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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주년 세계노동절인 지난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폐기와 노동장관 퇴진, 경제위기 주범 재벌책임 전면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주35시간 노동제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 노동기본권 쟁취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민주노총, '세계노동절대회' 개최 제126주년 세계노동절인 지난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세계노동절대회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폐기와 노동장관 퇴진, 경제위기 주범 재벌책임 전면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주35시간 노동제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 노동기본권 쟁취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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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 노동에 대해 침묵하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즈음하여 <경향신문>의 한 기사를 접하였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한 공업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공업 일반' 시간을 매주 2시간씩 할애하여 노동인권 체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남공업고등학교의 임동헌 교사는 최저임금 밥상 차리기, 모의 단체교섭, 노동법 연극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인권 수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경향신문 2016.05.01).

이 시대에 저런 스승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와중에 어린이날을 맞이하였습니다. 노동절과 어린이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기념일을 경유하면서 그 기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 친구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사회 속에서 실제로 자신이 처할 존재 조건에 대비한 교육을 얼마나 받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말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일까요?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면 1981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993년에 졸업할 때까지 노동자의 권리 내지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나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울 것을 강요당한 반면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비롯한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는 관련 용어를 기계적으로 외운 경우를 제하고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배운 바 없습니다. 노동인권은 차치하고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혼란과 위험성을 지적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2012년 1학기 시중에 출판된 사회 관련 교과서 62권을 전수 조사한 결과 총 1만7260쪽 분량 가운데 노동을 다룬 내용은 159쪽으로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오마이뉴스 2012.03.17). 교육 내용의 미진함에 비례하여 교육 시간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최근 <경향신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노동 관련 교육을 받는 시간은 고작 5시간에 불과한 실정입니다(경향신문 2016.04.29).

교육이란 개인에게 닥칠 미래의 존재 조건에 대한 준비 과정이고, 조만간 도래할 미지의 사회에 대한 사전 적응 훈련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직・간접적으로 노동자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관련 교육이 12년 동안 겨우 5시간 밖에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에 진출할 교육 수요자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 교육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이 많은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 등의 방식으로 노동현장에 편입되어 있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면, 학교의 정식 교육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은 충분히 공감할 만합니다.

근로계약서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해 불이익을 받는 학생과 청년들이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도 배우지 못하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 문제를 기본 상식을 갖추지 못한 학생과 청년의 몰상식 문제로 돌리거나, 사용자의 이기적 동기로 무마할 수 없습니다. 정식 교육을 다 받고도 기본적인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 교육 시스템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교육의 실수요자인 학생들의 입장에서 교육이 진행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대조적인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 교육

만약 학교에서 몇 시간이라도 할애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법을 배운다면 어떨까요? 단순히 근로계약서의 기본 항목을 채우는 교육이 아니라, 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어떠한 부분을 유심히 살펴야 하는지, 근로계약서의 법적 효력과 실제 활용 사례를 자세히 배울 수 있다면 말입니다. 적어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는 일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노동교육원이 2003년에 발행한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 실태>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근로계약서 작성을 매우 상세히 공부한다고 합니다. 이력서 작성과 면접 기술을 익히는 데 특화된 우리나라의 교육 문화와 매우 대조적입니다.

독일의 학생들은 아주 구체적인 상황을 전제로 모의 노사협상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노사관계 관련 법률, 노사관계 행위자들, 사업장의 경영상태, 사회경제 및 노동세계의 변화 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노사행위 당사자가 되어 협상에 필요한 논거와 행위 양식을 개발하여 모의 노사협상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앞서 소개한 임동헌 교사 역시 모의 단체협상을 수업 방식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육방식을 통해 사측과 노측의 이해관계를 사전에 숙지하고 상대방의 주장과 논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균형 있는 사고능력 함양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중학생 대상 교과서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학생들에게 집단 토론을 하도록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제시될 수 있는 노동 문제 관련 토론 주제 예시
▲ 실업자 시위 관련 토론 주제 예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제시될 수 있는 노동 문제 관련 토론 주제 예시
ⓒ 엄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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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들이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자본가 단체를 점거한 시위의 상징적 의미를 묻는 내용이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당장 계급혁명을 고취하는 좌익의 선전선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이 쇄도할 것이고, 첨예한 이념논쟁으로 비화될 것이 뻔합니다.

사실 위의 예시문은 프랑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과서에 실제로 삽입되어 있는 교육 내용입니다. 프랑스 교과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를 있는 그대로 교과서에 담아내고 이의 사회적 의미를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이슈가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됩니다. 사회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해석의 다양성을 열어 놓음으로써 학생들이 균형 있는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육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노동인권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

그렇다면 노동인권 교육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우선 첫째로, 노동인권 교육은 국민들의 전반적 인권 감수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인권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해당하는 영역입니다. 노동인권을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세력의 지분을 늘리는 이해관계의 도구로 간주하기 보다는 객관적인 시민 교육의 영역으로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합의적 지형이 구축될 시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둘째, 사회적 수요를 반영한 교육을 위해서라도 노동인권 교육의 전면화는 필수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기업 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으로 귀결된 교육부의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친기업적 성향이 보다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장래 취업을 해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질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교육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적 수요를 기업의 요구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강화되는 오늘날의 추세에서는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셋째, 노동인권 교육을 통해 나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기술과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해외 사례와 같이 모의 노사교섭 등의 간접 체험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조정의 필요가 있는 대상으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강 대 강의 대결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넷째, 권리의 측면이 아닌 의무의 측면에서 접근해 보아도 노동인권 교육의 효용은 매우 커 보입니다.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의 입장에 서더라도 적어도 노동인권 교육을 받은 사람이 받지 않은 사람보다 근로계약을 정상적으로 체결하고 노동자 권익 보장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노동인권 교육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상호 존중의 문화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노동인권 교육과 더불어 일의 미래에 대한 폭넓은 관심 필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노동의 지위와 개념 역시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혁명이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는 총량적으로 높은 수준의 부와 편리함을 제공하겠지만, 그 효과는 매우 편파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노동의 형태와 지위는 매우 불안정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많은 전문직 노동자들이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 일부를 제외한 제조업 노동자 대다수의 지위 역시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순 노동과 다양한 서비스 노동 역시 기계의 대체와 노동력 공급의 증대로 유례없는 불안정성의 일상화가 예상됩니다.

교과서는 실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해야 하고,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학생들이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인권 교육은 현재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술혁명의 변화에 따른 사회의 재구조화가 구조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전통적인 임금 노동자의 관점에서 수행되는 노동인권 교육만 강조되어서는 실효성이 높지 않습니다.

노동인권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에 의해 변화가 강제되고 있는 '일의 미래'에 대한 폭넓은 관심이 교육과정에 동시에 반영될 필요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이 부재했던 불행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이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추동되는 '일의 미래'와의 접목 가능성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새로운 교육 내용이 추가되는 과정에서 초래될 법한 마찰 비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면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똘레랑스 기자는 서울혁신센터 산하 사회혁신리서치랩의 연구원이다. 이 기사는 사회혁신리서치랩의 블로그 및 페이스북에 동시 게재되었다.



태그:#노동인권, #노동, #교육, #교과서, #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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