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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2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최근 정국 현안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현재 야권의 가장 큰 이슈인 '야권연대'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다. 여기서 안철수 대표는 야권단일화를 한다고 해서 국민의당 지지자들이 더민주를 지지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야권단일화 무용론을 제기했다.

이미 공천을 다 했기 때문에 더민주와 국민의당 사이의 전면적인 야권연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 국민의당 후보 중에서 야권연대에 호응하는 경우는 다음 2가지에 해당한다. 더민주 후보와 경쟁해서 단일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와 현실적인 이유로 더 이상의 선거 유세를 지속하기 힘든 경우이다. 그렇게 볼 때 안철수 대표의 태도 전환 가능성도 없고 후보자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놓고 봐도 국민의당을 향한 야권연대 촉구는 사실상 의미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이것과 상관없이 안철수 대표가 제기한 야권연대 무용론에 대해서는 깊이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발언을 통해서 현재 야권 지지층 사이의 반목에 대한 그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나타난 안철수 정치의 여러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관훈토론 참석한 안철수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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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거대 양당 체제가 바뀌어야 된다는 신념을 가진 분들이 국민의당 지지자다. 만약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일화가 됐다고 할 때 국민의당 지지자들이 더민주를 찍을 것인가. 그 효과는 상당히 적을 거라고 본다."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나온 안철수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일정 정도 사실에 부합한다. 물론 강경파가 지지층 모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안철수의 판단이 100%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안철수는 무슨 근거로 그와 같은 말을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의당 주된 지지층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국민의당 지지층은 2가지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정치적 중도층이 있다. 이들은 정치적 관심이 많고 투표 등 정치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기 때문에 수동적이면서도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는 무당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기존 정당에 모두 부정적인 입장를 보이며, 탈이념이라는 화두에 공감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원래부터 민주당 계열 정당에 대한 지지 성향이 없거나 약했다.

그 다음은 기존 야권 지지층에 속해 있던 반노 세력이다. 반노는 2003년부터 시작된 민주당 계열 정당의 내분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뒤 여러 계기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정치적 중도층과 함께 현재 국민의당 지지층의 한 축이다. 그리고 반노 세력의 영향력은 전자보다 월등히 강하다.

정치적 중도층의 경우, 그 영향력을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다. 뚜렷한 사회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외의 다른 연결망을 통해서 세력화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대체로 개별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조직적인 세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그런데 반노는 다르다. 반노가 상당히 위력적인 이유는 야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일정 정도 호응을 받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정치적 중도층과 달리 이들은 정치인과 세력을 향해 정치적 압박을 할 수 있는 실질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반노의 불만

그러면 반노는 누구인가? 크게 보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친노 운동권 세력들이 중심이 된 현재 더민주의 정치행태에 대해서 분노하고 친노 운동권 세력으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세력이 바로 현재의 반노다.

사실 야당의 현 상황을 보면 이와 같은 불만이 형성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본다. 그만큼 기존 민주당 계열 정당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킨 바 있다. 그래서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이 이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불만은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이다. 구성원들이 불만을 가져야 새로운 변화를 위한 동력이 형성된다. 그런데 그것이 증오와 적개심으로 전환되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증오와 적개심은 이분법적인 선악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만 한다. 이처럼 불만은 양 날의 칼과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는 대중들의 이와 같은 불만이 긍정적인 발전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이를 특정 세력을 향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거나 혹은 방조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데 대중들의 불만을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만에 쌓인 일반들의 정서를 증오와 적개심으로 유도하는 것이 정치적 동원에 있어서 더 쉽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이와 같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보수 세력이 과거에는 반공, 지금은 종북을 줄기차게 제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불만을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지혜, 용기, 관용 및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능력과 감각을 갖춘 정치인이 많지 않다.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사를 돌아봐도 그와 같은 인물은 매우 적다.

김대중이 춘향이의 고사를 인용한 이유

민주화 운동 시기, 김대중은 춘향이의 한은 변사또를 벌해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몽룡과의 재회를 통해서 풀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무슨 뜻일까?

이것은 한을 초래한 대상에 타격을 주기보다 한이 나오게 된 원인 자체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을 보복을 통해서 풀 것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통한 승화의 과정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오랜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심각한 괴로움을 토로하던 민주화 운동가들을 향해서 김대중은 그와 같은 한이 적대적 보복의식과 대결의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 춘향이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이는 한이 쌓일 정도로 심각한 현실의 문제점을 풀기 위해서는 결국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은 실제 그와 같은 정치를 했다. 그가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고, 비반미와 비폭력을 강조한 것 모두 이와 관련이 있다.

