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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계절 5월입니다. 오늘이 12일이니 5월 하고도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군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하는 온통 짙은 녹색으로 물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이 자연을 헤치며 대형 버스 두 대는 기쁨의 숨을 연신 몰아쉽니다. 달리다굼선교회 주관 장애인 봄나들이입니다. 70여명 회원들이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회장 이두성 목사에 의하면 목적지는 두 곳입니다. 남원 광한루(廣寒樓)와 산청 동의보감촌(東醫寶鑑村). 두 곳 다 가 보지 못한 곳이어서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마음 속 깊이 감춰져 있던 동심이 발동하더군요.

어린 학창 시절 소풍에 대한 향수가 슬슬 피어올랐습니다. 달리다굼선교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승현 목사의 기도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의탁하게 만들었습니다.

찬양 메들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짝을 지은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요. 간헐적으로 귀에 잡히는 얘기들을 종합하면 살아 온 험악한 세월에서 겪은 간증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 온 삶은 깊은 질고(疾苦)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손길이 아니었다면 쉬 주저앉고 말았을….

오전 8시 40분에 김천 제일교회 주차장에서 출발했는데 남원 춘향테마파크에 도착하니 11시 10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두 시간 반이 소요되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그런데 좀 의아했습니다. 앞쪽 벽을 이어 버스를 기역(ㄱ) 자로 바짝 붙이는 것이. 그러니까 벽까지 계산에 넣으면 디귿(ㄷ)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운전으로 봉사를 자청한 황악산여행사 김일중 집사님의 아이디어입니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광 가이드 자격증을 갖고 있는 프로페셔널 안내인입니다.

남원 춘향테마파크 주차장에서 드린 도착 노상예배. 이 자리에서 달리다굼선교회 이사장 장승현 목사는 "삶을 조율합시다"(롬 12:2)라는 제목으로 장애우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 춘향테마파크 근처 노상에서 드린 예배 남원 춘향테마파크 주차장에서 드린 도착 노상예배. 이 자리에서 달리다굼선교회 이사장 장승현 목사는 "삶을 조율합시다"(롬 12:2)라는 제목으로 장애우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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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만의 공간을 급조한 것이지요. 눈치를 보니 그 공간 안에서 도착 예배를 드리고 또 점심 식사를 할 것 같았습니다. '2016 달리다굼 장애인 나들이' 도착 예배가 회장 이두성 목사의 사회로 시작되었습니다.

478장 '참 아름다워라' 찬송에 이어 새별동산교회 나혜영 목사가 즐거운 하루 나들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교회 이사장인 장승현 목사가 "삶을 조율합시다"(롬 12:2)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애인 형제자매들의 마음을 터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긍정으로 삶을 조율하고, 믿음으로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늘 삶을 조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조율한다면 믿음으로 육신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찬송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를 부른 뒤 설교자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습니다.

맛있는 점심시간입니다. 봉사하는 분들의 손발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무리 지어 앉은 사람들을 보면서 복음서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떠올랐습니다. 몇 개로 나뉜 우리들이 그랬고요, 그것에 더해 크지 않은 상자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산채비빔밥 재료들이 그랬습니다.

준비하는 분들의 음식 솜씨가 아마추어의 선은 한참 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공된 음식은 잘 버무린 산채비빔밥, 우거지국, 수육, 김치 그리고 후식으로 수박이 나왔습니다.

춘향테마파크에서 광한루까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 개최되는 춘향제(5월 13일 - 5월 16일)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어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 정문)가 아닌 서문으로 입장했습니다.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 이루어진 광한루(廣寒樓), 첫걸음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 이상했습니다. 김천교회 이대근 목사와 짝이 되어 춘향의 사랑 흔적 찾기에 나섰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날 때 건넜다는 오작교(烏鵲橋)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광한루 춘향사당 앞에서 이대근 목사(왼쪽)와 함께. '열녀춘향사(熱女春香祠)'라는 현판에서 춘향의 일편단심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춘향사당 앞에서 김천교회 이대근 목사(왼쪽)와 함께 광한루 춘향사당 앞에서 이대근 목사(왼쪽)와 함께. '열녀춘향사(熱女春香祠)'라는 현판에서 춘향의 일편단심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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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 춘향사당으로 향했습니다. 아주 작은 사당. 앙증맞기조차 했습니다. 현판에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라고 꼬불꼬불한 전서체(篆書體)로 쓰여 있었고 안에 어여쁜 한국 여인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춘향 영정입니다. 이 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작품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삼신산(三神山, 瀛洲閣=漢拏山, 蓬萊亭=金剛山, 方丈亭=智異山)의 세 정각이 춘향사당을 보호하듯 서 있었습니다.

달이 뜨는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 완월정(玩月亭)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춘향제 행사의 주 무대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춘향관은 고풍스런 건물 속에 현대 시설을 갖춘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박남재 화백의 작품, 유화 9폭으로 된 춘향 일대기가 누 백년의 시공을 거슬러 올라 가 조선 시대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는 장신구와 서화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춘향과 관련 있는 서적도 친근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마지막 들른 곳이 월매(月梅)집입니다. 월매는 주막을 운영하는 여인으로 춘향의 어머니입니다. 춘향과 이몽룡이 부부지정(夫婦之情)을 맺는데 월매의 역할이 적지 않습니다.

당시 생활상을 느낄 수 있도록 생활 도구와 밀랍 인형을 전시해 두었는데,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서민풍이 물씬 피어올랐습니다. 향단이 부엌에서 밥 짓는 모습과 방자가 행랑채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집안 분위기를 더욱 현실감 있게 제공했습니다.

관리사무실에 들려 춘향제 안내 팸플릿을 한 부 얻고 담당 직원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지 않았느냐고 슬며시 찔러 보았습니다.

달리다굼선교회 장애인 나들이 단체사진. 이 사진은 다음 목적지 산청 동의보감촌 기체험장 앞에서 찍은 것이다.
▲ 달리다굼선교회 회원 단체사진(산청 동의보감촌 기체험장 앞에서) 달리다굼선교회 장애인 나들이 단체사진. 이 사진은 다음 목적지 산청 동의보감촌 기체험장 앞에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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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원이 답변하기를, 관리 운영비의 50% 정도밖에 보전이 안 되어 나머지 50%는 시(市)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광지에 비해 양호한 편이라고 했는데 여타의 곳은 10%를 넘지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몸들이 불편한 분들이었지만 비교적 시간을 잘 지켜 지연되지 않고 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성이 그만큼 철저하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광한루 내 오작교는 결혼한 사람이 건너면 와르르 무너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까마귀(烏)와 까치(鵲)가 머리를 맞대 만들어 주는 다리여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오작(烏鵲)'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장정 팔뚝만한 물 속 붕어 떼만이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모두들 얼굴엔 일 하나 해 냈다는 포만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휠체어를 버스 짐칸에 싣고 우리는 남원 광한루의 춘향과 작별을 했습니다.


태그:#달리다굼선교회, #광한루 관광, #춘향제, #촌향이와 이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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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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