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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몇살이세요?', '어디 학교 다니세요?', '무슨 일 하세요?' 등등. 누군가를 처음 만나거나, 혹은 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때로는 명절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우린 이런 질문들을 마주하곤 한다. 나 또한 오랜 시간 이런 질문에 답을 하거나 거꾸로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질문을 주고 받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왜 우리는 서로의 나이를 알아야만 할까. 무슨 일을 하고 얼마를 버는 것은 너무 개인적인 정보가 아닐까. 서로의 학력을 알고 누군가는 상대의 학력에 감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막상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자니 대화를 시작하기가 쉽지가 않다. 너무 오랫동안 이런 질문에 익숙해져있기에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해보면 기획단을 소개하는 모집 포스터
 해보면 기획단을 소개하는 모집 포스터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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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불편한 질문'을 할까?

올해 '해보면 기획단'의 활동은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해보면 기획단은 작년 한국여성민우회의 캠페인 '해보면 캠페인'에서 출발했다. 해보면 캠페인은 '일상에서 시작하는 캠페인'을 목표로, 일상 속에서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을 찾고, 그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천을 찾는 캠페인이다. 2015년 한 해 동안 '외모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 '불편한 농담에는 급정색 하기', '불필요한 야근 거부하기' 등 다양한 실천이 제시되었다.

해보면 기획단은 이렇게 모인 문제 의식과 실천을 모으고 알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바꾸는 실천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모였다. 기획단에는 나를 비롯한 한국여성민우회의 회원들과 활동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기획단의 첫 목표는 '일상적으로 오고가는 불편한 질문을 멈추기'였다. 모인 우리는 '왜 이런 질문이 오고가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것 부터 시작했다. 기획단이 도출한 결론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위계적인 일상 문화'이다. 가령 사람들이 만나자마자 나이를 이야기 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지 누가 동생인지를 알게 되고, 누구를 '언니/오빠/누나/형'으로 부를지 정해지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 따라 누가 존댓말을 쓰고 반말을 쓰는지 정리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누가 나이가 더 많고, 누가 돈을 더 버는 것을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이 되다보니 질문도 이를 따라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단지 위계적이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여기서 기획단은 두 번째 원인을 짚어냈다. 바로 '대안의 부재'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한 질문들은 인생의 특정 시기나 상황에서만 받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일찍부터 이런 질문들을 받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주고 받는 것을 보면서 자라난다. 이 질문들이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 질문해보기 전에, 이 질문들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막상 이런 것들을 묻지 말자고 할 때, 마땅히 질문할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홀로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거나 익숙한 질문으로 되돌아가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민을 나누던 중 기획단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다른 질문'을 제시해보는 건 어때요?'

기획단이 만든 '대안적인 질문' 카드뉴스 이미지
 기획단이 만든 '대안적인 질문' 카드뉴스 이미지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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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인 질문'이 만들어 낸 변화

기획단은 대안적인 질문을 만들고 이를 카드뉴스로 만들어 배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간단해 보이는 기획이였지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질문은 기존의 것들과 달라야 하되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여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안적인 질문이라도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기에 그랬다. 또한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고 질문을 주고 받는 상황은 다양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 적당한 질문들을 제시해야 했다. 때문에 우리는 질문의 목록을 만들어 오고, 그것을 거르고 또 거르는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 끝에 우리는 '초면일 때',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할 때', '직장, 학교 등 일상적으로 자주 마주치는 곳에서', '정기적인 모임이나 커뮤니티 안에서', '내가 '갑'인 관계에서'를 주제로 질문의 분류를 마쳤다. 마지막에는 '좋은 질문을 하는 팁'을 따로 마련해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대안 질문은 나이·학력 등 사회적 지위를 묻는 것 대신, 취미나 좋아하는 영화와 같은 상대방의 관심사를 묻는 것, 근황이나 주말에 한 일처럼 현재의 안부를 묻는 것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첫 카드뉴스인 '초면일 때'가 배포되고 난 후, 우리는 SNS상에서의 다양한 반응들을 들을 수 있었다. '호구조사가 아니라도 대화는 가능하다'는 반응, '기본적이고 당연한 건데 캠페인을 해야하다니 씁쓸하다'는 반응, '사실 나는 5년전 부터 하고 있었다'는 쓸쓸한 투쟁기까지.' 

그렇다면 대안적인 질문을 실제로 사용해본 효과는 어땠을까? 나는 친한 직장 동료에게 카드뉴스를 전하고 그녀에게 사용 후기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평상시에는 나이나 직업 등 피상적인 사회적 지위를 중심으로 질문을 주고 받다보니 유대가 깊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하지만 일상적인 안부나 그 사람의 관심사 등에 대해 질문을 주고 받으니, 상대방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사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아 좋았다'고 답해주었다. 말하자면 주고 받는 질문이 달라지니 맺어지는 인간 관계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위계적이지 않고 조금 더 진정성이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해보면 기획단'의 회의 모습
 '해보면 기획단'의 회의 모습
ⓒ 신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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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카드뉴스는 2편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할 때'까지 업로드 되었고, 차후에 네 편의 뉴스가 더 업로드 될 예정이다. 카드뉴스는 현재 한국여성민우회의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배포되고 있다. 이 대안적인 질문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나아가 일상의 문화를 바꿔주길 희망한다.



태그:#시민 운동,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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