반노에 경사된 안철수 정치의 문제점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김한길 "오늘 회의는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선대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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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 안철수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반새누리(반박) 반더민주(반노) 두 가지를 모두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공천한 것을 보면 후자를 타깃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안철수의 지향점은 그렇지 않았다. 안철수는 야권 재편을 통해 선거 승리에 갈증을 느끼는 야권 지지층의 불만을 해소하겠다는 그야말로 담대한 구상을 제시하면서 탈당했다. 그러면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더불어민주당)은 만년 2등에 머무는 기득권화된 세력이라고 맹공을 펼쳤다.

야권 재편을 위한 방법으로, 안철수는 신진보 노선에 부합한 새로운 인물로 구성된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들이 기존 낡은 진보인 더민주를 대체할 때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당의 모습을 보면 그의 주장을 납득하기 힘들다. 국민의당 공천을 보면 비례대표 1, 2번을 제외하고 절대 다수가 기존 민주당 계열 출신 정치인들이다. 더군다나 중앙 단위든 지역단위든 상당히 오랜 기간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한 정치인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비전 및 정체성에 기반한 균열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계급, 민족, 종교, 문화, 인종, 산업기반 등등 정치세력이 대변하는 가치의 균열이 크게 나타날 때 정치적 분화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더민주/국민의당 사이에는 그러한 차이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존 친노/반노 계파 갈등에 따른 분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분화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내에 존재하는 반노 정서에 크게 영향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중적 반노 정서를 지금 안철수를 비롯한 국민의당 정치인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필자는 매우 부정적이다.

오히려 반노를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확장하여 반노무현주의(Anti-Rohism)가 형성되도록 유도하거나 방조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생산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적으로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모두 심판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재 수도권 국민의당 후보군을 보면 그의 말과 달리 국민의당의 창끝은 더민주를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절대 다수가 민주당계열 정당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며, 인물경쟁력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새누리당 계열 정당에서 결합한 인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안철수는 그가 말한 비전과 다르게 실제 현실에서는 반노에 기반한 정치세력화에 몰두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것은 안철수에게도 야권 전체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일이다.

반노를 이용하고, 반노에 이용당한 안철수

안철수는 29일 제주에서 발표한 '미래선언'에서 제4차 혁명에 맞는 산업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매우 의미있는 말을 했다. 처음부터 안철수는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가 탈당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그는 탈당을 했어도 야권 확장에 기여해서 자신의 정치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강조한 실용진보 노선에 부합한 신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벤처 정당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주변에는 여러 기존 정치인들이 함께 하려고 했겠지만, 안철수는 아예 기존 정치인들을 배제하거나 혹은 같이 해도 소수 정예 인사들로만 같이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래서 이들이 자리잡은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오히려 야권단일화를 공세적으로 제시했으면 정치적 바람을 타고 아마도 더민주 후보들을 제치고 대부분 단일후보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실적 당세를 고려해서 상당수 지역은 더민주 후보를 밀어줬으면 현재와 같은 야권연대 국면에서도 안철수가 더민주를 오히려 리드하면서 정국의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안철수는 야권을 강화시키는 보물로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반노 정치 세력과 손을 잡았으며 안철수의 정치적 장점과 어울리지 않는 수도권 지역 기존 민주당 계열 토호 정치인들을 받아들여 공천을 하였다. 그래서 현재 야권연대 국면에서도 계속 수세적인 입장에 몰리게 된 것이다.

반노 정치세력은 대중적 반노 정서를 이용하기만할 뿐 이를 생산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에너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마인드와 능력이 사실상 없어 보인다. 이들은 친노의 무능, 한계, 실책을 비판하고 그 주변에서 정치적 생존을 도모하는 위성정치만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안철수가 지향하는 신진보 노선과는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안철수가 말한 낡은 진보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안철수가 말하는 반새누리-반더민주 라는 정치적 노선이 현실 속에서는 다르게 관철되어 반더민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15일 정도 남은 총선 일정을 고려할 때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안철수는 한 가지 알아야 한다. 반노를 이용했든 혹은 반노에 이용당했든 이 모두 안철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안철수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당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총선 후 안철수는 매우 큰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받았던 여러 비난과는 성격을 달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이러한 모든 문제의 시작이 바로 반노에 경사된 그의 정치 전략에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신기 기자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태그:#안철수, #친노, #반노, #국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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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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