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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6일, 안산 고잔역. 산뜻한 봄 날씨를 기대했지만,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날씨. 어쩌면 4월의 안산에는 어색하지 않은 날씨일지도 모르겠다. 안산, 특히 단원구의 4월은 필연적으로 2014년 이전의 4월과 더는 같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많은 이들이 가족 품을 떠나갔고, 또 그들의 가족은 아팠다.

아픔은 계속됐다. 진도 팽목항 앞에서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가 가라앉고 난 뒤, 그 배가 왜 그렇게 침몰해야 했는지, 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야 했는지 묻는 말에 대답을 듣기도 전에 누군가는 가족들을 '불온분자'로 몰았다. 정부가 하는 일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토크콘서트 <고마워요 기억해요>가 열리고 있다
 세월호 토크콘서트 <고마워요 기억해요>가 열리고 있다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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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단원고. 사건의 희생자 중 대다수가 다니던 학교였고 직장이었다. 단원고, 그리고 안산은 그래서 팽목항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단원고로부터 불과 30분 거리의 카페 피움. 그곳에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고마워요, 기억해요"라는 이름의 자리에서, 참석한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상처를 나눴다.

안산녹색평론독자모임, 안산이웃대화모임이 주최한 416 세월호 2주기 안산 시민 Talk 마당 "고마워요, 기억해요"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 왔다. 40여 명에 가까운 안산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다. 세월호의 진실과 희생자의 아픔을 기록한 작가와 영화감독,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제안한 청년, 주민과 대화하며 고통의 치유에 나선 마을 활동가가 모여 '세월호'의 상처를 다시 이야기했다.

세월호를 알렸던 이들, 안산에서 다시 모이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토크 콘서트의 진행을 맡은 것은 <세월호를 기록하다>의 저자 오준호 작가였다. 1부에는 세월호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의 김진열 감독, <다시 봄이 올 거예요>의 이호연 작가, 2부에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의 제안자이자 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용혜인씨, 안산 이웃대화모임의 김은호 목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준호 작가는 행사를 열며 "아직 밝히지 못한 진실과 바꾸지 못한 현실은 그대로일 수 있겠지만, 함께하고 고생했던 시민들, 청소년들이 서로에게 격려하고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진실을 위한 과정을 함께 해나가자는 취지"라며 행사의 의미를 소개했다.

김진열 감독은 "안산지역에서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 뜻깊다"며 입을 열었다. 김 감독은 "참사 초기 300여 대의 카메라가 피해 가족을 촬영하는 것을 보고, 카메라가 가족들에게 폭력적이라는 생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거절했었지만, "이후에 세월호 참사를 알고,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람 가능한 형태의 기록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쁜 나라>를 제작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김진열 감독
 김진열 감독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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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호연 작가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이후 공동집필한 새 책을 소개했다. "10대들이 겪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책이다. 형제, 자매들 열다섯 명과 생존학생 열한 명, 스물여섯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월호 참사에서 10대들이 사건을 목격해왔고, 친구들을 잃었다. 10대들의 이야기는 있었어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들려지지 않았다. 이번에 10대들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며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의 취지와 방향을 소개했다.

제작 과정의 어려움도 있었다. 김진열 감독은 "생존 학생들이 초기에 중소기업 연수원에서 생활할 때 촬영했다. 중간중간 생존 학생들과 많이 만났지만, 영화 안에서 생존 학생을 등장시킬 수 없었다. 특례입학에 관한 문제로 여론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이었다. 부모님들이 걱정하셨고, 우려했다. 가족들과 협의해 생존 학생이 등장하는 부분을 편집했다"며 외부적인 상황으로 인해 모든 장면을 영화에 담지 못했음을 밝혔다.

이호연 작가는 인터뷰 진행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10대 중에 인터뷰를 당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록 작업을 할 때는 말해 주는 사람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하고 충분한 설명을 구해야 한다"며 "11명의 학생들이 인터뷰에 함께해 주었기 때문에 인터뷰가 가능했다"며 생존 학생과 형제자매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호연 작가
 이호연 작가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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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

2부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제안했던 용혜인씨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안산에서 이웃대화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김은호 목사였다. 용혜인씨는 현재 노동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정치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용혜인씨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제안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묻는 말에 "시험 전주여서 열심히 수업 듣고, 학생회실에서 이야기하다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구조됐나 보다, 했지만 오보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당시 심경을 전했다.

