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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금)~2일(토) 양일간, 각종 개발 사업으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기부금과 증여를 통해 보존대상지로 매입하거나 확보해 보존하는 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NT)의 김금호 사무국장, 갯벌과 해양 및 4대강 특히 내성천(乃城川)을 집중적으로 연구 조사하고 있는 생태지평연구소의 박용훈 사진작가, 영주에서 태어나 소백산과 내성천을 너무 사랑하는 나. 이렇게 3사람이 모여서 예천과 영주의 내성천 물길주변 답사를 떠났다.

술을 아는 멋진 문학도이다
▲ NT김금호 사무국장 술을 아는 멋진 문학도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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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를 걷다>라고 하는 여행기를 집필했고, 환경연합과 NT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나는 평소에도 환경보호와 자연유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편이라,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김 국장은 예천에 있는 NT의 자산인 '내성천 범람원'을 둘러보는 것이 방문 목적이었고, 매주 지역을 오가는 박 선생은 지난 7년 동안처럼 내성천의 생태와 물새, 물고기, 모래와 물길의 변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자 동행을 했다.
 
내성천을 매주 다니는 초록사진작가이다
▲ 사진작가 박용훈 내성천을 매주 다니는 초록사진작가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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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사람이 뜻을 모아 내성천 물길을 따라 경험할 수 있는 조선의 유교문화를 보고, 영주댐 건설로 인하여 변해가는 하천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먼 길을 동행한 것이다. 익히 안면이 있던 사람들이라 우선 예천군 용궁면으로 이동하면서 내성천의 인문학적 가치와 생태적인 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7년 동안 물길을 따라 오르면서 예천, 영주, 봉화 사림들과 유학의 가치를 많이 느끼게 되었고, 서원, 고택, 향교가 무척 많음에도 놀랐다"라고 하는 박 선생의 말에 영주출신인 나도 깜짝 놀랐다. "인문학적 가치로 보자면, 안동보다 내성천 문화권이 더 의미와 가치가 높아 보인다"라는 표현도 대단했다.

내성천을 사랑하는 영주사람 김수종
▲ 김수종 내성천을 사랑하는 영주사람 김수종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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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말과 풍습 및 학문은 산을 쉽게 넘지는 못하지만,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되니 예천, 영주, 봉화 서부는 비슷한 말투와 습성이 있고, 학문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다시 보니, 예천 삼강나루에서 낙동강 상류는 안동과 봉화의 동북, 태백, 영양, 청송구간으로 나뉘고, 내성천을 따라서는 문경의 동부, 예천, 영주, 봉화의 서쪽이 나뉘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물길을 따라 분명 두 지역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안동 도산서원의 경우 졸업생 대부분이 안동 인근출신으로 250명 정도다. 영주 소수서원의 경우에는 졸업생이 4500명 정도이다. 경향각지에서 유학을 왔었던 사실로 보아, 조선 말기까지 학문적으로 영주를 포함한 내성천변이 영남유학의 중심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튼 첫 방문지는 용궁면 소재지에 있는 '용궁양조장'이다. 붉은 벽돌 건물을 덮은 담쟁이가 인상적인 오래된 양조장이다. 주인장에게 양조장 역사를 물으니 정확히는 몰라도 원래 이 터에서 3대 백 년은 넘었고 이 붉은 벽돌 건물도 주인장이 처음 일하던 5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3대를 넘게 운영하던 양조장을 자신이 인수하여 운영한 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50살이 넘은 이층 양옥이다. 담쟁이가 멋진 곳
▲ 용궁 양조장 50살이 넘은 이층 양옥이다. 담쟁이가 멋진 곳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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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바가지로 퍼주는 물을 타지 않은 원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정말 시원하고 진한 맛과 향이 좋은 술이다. 순식간에 취기가 오른다. 역시 막걸리는 양조장 안에서 마시는 것이 최고다. 막걸리를 3병 사서 차에 싣고는 인근의 '용궁향교(龍宮鄕校)'로 갔다.

사실 육지 한가운데 용궁이라는 말이 너무 재미있는 곳인데, 이곳 용궁면에는 바다에서 나는 오징어불고기가 유명하고, 거북이에게 속아 용궁에 다녀온 토끼이야기를 형상화한 토끼간빵도 유명하다. 아울러 찹쌀순대, 쌀과 참기름도 알아주는 편이다.

명륜당
▲ 용궁향교 명륜당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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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까지 있는 용궁면은 예전 용궁현이 있던 곳이다. 향석리에 소재한 향교는 조선 태조 7년에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인 선조 36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인조 14년에 세심루(洗心樓)를 새로 지었다고 한다.

