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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회지에서 살다가 전라남도의 산골로 둥지를 옮겨온 세 자매. 왼쪽부터 조수연, 조경숙, 조경자 씨다.
 도회지에서 살다가 전라남도의 산골로 둥지를 옮겨온 세 자매. 왼쪽부터 조수연, 조경숙, 조경자 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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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부지의 땅이었어요. 지리산과 섬진강은 알았지만, 곡성은 전혀 몰랐죠. 지금은 곡성이 좋아요. 이정표만 봐도 반갑고요. 그만큼 편안해요. 이제는 도시에서 못살겠어요. 시끄럽고, 복잡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조경숙(58)·경자(56)·수연(48) 세 자매가 한목소리를 낸다. 이들 자매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결혼해서도 서울 근교에서 살았다. 대처에서 나고 자란 세 자매가 최근 곡성의 산골마을로 둥지를 옮겨왔다. 지난해 10월 수연씨 가족을 시작으로 11월 경숙씨가 내려오고, 지난 2월 둘째 경자씨네가 합류했다.

세 자매가 새 둥지를 마련한 곳은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상송마을. 3300㎡에 집 세 동을 따로따로 지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모두 마쳤다. 지금은 집 밖의 조경공사를 하며 단장하고 있다.

"심난하냐고요? 아직은. 그래도 괜찮아요. 급할 것도 없고. 하나씩 천천히 하려고요. 친구 같은 동생들과 함께하는 일인데요. 언제나 큰힘 주고, 때로는 위로가 되는 동생들이요."

맏언니 경숙 씨의 말이다.

"모두 시골에 가자는 데 동의했어요"

 곡성 산골로 내려온 세 자매의 집. 같은 공간에다 집을 따로 지었다.
 곡성 산골로 내려온 세 자매의 집. 같은 공간에다 집을 따로 지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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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자매가 둥지를 튼 상송마을 전경. 마을에서 가까운 방송저수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세 자매가 둥지를 튼 상송마을 전경. 마을에서 가까운 방송저수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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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는 어려서부터 늘 함께였다. 결혼해서도 한동네에 살다시피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우애가 좋았다. 멀리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곡성에 새로운 둥지를 튼 것도 한데서 살기 위함이다.

"시골에 가서 살자는데 이견이 없었어요. 학교에 다니는 애들과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이 걸렸는데요. 시골로 가자는 데는 모두 동의했어요. 애들도 반겼고요."

세 자매 가운데 가장 늦게 귀농을 결심했지만, 이사를 제일 먼저 한 막내 수연씨의 얘기다. 수연씨의 아들과 딸은 지금 곡성고등학교 3학년과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도 만족해한다. 남편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세 자매가 집을 짓기 전까지 생활했던 귀농헌. 예비 귀농자와 귀촌자를 위해 곡성군에서 지은 귀농귀촌인의 집이다.
 세 자매가 집을 짓기 전까지 생활했던 귀농헌. 예비 귀농자와 귀촌자를 위해 곡성군에서 지은 귀농귀촌인의 집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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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송마을에 터를 잡은 건 삼촌의 영향이 컸다. 삼촌이 오래 전 곡성에 매실밭을 사뒀다. 귀농·귀촌을 생각한 세 자매도 인근의 감나무밭을 샀다. 6년 전이었다. 이후 세 자매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내려와 감나무밭을 관리했다. 그때마다 펜션에서 며칠씩 묵으며 놀면서 일을 했다. 가을엔 감을 따서 주변 사람들과 나눴다.

3년 전부터선 귀농헌에서 생활했다. 귀농헌은 예비 귀농·귀촌인들의 체험장으로 곡성군에서 만들었다. 한동안 서울과 곡성을 오가며 '두집 살림'을 했다. 낮에는 놀면서 일하고, 밤에는 귀농 이후 생활에 대해 얘기하느라 하얗게 지새기 일쑤였다.

"많은 분들이, 집을 나중에 지으라 하더라고요. 살아보다가 하라고요. 근데 우리는 집부터 지었습니다. 편하게 살려고요. 어차피 평생 살 집인데, 돌아갈 곳도 없고요. 이제 여기가 고향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여기만큼 좋은 데도 없는 것 같고요."

친정어머니(81)를 모시고 사는 둘째 경자씨의 얘기다.

그녀의 말대로 마을의 전망이 좋다.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뒤는 통명산이 감싸고 있다. 산자락에 들어앉은 방송저수지도 그림 같다. 산중의 마을인 만큼 공기도 좋다. 호남고속국도 나들목과 가까운 것도 장점이다.

 우체통 앞에 선 세 자매. 집앞에 세 집의 우체통을 한꺼번에 만들어 놓았다.
 우체통 앞에 선 세 자매. 집앞에 세 집의 우체통을 한꺼번에 만들어 놓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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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저수지 둔치와 상송마을 풍경. 세 자매가 둥지를 튼 상송마을은 통명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방송저수지 둔치와 상송마을 풍경. 세 자매가 둥지를 튼 상송마을은 통명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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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귀농에 대해 얘기하고, 체험을 했는데도 힘드네요. 밭의 잡풀을 뽑는 것도 장난이 아니고요. 조금 더 빨리, 젊었을 때 내려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큰딸 경숙씨의 말이다.

세 자매는 텃밭과 과원 6600㎡를 갖고 있다. 여기에다 앞으로 고구마를 심을 계획이다. 콩을 심고, 그것으로 장도 담글 생각이다. 먹을거리를 자급하고, 한편으로는 믿을 수 있는 식품으로 만들어 도시민들에게 팔기 위해서다. 가족이 다함께, 재밌게, 돈도 벌면서,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이다.

"우리 세 자매, 아니 엄마까지 네 자매입니다. 오랫동안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한 만큼, 잘 살게요. 잘할 겁니다. 마을 어르신들도 공경하면서 사이좋게 지내고요."

환하게 웃음 짓는 세 자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조경숙 씨 집에 모인 세 자매. 차를 마시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경숙 씨 집에 모인 세 자매. 차를 마시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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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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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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