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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어떻게 돈 천원이 없냐고 눈을 부라렸다. 길이 막힌 여자는 천원을 꺼내주고 도망치 듯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천원만 달라고 구걸하던 남자가 여의치 않자 길거리를 막고 힘 약한 여자에게 협박으로 돈을 얻어낸 것이다. 몇 달 전 지하철에서 마주한 광경. 이쯤이면 구걸과 협박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술주정뱅이 낭인에게 필요한 건 술 한 병을 살 수 있는 돈이었고, 눈물이나 협박은 단지 수단일 뿐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대구의 새누리당 후보들은 공천의 불협화음을 피눈물 나게 반성한다면 대구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11일에는 부산에서도 공천과정에 큰 실망을 안겨드린 점을 사과한다며 이만기 김해을 후보 등 3명이 큰절을 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일명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노래)를 만들어 유포하기도 했다.

참회와 읍소의 또 다른 한축에서는 연일 위기론을 꺼내든다. 경제 위기는 정권의 탓이 아니라 세계 경기 때문이라며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힘 있는 여당이 필요하다는 경제 위기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이 안보의 위기를 불러 왔다고 운동권 정당은 안 된다는 안보 위기론. 7일부터는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이 깨어지면 식물정부가 되고 IMF보다 더한 경제 재앙이 온다는 과반 위기론 까지. 위기론이 끝도 없이 생산되는 모양새다.

참회와 읍소. 위기론과 공포심 유발. 상반된 두 가지 모습에서 참과 거짓을 찾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눈물의 호소이든, 유권자를 향한 호통이든 그 모두가 표를 얻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고 심리전인 셈이다. 진실은 위기론을 줄타기하는 새누리당이나 무릎 꿇은 후보들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가 찾아내어야 할 몫인 것이다,

단지 표를 모으는 수단일 뿐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공동선대위원장들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공동선대위원장 긴급회의를 열기 앞서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소중한 한표, 부탁드립니다" 손팻말을 들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새누리당 또 '읍소 전략'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공동선대위원장들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공동선대위원장 긴급회의를 열기 앞서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소중한 한표, 부탁드립니다" 손팻말을 들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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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4 지방선거는 세월호 대참사 발생 20여일도 지나지 않아 실시된 선거였다. 전대미문의 대참사와 구조와 수습의 무능은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게 정치권이나 대부분 국민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새누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부산, 울산, 제주는 물론 인천 경기 등 8곳에서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는 226곳 중 2/3를 차지해 2010년 지방선거 당시의 82석에 비해 크게 늘었다. 야당은 서울시장이나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에 만족해야 했다.

야당과 시민 단체의 세월호 심판론에 맞서 새누리당은 대통령 구하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14년 4월 22일 대전에서 열린 6.4지방선거 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공동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통령이 눈물로 사과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 그 눈물을 닦아드릴 때가 됐다'며 대통령 구하기 전면에 나섰다. 대구를 비롯해 자치단체장 후보들은 '대통령을 지키자'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보수언론은 대통령의 눈물을 끊임없이 되돌렸다. 

'대통령의 눈물만 눈물이고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은 눈물도 아니냐' '대통령이 국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것이다'라는 여론도 있었지만 6.4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 심판의 장이 되기보다는 세월호 참사의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6.4 지방선거를 승리로 마감한 정부 여당은 더 이상 허리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족들을 몰아세우고 국민들에게 세월호 진실규명은 경제의 발목잡기가 될 것이라며 눈을 흘겼다.

국민들 눈물과 감성에 호소하는 구태적인 선거 운동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금씩 나아진다고 하지만 '눈물의 표 구걸'과 '위기론으로 국민 협박'이라는 본질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 차떼기가 탄로나 운동화를 신고 현판을 떼어 천막당사로 향하던 퍼포먼스나, 세월호 심판론을 꺾은 대통령 구하기가 이번 선거에는 '잘못이 있지만 한번 더 기회를 주시면 잘 하겠습니다'라는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었을 뿐이다.     

참회와 위기론. 낡은 선거 전략이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비난만 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법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거니와 진실 공방만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눈물에 호소하고 국민의 불안 심리를 부추기는 낡은 선거운동이 왜 반복되는가,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에 대해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라고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면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순서다. 이명박 정권 출범 때부터 야당탓, 전 정권탓에 경제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거기에 걸맞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게 정부 여당이다.

그러나 바뀌는 모습,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매번 다음 선거의 소재로 재등장했을 뿐이다. 유권자는 눈물과 위기론에 표로써 화답했지만 정작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는 무관심했고, 행사한 한 표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투표, 권리만 행사하지 말고 뽑을 의무도 다 해야

구태의 반복은 이성보다는 감성, 성찰보다는 망각에 익숙한 유권자 주권행위의 산물이다. 반복해도 매번 속아주고 표를 몰아주는 유권자가 있었기에 또다시 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경제, 안보 위기를 들먹이는 것이다. 반복되는 거짓말, 번번이 속는 유권자. 이쯤이면 기만과 어리석음의 경계도 모호해 진다.

양 떼를 지키는 목동은 수차례 마을 사람을 속이다가 끝내 늑대에게 양 떼를 다 잃었다. 매번 속아 준 마을 사람은 착했고, 거짓말쟁이 목동은 벌을 받는다. 그러나 동화 속 옛 이야기다. 처음 늑대라고 거짓으로 소리쳤을 때 호된 회초리를 들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다시 속는 일도 끝내 양떼를 다 잃은 일도 없을 것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왜 매번 잘못하고 선거 때만 되면 거리에서 무뤂을 꿇냐고 따지는 국민이 있었다면, 끊임없이 생산되는 위기론 앞에서 불안보다는 대책을 내놓으라는 유권자의 여론이 만들어 졌다면 선거는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바뀌겠다고 다짐해놓고 바뀌지 않는 정당. 과반이 붕괴되면 IMF보다 더한 경제 위기가 온다고 말하는 정당. 그런 정당의 보이스피싱 같은 궤변에 속지 않아야 세상이 바뀐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 눈물에 호소하고 위기론으로 표를 모으는 낡은 선거는 사라질 때가 됐다. 선거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권리만 행사하는 투표는 반쪽이다. 제대로 뽑을 '의무'까지 다해야 진짜 선거다.


태그:#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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