"처음에는 며칠 있으면 다는 못 구해도 몇 명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진도대교를 건너가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가족들을 막아서는 경찰을 보며 뭔가 잘못됐구나, 뭐라도 해야겠구나 싶었다"며 침묵행진의 계기를 설명했다.

세월호 토크콘서트 <고마워요 기억해요>가 열리고 있다.
 세월호 토크콘서트 <고마워요 기억해요>가 열리고 있다.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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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목사 또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행동에 나선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교회 카톡방에 기도라도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한 활동가에게 뭘 할 수 있을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고, 기도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교회 식구들과 단원고에서 무사귀환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열었다. 세월호 참사로 주민들 역시 굉장한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자기 희생이 아닌 자기 성찰과 고민을 만들어나가는 운동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웃대화모임을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느냐는 오준호 작가의 질문에 용혜인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는 다음과 같이 침묵행진의 계기와 그 이후의 경과를 설명했다.

"거창하고 대단한 건 아니었다. 전 국민이 슬퍼했다. 이런 슬픔을 담아두는 게 아니라 표현하고 추모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명 정도 되는 친구들이었는데 분향소에 오셨던 분들이 행진에 참여하며 더 늘어났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반향을 일으켰다. 5월 18일에 경찰에 연행되고 나서 이젠 사회가 추모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김은호 목사
 김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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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목사는 대화모임을 진행하며 무엇을 얻었느냐는 질문에 "상처받았던 주민들이 서로의 고민과 대화를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며 "대화모임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을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자리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을 주었다. 대화모임을 통해 많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대화모임의 성과를 밝혔다.

"거리의 정치가 현실의 정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월호와 관련된 사회운동을 하는 젊은 여성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말에 용혜인 후보는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그 말이 식상한 이유는 그만큼 (그 말이) 맞기 때문인 것 같다"며 답변을 시작했다.

용혜인씨
 용혜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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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의 정치의 모습은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쁜 나라>를 보면, 이완구 원내대표가 자신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니, 여기 있는 박영선 원내대표에게 협상의 전권을 주셔야 한다는 말을 유가족들에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은 국민이 아니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3만 표를 받고 당선됐지만, 세월호 유가족은 600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600만 명이 서명하고, 5만 명이 시위하면 무엇하나. 정치라는 영역에서 이 사람들을 대변해 줄 사람이 없다. 길거리에서 아무리 무엇을 해도 정치의 영역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없으면 그걸로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의 정치와 현실의 정치가 이어지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해야 하는 정치인 것 같다."

아마도 용혜인씨가 정치인이 되어 나선 이유이겠지만, 총선을 앞둔 시민들에게 던지는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이들은 자리에서 세월호의 상처를 이야기했지만, 세월호의 상처에만 빠져 있으려 하지는 않았다. 경험을 나누었지만, 서로를 격려했고, 기억을 나누었지만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날 만남의 핵심이었다.

세월호 토크콘서트 <고마워요 기억해요>에 참석한 학생들
 세월호 토크콘서트 <고마워요 기억해요>에 참석한 학생들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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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416 세월호 2주기 안산 시민 TALK 마당 "고마워요, 기억해요"는 약 3시간의 대화 끝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고민과 기억마저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이날 오간 대화와 고민을 바탕으로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더욱 분명해진 듯하다. 자리를 나서자 밖에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바탕 쏟아지고 난 후에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면, 겨울이 몰아치고 난 뒤에는 밝은 봄을 볼 수 있었으면 했는데, 참 '나쁜 나라'다. 세월호 2주기가 다 되어가도록 밝혀진 진실은 많지 않다. 청문회를 주목하는 주류 언론은 없다. 하지만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의 제목처럼, 다시 밝게 갠 하늘을 볼 수 있기를.

2016년 4월 16일. 벌써 2년이다.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이들이 펼쳐갈 활동, 또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을 기대한다.


태그:#세월호, #안산, #오준호, #용혜인, #나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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