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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학생에게는 280여 명의 형제자매가 있어요. 280명은 한 동네에서 같은 날 형제자매를 잃은 이들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간다면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정치인들이 아닌 우리 모두 함께 바꾸는 세상이 값지다는 것을 알기에 여기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은 4월 16일. 전교조 광주지부 교사들은 제자, 가족들과 함께 416 기억 전시관과 단원고 기억교실을 찾는 '기억과 약속의 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함께 이곳을 찾은 교사들은 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교실에서 눈가를 훔쳤다.    멈춰버린 달력과 시계... 아이들의 꿈도 멈췄다  
 2016년 4월 16일 단원고 기억교실을 찾은 사람들
 2016년 4월 16일 단원고 기억교실을 찾은 사람들
ⓒ 남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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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반 교실 안내에는 희생된 남지현 학생의 언니 남서현씨가 나섰다.

그는 "416 이전과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전에는 존경하는 인물로 유명인과 정치인을 꼽았지만 지금은 진상규명을 위해 밤낮없이 뛰는 우리 부모님을 존경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도 엄마아빠들의 뒤를 따르겠다"고 밝혔다.

미수습자 허다윤 학생을 언급하며 "다윤이에겐 언니가 있는데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다. 팽목에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4월 16일이 기일이자 생일인 김초원 교사가 담임인 3반 교실 칠판에는 세월호에서 생일파티를 하며 촬영한 마지막 학급 사진이 걸려있다.

2014년 4월에 멈춰버린 달력, 시계와 함께 이 교실의 주인이었던 아이들의 꿈도 멈췄다.

희생 학생들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울보 삼촌'으로 알려진 임영호 씨는 "이 반 유혜원 학생의 동생 3명이 언니, 누나의 꿈을 좇아 단원고에 입학했지만 아이들이 누이를 만나기 위해 찾는 이 교실을 '재학생들에게 돌려준다'며 없앤다고 한다. 그 아이들을 배려하는 선택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4시 16분에 멈춰있는 시계
 4시 16분에 멈춰있는 시계
ⓒ 남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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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의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4반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정성껏 불렀다.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흐르는 눈물.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 아이의 자리와 얼굴을 확인해 달라는, 돌아가서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당부가 이어졌다.

광주 산정중 1학년 서은아 학생은 "학교에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에서 김동혁 학생 부모님을 만났는데 설명하시는 분이 불러주는 희생자 이름에 '김동혁'이 있어 그 자리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도 읽고 사진을 찍은 뒤 편지를 썼다"고 했다.

편지에는 부모님이 학교에 와서 아이들과 간담회를 했던 것, 부모님이 김동혁 학생이 좋아하는 초코파이 1000개를 아이들에게 사주고 간 이야기 등을 적었다. 마침 가방 속에 있던 초코파이도 책상에 함께 올렸다.

광주 산정중 학생회는 지난 8일 'Remember 0416'을 주제로 유가족 간담회를 열었고 이 내용은 김동혁 학생의 어머니 김성실 씨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서은아 학생은 "사진과 TV를 통해 보던 교실에 직접 와보니 마음이 아프다"면서 "세월호를 인양한다는 뉴스를 봤는데 어서 인양이 이루어져 아직도 세월호에 남아있는 분들이 빨리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이 둘과 함께 기억교실을 둘러본 이미정 광주 금구초 병설유치원 교사는 "이 공간에서 살던 200명이 넘는 이들이 희생됐는데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해결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내 아이들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이 크다"면서 "내면화된 충격은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관심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했으면"
  416 이웃들은 단원고 앞에 추모 꽃집을 열었다
 416 이웃들은 단원고 앞에 추모 꽃집을 열었다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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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방문에 앞서 찾은 416 기억 전시관에서는 '두 해, 스무네 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김종천 416 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은 전시장 천정에 조명 갓 형태로 달린 희생자 304개의 기억 저장함에 대한 설명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304개의 저장함 중 56개의 저장함에 아이들의 물건이 담겼다.

팽목에서 노란 나비를 본 날 아이가 물에서 올라온 엄마는 그곳에 손수 만든 노란 나비를 넣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아이의 스탬프도 찍어보지 못한 여권, 가수가 꿈이었던 아이의 악보,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만들어주려 했던 인감도장, 부모의 간절함을 담은 목각 십자가 등이 저장함에 담겼다.

부서진 304개의 꿈은 죽음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사회에서 참사의 목격자인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김종천 416 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의 모습
 김종천 416 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의 모습
ⓒ 강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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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천 사무국장은 사진 설명과 함께 '기록자가 본 가족의 2년'에 대한 소회를 이어갔다.

"부모가 아이를 잃는 과정은 잔인했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부모 대다수는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선원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에게 '위험하니 배 밖으로 나오라'고 했던 다른 아빠처럼 말하지 못한 것이 통한으로 남았다고 한다. 

전원 구조 오보를 듣고 부모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던 그 시간. 아이들은 배 밖으로 나오기 위해 맨손으로 유리를 깨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참사 이후 차례차례 돌아온 아이들의 새까맣게 변한 손톱을 보며 부모들은 가슴을 쳤다. 민간 배를 빌려 사고 해역에 갔을 때 보도와 달리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며 또 한 번 무너졌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고, 곡기를 끊고, 농성을 하고 행진을 하고... 유가족들의 신체적 특징은 매우 빠르게 늙어간다는 것이다. 최소 2개에서 18개까지 이가 빠지고 시력과 기억력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부서진 몸을 안고 거리로 나섰으나 참사 1주기 이들에게 돌아온 국가의 답은 배상·보상 방침과 누더기가 된 시행령이었다. 배상·보상 신청자가 한 명도 없었던 시점에도 '그만큼 받았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며 욕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깊은 상처로 함께하는 이들에게까지 비수를 꽂는 잔인한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동거차도에 텐트를 치고 인양 감시 활동을 시작하고 416 기억 교실 존치 요구 도교육청 앞 피케팅, 세월호 특조위 전원회의 참석, 광화문 세월호 광장 지키기 등 결의를 모으고 있다."

김종천 사무국장은 "유가족들이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이만큼 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현병순 광주 산정중 교사는 "슬픔 속에서도 그 이상의 것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간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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