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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총선보도감시연대의 모니터 결과를 지켜보면 마치 왕조시대에 온 착각마저 든다. 언론 매체가 정파성을 띠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언론매체는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일 수 있다. 일부 정당의 정책에 더 호감을 가질 수 있다.

공영방송만 아니라면 이에 대해 어느 국민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사영 매체라 할지라도 사실에 입각하고, 반론권만 보장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비하기 어렵다.

채널A <쾌도난마> 3월 7일 방송 갈무리
 채널A <쾌도난마> 3월 7일 방송 갈무리
ⓒ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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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보수 신문이나 종편 방송이 하는 보도를 보면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파성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정 정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보도를 하기보다는 원칙도 논리도 없이 특정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찬양하는 보도를 하기 때문이다. 야당이 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비난받을 일로 보도하고, 여당이라 할지라도 특정 계파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융단 폭격을 하고 있다.

계파 중심보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정치의 수준이 워낙 높지 않아서 정당이라는 것이 나름의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지 못하고, 따라서 한 정당 구성원 간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정당 사이의 경쟁은 정책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특정 정당을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일은 그나마 '공감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정파성의 범위에 들어가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정당 안의 계파 간 갈등에 대해서 사실을 충분히 알리는 수준을 넘어서 누구를 노골적으로 편드는 일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유는 명확하다. 언론 매체 존재의 당위성이 공적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른바 '언론'이라고 인정되는 매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투쟁 현장에서 기자들이 정당하게 취재하다 경찰에게 폭행 당했다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말할 권리, 알 권리를 훼손당한 듯 생각하여 '국민'이 누려야 할 헌법적 가치의 훼손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런 여론이 모이게 되면 정치권에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정치권은 이런 압박에 언론 매체를 보호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가게 된다. 이 순환구조에서 핵심 고리는 언론 매체가 공적 영역에 있어 '우리'의 삶이 향상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공유된 믿음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기자를 향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말을 국민이 사용한 것도 같은 생각 때문이다. 기자라면 해야 할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더 이상 기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기자라면 공동체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는 '공유된 믿음'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언론 존재의 당위성이 공적 영역에서 공동체를 위한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해 편의를 봐주는 일은 국민의 개별적 판단에만 맡겨져 있지 않다. 다양한 제도를 통해서도 보장하고 있다. 예컨대 명예훼손을 다루는 형법 33장에서 언론 매체는 일반인과는 다르게 대하고 있다.

형법 310조는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신문 판매 행위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면세해주기도 한다. '언론진흥재단'과 같은 곳에 공적자금을 투자해 언론사나 언론인을 다양하게 돕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이 모든 일은 언론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를 한다는 전제하에 일어난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쇼핑채널이나 전단지 발행이 아니라 '언론' 행위라고 생각하는 매체라면, 특히 선거 국면에서 계파의 이익을 위해 종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계파 간에 국민을 위한 경쟁이 일어나도록 공정하게 일해야 한다.

과연 언론들은 '존재 이유' 충실히 수행하고 있나?

하지만 4.13 총선을 20여 일 앞둔 지금까지는 본을 보여야 할 대통령도 대부분의 보수·종편 매체도 이런 상식적 당위를 무시하고 있다. 민언련 총선 모니터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어제도 오늘도 대통령 개인의 심중을 헤아리는 '충성 경쟁'을 하고 있다.

최근 내용만 몇 가지 추려보더라도 낯 뜨거운 언론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초유의 욕설파문, 축소하는 지상파와 감싸는 종편'(14차 보고서), '공천개입 '물타기'로 청와대 향한 충성심 경쟁 나선 조중동'(15차 보고서), '대통령의 거침없는 선거개입, 노무현·MB때도 그랬다는 동아'(16차 보고서).

사태가 이 지경이니 만큼 해당 매체의 행위를 바로 잡기 위한 모니터 활동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보호와 지원으로부터 배제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듯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진순(민언련 정책위원), 정민영(변호사),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태그:#종편, #선거보도, #언론공적책임, #편파보도, #정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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