산허리에 외삼문과 세심루, 명륜당, 대성전의 순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향교 입구에 있는 2층 누마루식의 세심루는 홑처마 맞배지붕 굴도리집으로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다. 명륜당에 올라앉아 세심루를 바라보니,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晩對樓)를 닮은 모습이 정말 보기에 좋다.

세심루, 머리와 몸을 씻고 싶은 곳이다
▲ 용궁향교 세심루, 머리와 몸을 씻고 싶은 곳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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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명륜당에 앉아 술을 한잔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기회가 되면 세심루에 몰래 올라 탁주를 한잔하며 지친 '마음을 씻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정말 가져온 막걸리를 한잔할까 하다가 돌아 나왔다. 나오는 길에 동쪽으로 ㅁ자형의 주사(廚舍, 부엌)가 보인다.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가옥의 모습인데, 주사는 관리가 안 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세심루, 나무가 멋지다
▲ 용궁향교 세심루, 나무가 멋지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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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향교를 둘러보고 나니 다른 관광지도 많은 예천군이지만, 영주시와 함께 유교문화를 테마로 '내성천 물길 따라 서원 및 향교 유람'이라는 타이틀로 여행상품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을 듯 보였다. 이곳의 주사를 중간 기착점의 한식당으로 쓰면 더 좋을 듯 보인다.

또한 전국 어디든 문제가 비슷하지만, 예산을 다른 곳에 제발 많이 쓰지 말고, 관광증진과 교육차원에서 향교와 서원, 고택 등의 유지관리와 청소에 집중 투자하여 마을의 어르신들 일자리 창출과 문화재 관리의 질적인 수준을 더 높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향교에 대한 감탄을 마치고 다시 차를 돌려 비룡산(飛龍山) 정상부에 있는 '장안사(長安寺)'로 갔다. 신라시대의 고찰로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산속의 사찰이다.

예천 용궁면
▲ 장안사 예천 용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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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이곳 비룡산 장안사가 그 세 곳이다.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고찰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용이 많은 곳이다. 바다의 용왕이 계시는 용궁, 그리고 비룡산, 회룡대 정자, 용궁면, 용궁리, 이곳은 정말 용이 사는 명당인 듯하다. 우리가 비룡산에 오른 이유는 절을 보기 위함보다는 회룡대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명승지 '회룡포(回龍浦)'를 보기 위함이다.

별로 높지 않은 산이고, 중턱까지 차가 올라가는 관계로 쉽게 올랐다. 절 바로 아래에 차를 세우고는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는 도중에, 예천군에서 세운 것 같은 시(詩)를 담은 작은 목판을 발견했다.

눈물이 다 난다
▲ 황진이의 시 눈물이 다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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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시인이며, 기생이었던 황진이의 '산은 옛산이로되'였다.

산은 옛산이로되/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옛물이 있을소냐
이걸로 물과 같아야 가고/아니 오노매라

450년 전의 황진이가 오늘 날의 내성천을 둘러 본 것처럼, 너무 감동적으로 쓴 시가 가슴에 팍 다가왔다.

두 마리의 용이 마주 보고 누워있는 모습의 가운데에 자리한 회룡포는 유유히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기이한 풍경이 장관이다.

모래사장이 엉망이다
▲ 회룡포 모래사장이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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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도 맑은 강물과 넓은 백사장이 보인다. 예전에는 더 맑은 물과 더 큰 백사장이 보였는데, 이제는 영주댐 건설로 모래 유입이 크게 줄었다. 모래밭에는 지난 2014년부터 내성천 전역에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1년생 풀인 여뀌(천연 염색의 대명사격인 쪽의 사촌으로 염색하거나 음식의 향신료, 약재로 쓰이는 물을 무척 좋아하는 풀)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짐작으로는 육화(陸化)가 급속하게 진행 중이라 버드나무도 곳곳에 안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귀하다는 모래강인 내성천이 점점 풀밭으로 습지로 변해가는 것을 눈으로 시나브로 느끼는 것 같다. 안타깝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모래사장에 여뀌와 느티나무가 들어오면 나중에는 습지가 되어 모래가 흐르지 않게 된다.  모래사장 위에 수생의 동식물보다 육생의 동식물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생태계가 복원이 불가능하도록 파괴되는 것이다. 종의 숫자에는 변함이 없을 수도 있지만, 다양성에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돼지묵전골이다
▲ 태평초 돼지묵전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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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잠시 장안사를 살펴보고는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용궁면사무소 인근에 위치한 묵집으로 갔다. 요즘은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묵밥보다는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태평초'를 주문했다. 


태그:#내성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초록사진작가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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