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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4월 13일 총선 때 치러진 우리 지역(고흥군의회 나선거구, 과역·남양·동강·대서면) 군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5명 후보자 중 5등(3%) 했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그 때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십 년 된 양복을 입고 먼지 쌓인 랜드로바를 신고 첫날 트럭을 끌고 나갔던 그때의 막막함보다는 훨씬 쉬웠다.
   
나의 군의원보궐선거 방송차량이다.
▲ 군의원선거 유세차량 나의 군의원보궐선거 방송차량이다.
ⓒ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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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 사는 친구가 전화해서 "너 나갔담서야. 고생했다"고 한다. "응, 꼴등했네." "사전에 연락이라도 하재." "뭘 그런 걸 다 연락한당가." 그리고 서먹해진다. 그렇게 냉담할 일도 아닌데, 사실 매우 의미 있었고 대견한 일인데, 나는 뭐라고 해명하기가 어줍잖다.

지난 3월 21일 군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가 출마 의사를 밝히고 25일 마감 직전까지 후보자 등록서류를 간신히 마쳤다. 26일부터 30일까지 공보물, 명함 인쇄, 차량 수리, 앰프 임대, 어깨띠 등을 준비했다. 마을 주민들에게도 출마인사를 드릴 짬이 없었다. 선거현수막은 4월 5일에 달았다.

나의 '급작 출마'는 세 가지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환경의 위기, 농업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내가 사는 산골에 대형 풍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쌀농사마저 무너지는데 항의한 농민을 뇌사 상태에 빠뜨린 정부, 주민들의 삶은 외면하고 지역주의만 부추기는 허구적인 선거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선거 출마에 부정적인 친척들

나는 급한 대로 몇 안 되는 친척들에게 출마 사실을 알렸다. 지연과 혈연이 깊은 농촌지역 군의원 선거라 나의 출마는 친척들에게 부담이었다. "무엇 때문에..." "인자서..." 등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더민주 대 국민의당 대결이 치열한 전라도 농촌지역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 며칠 남기고 무소속 군의원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나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할말이 있어서..."

선거운동 주요 장소인 오일장은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국회의원 후보들의 차지였다. 아수라장 같은 그곳에서 혼자 선거운동을 하는 나는 간신히 명함을 나누어 줄 수 있었다. 할 말이 있어서 나온 나는 저 귀퉁이에 앰프 차량을 놔두고 시골장이 거의 파할 때까지 다른 국회의원 후보 연설원들의 유세를 듣고 있었다.

한숨 같은 웃음이 나왔다. 오후에 나는 방송차량을 끌고 들판과 마을을 돌았다. 첫날부터 3일간은 '선거 출마의 변'을 담은 녹음방송을 했다.

"훌륭한 여러 선후배님이 계시는데 이렇게 나서게 되어 송구스럽다." "선거는 주민들이 오늘의 과제와 내일의 전망을 결정짓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찾아뵙고 저의 세가지 선거공약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이필원의 '님의 오는 소리'를 연결시켰다. 이 생소하고 엉뚱한 선거차량 방송에 대한 주민들은 반응은 정확히 모른다. 아마 색다름, 어색함, 촌스러움이지 않았을까.

나는 나를 찍었다

선거운동 4일째부터 내가 공보물에 밝힌 3가지 공약에 대해 녹음방송을 했다. 처음과 달리 볼륨도 높여서 마을마다 가장 잘 들릴 것 같은 언덕배기에 차를 세워두고 녹음방송을 틀었다. 가끔 멀리 들에서 일하는 아짐들이 내 차량을 쳐다봤다. 그사이 마을 노인회관에 들어가 인사를 했다. 내 방송이 건물 안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선거운동 중간에 나는 이미 느낄 수 있었다. '될 사람을 찍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더민주 대 국민의당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국회위원뿐만 아니라 군의원 선거까지 결집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었지만 나의 존재는 낄 틈이 더욱 좁아져갔다. 나는 더욱 초라하고 씁쓸했다.

그리고 4월 12일 마지막 날, 몇 개의 거점마을을 선정해 녹음방송이 아니라 생방송을 했다. 준비된 원고를 운전석에서 마을을 향해 낭독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할까 일종의 질책 같은, 꿈틀 같은, 그러나 점잖은 행위였다.

"제가 선거운동하러 마을을 찾아다녔는데 너무 연로하신 노인들 뵙기가 죄송스러웠다. 아이 울음소리 끊어진 지 오래된 이 농촌현실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것인가, 이 과제의 해법을 말하는 것이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인데 이번 총선은 그렇지 못했다. 지역사회의 과제를 해결할 일꾼을 뽑는 것이 선거다. 다시 한 번 후보자들의 공보물을 꼼꼼히 봐 주시고 투표하시길 바란다."

날이 어두워 집으로 돌아오니 먼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었다. 투표일, 차량에 붙인 홍보물을 뜯고 앰프를 해체해 순천 대여점에 반납했다. 가장 한가할 것 같은 점심시간에 나에게 투표를 하고 웃었다. 일찍 불 끄고 자려 하는데 저녁에 걱정해준 누군가가 개표장에 있냐고 전화가 왔다. 잠이 오지 않아 텔레비전을 보는데 야당이 선전하고 있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카페 '고흥이야기(http://cafe.daum.net/ghstory)'에도 올립니다.



태그:#군의원선거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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