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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억불산 편백숲 우드랜드. 편백이 빽빽한 숲길을 따라 나무데크가 깔려 있다. 이 데크를 따라 산정까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장흥 억불산 편백숲 우드랜드. 편백이 빽빽한 숲길을 따라 나무데크가 깔려 있다. 이 데크를 따라 산정까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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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이 하늘로 쭉쭉 뻗었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 편백의 은은한 향에 코끝도 행복하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이 달달하다. 숲 사이로 난 길도 단아하다. 길에 걸리적거리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가쁜 숨 몰아쉬지 않고도 산정까지 오를 수 있다. 귀한 숲이고, 건강한 숲길이다.

'정남진' 장흥의 말레길이다. 편백숲 우드랜드를 품고 있는 억불산에 있다. 정남진은 서울 광화문에서 봤을 때 정남쪽 끝자락을 가리킨다. 동쪽 끄트머리의 정동진에 빗댄 말이다. 장흥의 지명 브랜드다.

'말레'는 마루의 지역 말이다. 옛집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대청(大廳)을 일컫는다. 거리낌 없이 가족끼리 이해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무장애 데크로드, 장애물 없는 나무데크 길을 표현하고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도 오갈 수 있는 길이다.

억불산 편백숲 우드랜드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손석우 노래비. 장흥 출신의 손석우는 '노란 셔쓰의 사나이' 등으로 대중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억불산 편백숲 우드랜드 입구에 세워져 있는 손석우 노래비. 장흥 출신의 손석우는 '노란 셔쓰의 사나이' 등으로 대중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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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산 편백숲 우드랜드의 편백숲길. 미끈하게 자란 편백이 아름답고 숲길도 단아하다.
 억불산 편백숲 우드랜드의 편백숲길. 미끈하게 자란 편백이 아름답고 숲길도 단아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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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으로 가는 길에서 노래비를 만난다. '노오란 셔쓰의 사나이', '나 하나의 사랑', '즐거운 잔칫날'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곡가 손석우의 노래비다. 노래비의 모양이 셔츠를 표현하고 있다.

장흥 출신의 손석우는 1950∼1960년대 대중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 '노오란 셔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잔치 잔치 벌렸네 무슨 잔치 벌렸나…'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에 발걸음이 가볍다. 말레길은 편백숲길에서 시작된다. 피톤치드 넘실대는 숲길이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내뿜는 천연 항균물질이다.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을 고쳐준다. 스트레스도 단숨에 날려 보낸다. 치유의 숲이다.

숲길도 정갈하다. 길섶에 털머위가 무성하다. 보랏빛 현호색과 연푸른 개불알풀꽃도 봄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드랜드에 설치된 목재 조각품 전시장. 동화 속의 일곱 난장이를 세워 놓았다. 맨왼쪽 비어있는 곳은 숲속 공주의 자리다.
 우드랜드에 설치된 목재 조각품 전시장. 동화 속의 일곱 난장이를 세워 놓았다. 맨왼쪽 비어있는 곳은 숲속 공주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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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 우드랜드를 찾은 여행객들이 쉼터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산림욕을 즐기고 있다. 지난 3월 26일이다.
 편백숲 우드랜드를 찾은 여행객들이 쉼터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산림욕을 즐기고 있다. 지난 3월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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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목재 조각품 전시장이 있다. 동화 속 일곱 난장이들이 서 있다. 난장이들 옆의 빈자리는 숲속 공주의 자리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서면 숲속의 공주가 된다. 목재문화전시관도 있다. 나무와 숲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공간이다. 숲속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통나무집과 흙집도 여기저기 있다.

숲속 쉼터에서 삼삼오오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숲에서 즐기는 '녹색샤워'다. 보약에 다름 아니다. 풍욕장 비비에코토피아도 있다. 편백숲에 토굴과 움막, 원두막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편백과 소금을 활용해 힐링을 체험하는 편백소금집도 있다. 소금동굴과 소금마사지방, 소금해독방을 갖추고 있다.

편백숲은 1950∼1960년대에 조성됐다. 손석연(1918∼1997) 선생이 일궜다. 선생은 1958년 억불산 일대 황무지 120㏊를 불하받아 편백과 삼나무 47만 그루를 심었다. '푸른 산 아래 가난 없다'는 일념으로 땀과 열정을 쏟았다. 선생의 공적비 앞에서 잠시 숙연해진다.

억불산 우드랜드의 편백숲. 숲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삼림욕을 즐기는 것도 묘미다.
 억불산 우드랜드의 편백숲. 숲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삼림욕을 즐기는 것도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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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 조성에 공이 큰 손석연 선생의 공적비. 선생은 ‘푸른 산 아래 가난 없다’는 일념으로 땀과 열정을 쏟아 숲을 가꿨다.
 편백숲 조성에 공이 큰 손석연 선생의 공적비. 선생은 ‘푸른 산 아래 가난 없다’는 일념으로 땀과 열정을 쏟아 숲을 가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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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 우드랜드에서 억불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나무데크 길. 숲 사이로 나무데크를 깔아놓아 유모차나 휠체어도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편백숲 우드랜드에서 억불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나무데크 길. 숲 사이로 나무데크를 깔아놓아 유모차나 휠체어도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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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길은 편백숲에서 산정으로 이어진다. 기존 등산로와 별개로 나무널판을 깔아서 연결해 놓았다. 이 길을 따라 산정까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길에 계단도 없다. 휠체어나 유모차도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보다도 인간미가 묻어난다.

