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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에 있던 일이다. 하루는 맹자가 길을 가다 송경이라는 인물을 만났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그가 말하길 진나라와 초나라간의 전쟁을 말리러 가는 길이라 하였다. 전쟁이 양국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는 점을 들어 설득하겠다는 그의 말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이익을 들어 전쟁을 중단시키는 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입니다."

전쟁을 중단하는 건 좋으나, 그 이유가 이익의 유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한 번 이익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다른 모든 일들에서도 이익을 따지게 된다. 그런 이들이 모인 사회는 사람의 생명·사랑 등 다른 어떤 가치들보다도 이익을 우선시하게 될 터이다.

사람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에서의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 이후 한국 사회의 수많은 인재(人災)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익이 아닌 인의(仁義), 즉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이상적인 사회이다. 이것이 맹자의 왕도정치(王道政治)론이다.

표지사진
▲ 왕도의 개 표지사진
ⓒ 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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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 시대를 다룬 만화 <왕도의 개>는 왕도정치론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왕도정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개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각오를 품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카노 슈스케는 원래 자유 민권운동에 가담했던 청년이었다. 일반 대중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라는 그들의 주장을 지배층은 난동으로 규정하였고, 카노는 홋카이도로 유배당하게 된다. 가혹한 수용소의 환경에 견디다 못한 그는 탈옥을 감행하게 되고,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 족에게 구원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가 처음부터 왕도를 지향한 건 아니었다. 아이누 족의 마을에서 만난 토쿠히로라는 인물로부터 왕도정치를 전해들을 때만 해도 그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카노를 바꿔놓은 것은 그가 마주한 일본의 현실 그 자체였다. 몸을 숨기기 위해 아이누 족으로 위장하게 된 카노는 본토의 일본인들이 행하던 수탈을 직접 보게 된다.

아이누인들이 가져온 모피나 기타 산물들에 대해 일본 상인들은 일부러 흠을 잡아 싼값에 매입을 한다. 그렇게 제 값을 받지 못해 생계가 곤란해진 아이누 인들은 빚을 지게 되고, 그 대가로 자식들을 팔아넘기게 되는 식이다. 이익을 위해 사람을 해치는 일본 상인들의 만행에도 정부는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홋카이도를 떠난 카노는 이것이 비단 아이누 인들만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사람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세태는 일본 사회 전체에 퍼져 있던 것이다. 일본 최대의 구리광산이 있는 아시오 지방에 들른 카노는 그곳의 참상에 충격을 받는다. 광산으로부터 나온 폐수와 유독가스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주민들은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 의원이었던 다나카 쇼죠라는 인물이 항의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차가울 뿐이었다.

"아시오의 광산으로부터 나오는 이득은 그 지역이 입는 피해보다 훨씬 크다."

훗날 '아시오 광독 사건'이라 불리게 되는 이 사건은, 앞서 말한 아이누 족 수탈과 더불어 일본이 제국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잘 보여준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이윤의 추구이다. 나와 나의 국가·민족에 이익이 된다면 다른 사람·국가·민족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존엄이나 인권,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기게 되던 중요하지 않다. 맹자가 말했듯이, 이미 이윤에 눈을 뜬 이들에게는 그 어떤 가치도 이윤보다 중요하지 않다. 우리 국가·민족을 위해서라면 아이누 족과 아시오 사람들과 같은 소수의 희생은 그저 감내할 만한 일일 뿐이다.

'삼국간섭은 그대의 망국적 외교가 불러온 것이다. 김옥균을 사지로 내몰고, 청나라를 상대로 의롭지 못한 전쟁을 벌였으며, 독립 보호라는 미명하에 조선을 지배하에 둠으로써 일본에 대한 증오가 양국 민중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그대가 가는 길은 왕도를 벗어났으며,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 - 본문 중

제국주의에 눈을 뜬 일본 정부는 다음 희생양을 찾는다. 바로 옆 나라인 조선이었다. 조선의 종주권을 얻기 위해 일본은 기존의 종주국인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바로 청일전쟁이다. 앞서 말한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왕도의 길을 걷게 된 카노는 조선으로 건너오게 된다.

일본에 맞서고 있던 동학농민군에 힘을 보탤 생각이었는데, 그 수장인 전봉준과 만나게 된다. 일본인인 카노를 경계하던 전봉준은 그의 진심을 시험하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의 이득이나 겨레의 형편을 넘어서는 도리가 있음을 자네는 믿는가?"

왕도의 길을 걷던 카노는 당연히 긍정하고, 두 사람의 진심은 통하게 된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조선에 대한 권리를 손에 넣게 된다. 그 과정에서 딸려 나온 막대한 이득과 대국인 청나라를 이겼다는 자신감은 일본인들을 고양시켰다.

이렇게 전쟁의 단맛을 보게 된 일본은 교류와 상업을 통한 느리고 힘든 발전이 아닌, 전쟁을 통한 쉽고 빠른 발전을 추구하게 된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흐름만으로는 일본인들의 마음에 내재되어버린 이득에 대한 욕구를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국의 길을 걷게 된 일본은 훗날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라 전체가 황폐화되어버린다.

이득이 인간의 권리·존엄보다 중요하다 여기는 사회에서는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왕도의 개의 작가, 그리고 그에게 영감을 준 맹자의 경고를 우리 모두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왕도의 개 1

야스히코 요시카즈 지음, 미우(대원씨아이)(2012)


태그:#왕도의 개, #제국주의, #왕도정치, #일본, #아이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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