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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제학부 이인호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이인호 교수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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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이 없었다. 줄곧 한국은행(중앙은행)을 짓누르는 정부에 대해 날을 세웠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한국은행에 덤터기를 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이 없으면 구조조정이 안 될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도 했다.

정부는 조선·해운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는 '한국판 양적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을 통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자본출자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4일 기업구조조정 지원 방안을 두고 '출자'보다는 '대출'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정부와 이견을 보인 것이다. 이 총재의 발언 이후 지난 2009년 마련한 자본확충펀드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본확충펀드는 채권(차용증서)을 담보로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준 후 기업이 정상화 되면 갚는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 발권력을 통한 직접지원이 아닌 간접지원이다.

이날 오후 한국은행이 내놓은 새로운 해법과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이 교수의 생각을 듣기 위해 교수실을 찾았다. 이 교수의 하얗게 센 머리 뒤로는 방대한 분량의 전공서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UCLA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35년 여간 금융시장과 금융정책의 효과에 대해 연구해 왔다.

"지금 우리 경제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위급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외환 위기나 한국 경제 전체의 불안정 등 위급상황이라면 돈을 찍어도 되지만 그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위급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외환 위기나 한국 경제 전체의 불안정 등 위급상황이라면 돈을 찍어도 되지만 그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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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자본확충펀드에 대해 "한국은행이 최대한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으로 기업의 부실채권(채무자의 사정으로 받기 어려운 돈)을 사주고 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한 후 돌려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답답함을 표했다.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발권력을 동원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국회를 통하지 않으려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누구하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경제 상황, 한국은행이 발권력 동원할 정도 아니다"

- 이주열 총재가 지난 4일 자본확충펀드를 사례로 들었다. 정부는 발권력을 통한 한국은행의 출자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확충펀드는 발권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고 회수 가능성도 높아 최선의 대안이다. 직접투자를 할 때는 투자를 하려는 곳의 상황을 들여다봐야 한다. 돈을 얼마만큼 빌려줘야 하는 것인지, 빌려주고 나서는 빌려 받은 대상이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정부는 돈을 내놓으라고는 하는데 부실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으니 얼마를 달라는 것인지 대답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한국은행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 우리 경제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위급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외환 위기나 한국 경제 전체의 불안정 등 위급상황이라면 돈을 찍어도 되지만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라는 것. 하지만 정부는 발권력 동원을 택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국회를 통해 예산을 받아내는 것은 어려움이 있는 데다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당장 해결해야 할 부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 기재부 등에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에 대한 계획을 6월 말까지 완료한다고 한다. 실현 가능할까?
"(고개를 저으며) 6월이면 19대 국회도 끝나고 시간이 촉박하다. 또 방안을 내기에 앞서 산업은행의 대주주 문제 등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대우조선해양 등 분식회계(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림) 의혹에 대해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알면서 안 한 것은 잘못한 것이며 진짜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산업은행이 돈을 빌려 줄 때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전문가만을 믿고 그냥 빌려줬을 리가 없다. 또 빌려준 후에도 대주주로서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전문가를 불러서 사태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을 것이다."

"구조조정을 얘기하자면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말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얘기가 안 나오고 있다. 이상하다.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서 지원한 돈이 많은데 이 돈을 못 받으면 법정관리까지 가게 되니까 장사가 안 된다는 논리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은 근본적으로 용선료 인하나 해양플랜트 적자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중요하다."
 "구조조정을 얘기하자면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말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얘기가 안 나오고 있다. 이상하다.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서 지원한 돈이 많은데 이 돈을 못 받으면 법정관리까지 가게 되니까 장사가 안 된다는 논리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은 근본적으로 용선료 인하나 해양플랜트 적자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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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의 해명에 대해 "바보 같다"고 했다. 또 정말 몰랐다면 "(자리에서)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산업은행에서 내려 보낸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이 몰랐을 리가 만무한데 그렇게 해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정부는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이 있는 듯하다.
"(강한 어조로) 한국은행이 돈을 안 넣어서 구조조정을 못 하겠다? 이런 생각은 이해를 못하겠다. 한국은행이 지원을 하든 하지 않든 (기업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에 물린 돈이 많다. 한국은행은 주로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을 통해 지원이 들어간다."

"기업들 정부 도움없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 정부가 내놓은 구조조정 방안은 어떻게 보나?
"정부가 그동안 산업은행을 통해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대주주가 되면서 여러 문제가 나왔다. 그래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재정을 직접 동원하지 않게 된다. 정부 입장에선 부담이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국가가 만들어낸 또 다른 빚이다. 문제는 그 빚을 언제, 얼마를 갚는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없다는 거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통하면 재정부담은 없지만 이것도 국가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빚이다. 다만 언제 얼마를 갚는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없다. 재정적자가 너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통하면 재정부담은 없지만 이것도 국가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빚이다. 다만 언제 얼마를 갚는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없다. 재정적자가 너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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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일부 학자는 폴리시믹스를 제시했는데.
"(잠시 생각하더니) 재정과 금융을 같이 분담하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 정책 조합)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것을 재정으로 하는 것보다는 낫다. 예를 들어 수출입은행은 한국은행에서 어느 정도 출자를 할 수 있으니 부분적으로 한다. 한국은행이 갚을 돈이 없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다."

- 유 부총리가 구조조정 재원을 두고 "5조 원 갖고 될지", "며칠 새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
"유 부총리의 이 발언은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책당국도 얼마가 필요할지 모르는 것이다. 잘 모르지만 일단 꿔달라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무거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에서도 정부는 잘하지 못했다. 지금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 교수께선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는 구조조정보다는 이해 당사자들의 구조조정을 주장해왔다.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에 대해 지원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은 조선·해운 등의 전문가가 아니다. 시장에서 몇 십 년을 지내온 사람들이 협의를 통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시장은 예전과 달리 매우 복잡해졌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싸워야 한다. 이 과정은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도출하기 위한 절차다." 

- 이해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기업들은 정부의 도움없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위기시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자생력이 없다고 하는데 (정부는) 혼자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스스로 일어서기 어렵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정권에 잘 보이면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커지고 기업들은 정권에 잘 보이려고 줄을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책은행(산업·수출입은행)의 인사들이 민간 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문제도 있는데 고쳐야 한다."

끝으로 이 교수는 정부가 국민으로 부터 사회적 합의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결국 국민인데 돈을 찍어 낼 사람만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국회에서 소위 등을 통해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며 "이제 삼당 체제가 됐으니 여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위급한 사안이고 구체적인 날짜까지 나온 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위급한 사안이고 구체적인 날짜까지 나온 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급한 사안이고 구체적인 날짜까지 나온 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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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은행 , #구조조정, #이주열, #이인호 교수, #자본확충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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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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