길옆으로 황칠나무가 많다. 성인병을 고치는 데 특효가 있다는 나무다. '혹부리 영감의 혹이 없어지지 않은 건 황칠을 복용하지 않은 탓'이라는 입간판이 웃음 짓게 한다. 콜레스테롤 분해와 뱃살 제거에 도움을 주는 황칠의 효능을 동화에 빗대 써놓았다.

'내가 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숲,/ 당신입니다.// 그 숲에 들어가 있으니/ 당신 때문이라고 탓하던/ 내가 부끄럽습니다.// 아름다운 병:당신을 탓하는 병// 당신 탓에/ 나는 참 아름다운 병에 자주 걸립니다.' 숲길에서 만난 이순형의 시 구절도 눈길을 끈다.

'내가 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숲, 당신입니다.' 숲길에서 만난 이순형의 시 구절이 나무데크 길에 세워져 있다.
 '내가 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숲, 당신입니다.' 숲길에서 만난 이순형의 시 구절이 나무데크 길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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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 우드랜드에서 억불산으로 가는 나무데크 길. 오른편으로 장흥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다.
 편백숲 우드랜드에서 억불산으로 가는 나무데크 길. 오른편으로 장흥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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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이 다른 소나무 곰솔도 부지기수다. 잎이 억센 게 곰솔의 특징이다. 줄기가 붉은 적송도 보인다. 사람이나 동물들에 쓰임이 많은 갈참나무도 많다. 참나무의 '최고참'으로 통한다. 쓰임이 많은 탓에, 자연 이외의 것들로부터 잦은 공격을 받고 있다.

연분홍 진달래꽃도 활짝 피었다. 지천의 철쭉은 진분홍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꽃망울을 일찍 머금은 꽃봉오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전망 데크에 멈춰서 내려다보는 편백숲이 장관이다. 탐진강을 가운데에 둔 장흥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찰하면서 숲길을 솔방솔방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편백숲 우드랜드에서 올려다 본 억불산 며느리바위. 옛날 구두쇠 영감과 며느리에 대한 전설이 얽혀 있다.
 편백숲 우드랜드에서 올려다 본 억불산 며느리바위. 옛날 구두쇠 영감과 며느리에 대한 전설이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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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의 며느리바위에 얽힌 전설도 애틋하다. 옛날 구두쇠 영감이 시주하러 온 승려를 박대하자, 며느리가 대신 시주를 하며 용서를 빌었다. 며느리의 효심에 감복한 도승이 "모월 모일 이곳에 물난리가 날 것"이라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산으로 피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의 부름에 앞산으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며느리가 돌로 변해버렸다는 얘기다. 며느리가 쓰고 있던 수건이 마파람에 날려 떨어진 곳이 읍내 건산(巾山)마을이라고.

억불산 정상으로 가는 길. 우드랜드에서부터 이어진 나무데크가 산정까지 깔려 있다.
 억불산 정상으로 가는 길. 우드랜드에서부터 이어진 나무데크가 산정까지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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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산 정상에서 나무데크를 따라 내려오고 있는 유모차. 해발 500미터 지점이다. 지난 3월 26일의 모습이다.
 억불산 정상에서 나무데크를 따라 내려오고 있는 유모차. 해발 500미터 지점이다. 지난 3월 26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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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숲이 멀어지는가 싶더니 산꼭대기가 가까워진다. 나무널판으로 연결된 길이 갈지(之) 자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유모차가 내려오고 있다. 아빠가 유모차를 밀고, 엄마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바람막이를 한 유모차에서는 더 어린 아이가 눈을 부릅뜬 채 산의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유모차를 뒤로 하고 해발 518m의 억불산 정상과 만난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과 어우러진 산자락의 곡선이 부드럽다. 왼편으로 천관산과 부용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산중턱의 천문과학관은 발아래에 있다.

길게 흥할 장흥(長興)의 시가지도 넉넉하게 펼쳐진다. 목포-순천을 이어주는 2번국도가 시가지 외곽으로 지난다. 오른편으로는 제암산과 사자산이 자리하고 있다. 다도해 풍광은 가는 먼지에 가렸지만, 이것만으로도 족하다.

억불산에서 내려다 본 장흥읍내.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산과 들의 모습까지도 넉넉해 보인다.
 억불산에서 내려다 본 장흥읍내.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산과 들의 모습까지도 넉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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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가는길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에서 광주순환도로를 타고 화순읍으로 간다. 화순읍에서 29번국도를 타고 보성으로 가서 목포 방면 남해고속국도를 탄다. 장흥나들목으로 나가 장흥읍에서 안양방면으로 우회전하면 우드랜드로 연결된다. 서해안고속국도 목포요금소에서 이어지는 순천방면, 남해고속국도를 타고 장흥나들목으로 나가도 된다.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억불산, #편백숲우드랜드, #무장애데크로드, #손석우노래비,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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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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