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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사실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어른'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사람은 청소년이 흡연하거나 어른에게 '반항'하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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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유당은 지난 제20대 총선에서 거의 3%에 가까운 정당 득표율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한 명을 진출시킬 듯했다. 그런데 기독자유당의 공보물에서 특이한 내용을 발견했다. '대한민국이 지구촌에서 사라질 심각한 위기상태'에 처해있다는 글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대한민국을 망하게 한단 말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유네스코 통계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는 자 1위", "청소년 흡연율(여학생) 1위"와 같은 항목이 언급되어 있었다. 마치 청소년이 반항하고 흡연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망하게 한다는 듯한 묘사로 보일 정도였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정당·후보자 정보자료(기독자유당) 중 일부 갈무리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정당·후보자 정보자료(기독자유당) 중 일부 갈무리. 한국이 "유네스코 통계로 어린아이들이 어른들 말을 가장 안 듣는 세계 1위"라고 적었다.
ⓒ 중앙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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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꼰대스러움'도 당황스러울 정도지만, 더욱 황당한 사실은 유네스코에서는 '청소년이 어른에게 반항하는' 항목으로 조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직접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홍보소통팀에서는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답변했다.

"유네스코 통계에는 아래 언급해주신 내용과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명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기독자유당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아 답변을 듣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기독자유당의 공보물에 나온 '통계'에 관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홍보소통팀의 답변. "유네스코 통계에는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적혀 있다.
 기독자유당의 공보물에 나온 '통계'에 관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홍보소통팀의 답변. "유네스코 통계에는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적혀 있다.
ⓒ 권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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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이름을 빌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말한 셈이다.

어떻게 유권자의 2.6%나 지지했던 정당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혐오적 시선을 서슴지 않고 공보물에 쓸 수 있었을까? 사실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어른'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사람은 청소년이 흡연하거나 어른에게 '반항'하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이 어른에게 반항하는 것이 정말로 문제 있는 행동일까? 여성 청소년의 흡연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통계 역시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이것을 두고 '나라의 망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청소년이 어른에게 대항하거나 현행법상 어른에게만 온전히 허락된 행동을 했을 때, '사회가 모두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져 나라가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선거 공보물에서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식과 취향, 반항과 문제 제기

많은 어른이 어린이나 청소년이 함께하는 밥상에서는 그들에게 '편식'을 하면 안 된다고 누차 강조한다. 심지어 어느 학교에서는 교사가 다 먹은 식판 검사를 하기도 하고, 가정에서는 먹기 싫은 반찬을 억지로 입에 넣어주며 골고루 먹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편식'이라 불리고 통제당하던 식습관은 대부분 비청소년이 된 이후에는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간섭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청소년의 식습관을 통제하려는 사람이 '오지랖퍼(오지랖 넓은 사람)'라고 비난받는다. 편식은 어느 나잇대의 사람에게나 다 좋지 않은 습관인데, 비청소년의 식습관은 '취존(취향 존중)'받지만 왜 청소년의 식습관은 타인의 검사까지 받을 정도로 '통제'당해야만 할까?

앞서 거론한 사안도 마찬가지다. 청소년기에는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말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불평하면 '너 지금 반항하는 거냐?' 또는 '너 지금 대드는 거냐?' 등의 말을 듣기 쉽다. 또한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반면, 많은 경우 비청소년의 문제 제기나 불만 표현은 '반항'이라고 불리지 않고 의견으로서 존중받는다. 청소년은 부당한 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내용의 정당성과는 관계없이 '아랫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일이 흔하다.

이는 '청소년이 미성숙하고 세상을 잘 모르는 존재이므로 그들의 의견 역시 미성숙하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당한 나이 권력(나이에 따른 위계질서)으로 청소년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청소년들도 스스로 결정하고 존중받고 싶은 당연한 욕구가 있는 동등한 '사람'이다. 자신의 의견이 결정에 반영되지 않았을 때, 그것에 대해 반대하고 따르지 않는 것을 누가 함부로 비난할 수 있는가.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누굴 위한 것인가

 꼭두각시
 "청소년이 경험을 쌓고,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에서 활동하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박탈해놓고 그들을 '미성숙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스울 정도로 모순된 발상 아닌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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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회와 법은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당한다. 또한, 청소년 당사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어떤 중요한 결정에 있어 보호자가 대리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두발 규제, 복장 단속, 각종 참정권의 제한, 게임 셧다운제 등이 청소년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대표적인 제도들이다. 차별 행위는 드러나는 혐오나 배제, 거부뿐 아니라 어떤 집단을 분리, 구별하고 거부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청소년의 삶은 '통제'당하고 다른 나이의 계층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호주의적인 차별'은 그것이 차별이라고 잘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일어난다.

사실 현재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미성숙한 것은 그들의 생물학적인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적다거나 신체적으로 덜 발달했다거나 하는 본질에 관련된 문제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약자가 되는 것은 비청소년 중심의 사회,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너무 긴 학습시간,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세상의 인식의 원인이 더 커 보인다.

이에 관해 심리학자 로버트 엡슈타인 박사는 "10대들의 충동적 행동이나 범죄 등에 대해서 그들이 판단력이나 책임감이 부족한 듯이 보이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어른들과 격리해 행동을 통제하려 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소년이 경험을 쌓고, 의견을 개진하고, 사회에서 활동하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박탈해놓고 그들을 '미성숙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스울 정도로 모순된 발상 아닌가?

청소년은 청소년일 뿐이다. 단지 누군가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가 미성숙할지, 충동적일지, 반항적일지, 비논리적일지 혹은 '발랑 까졌을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청소년'이라는 사실뿐이다.

청소년들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욕구를 느끼고, 본인 삶에 관해 결정하고 싶고, 어떤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은 존재다. 청소년이 다른 나이 계층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당연한 명제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소년들을 향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걷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권보현(또뜨) 시민기자는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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