 입에서 살아가며 새겨야할 지침들이 툭툭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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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지게, #지게 미니어처, #지게질, #전용대,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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