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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벽이 다 헐린 도시 같다."(잠언 25:28)

내가 덕에게 퇴근차 타고 제일호텔주차장까지 오면 좋겠다고 한 말에 반응은 이랬다.

"가능하다고 생각해?"

어조가 여유있고 부드러웠다. 순간 나는 "싫어"라거나 "말이 된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가능한지를 묻는 덕이 말에 다시 한 번 살짝 놀랐다.

고모 :"가능?"
: (목과 목소리에 힘을 실어서 강조하듯) "응~ 그게 가능해? 늦게 끝나면 퇴근차는 한바퀴를 돌아서 오니까 늦지~ , 고모는 내가 집회에 늦었으면 좋겠어?"

제대로 치고 들어온다. 그야말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똑 바로 응시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덕이 반응에 나야말로 순간 눌렸는지 나도 모르게.

고모 : "아니~ 그게 아니고…."
: "거봐, 고모도 그건 안되는 걸 알잖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덕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조리있게 다 한다. 이렇게 말을 잘할 줄이야. 이런 덕이를 백미러로 보면서 갑자기 이런 기억이 떠오른다.

절집에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주지스님의 말에 우리 가족은 모두 말을 잃었다.
 주지스님의 말에 우리 가족은 모두 말을 잃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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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집안 식구들의 안녕과 아들·손주가 건강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절에 의지하신 기간이 길었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덕이가 아마도 6살 때였을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 가족은 절을 방문했고, 주지스님의 차 대접을 받고 있던 중에 한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덕이는 일반 사람처럼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절에 두는 것이 어떠십니까?"

그 사찰은 그렇지 않아도 어느날부터인가 부모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한두 명씩 모이더니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 따로 있을 정도가 됐다. 그맘때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했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그 자리에서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아닙니다, 우리가 키워야지요"라고 답하셨다. 나 또한 덕이를 어떻게 돌보고 키워야 할지 앞일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덕이를 그곳에 두는 것보다는 친부모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키워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그곳의 일정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 차 안에는 덕이가 좋아할 만한 동요가 흘러나왔다. 그 동요 말고는 서로 아무말 없이, 휴게소도 들리지 않고 5시간에 걸쳐 집으로 돌아왔다.

이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지금도 퇴근하는 덕이를 태우고 집으로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우연이랄까. 또한 덕이가 이렇게 기대 이상으로 잘 성장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나와서 일 수도 있다.

고모 : "덕이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내가 올게, 대신에 이러면 어떨까?"
: "무엇을?"
고모 : "내가 평소처럼 하는데 혹시라도 너가 정시에 퇴근할 때는 퇴근차 타고 제일호텔주차장까지 오는 건 어떠니? 그러면 거기에서 내가 태우고 가면 집회 시간도 늦지 않고 갈 수 있으니까."

나도 내가 원하는 바에서 바로 물러나지 않고, 최대한 타협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 "확실하지 않잖아."
고모 : "그러니까 오후 3시 30분까지는 정시 퇴근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내게 카톡으로 말해주면 될 것 같은데. 어차피 나도 덕이 태우러 오기 위해서는 오후 4시까지 일을 마치고 그 후로 출발해서 오는 거니까."
: "알겠어. 그렇게 할게."
고모 : "이해해줘서 땡큐. 덕아~. 지금 덕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동시에 이뤄졌구나. 기쁘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좋아."

우리 둘은 이런 대화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런 시간 역시 필요하다. 덕이가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그리고 겸손한 태도로 말하는 게 그중 으뜸으로 기분이 좋다.

봉사활동 갔다가 민망함 겪은 덕이

누구나 의도한 바와 다르게 민망함을 겪을 때가 있다.
 누구나 의도한 바와 다르게 민망함을 겪을 때가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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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 "덕아. 지금 나에게 말하는 태도와 내용을 들어보니까 덕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덕이의 입장을 침착하고 정중하게 잘 전달할 것 같은데?"

덕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숙이며 조금 전의 당당함이 수그러든다. '뭐지?' 나는 덕이를 관찰한 내용을 장난기를 섞어서 그대로 말을 걸었다.

고모 : "왜 그러셩~.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무슨 일 있니?"
: "내가 그렇지 못해, 사실은 봉사할 때 저번엔 한 아주머니가 내가 인사를 하고 뭘 여쭤봐도 아무런 말도 없어서 그냥 왔어."
고모 : "아…. 그랬었구나. 저런….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했겠다."
: "응…. 부끄럽고…."

고모 : "그랬구나, 사실은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 이후로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해봤거든. 덕아~. 앞으로 그런 상황이 또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해보고 싶니?"
: "아직 모르겠어."
고모 :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틀림없이 좋은 반응이 떠오를 것 같은데…. 천천히 여유있게 생각해볼까? 고모는 기다려줄 수 있어."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차 안에서 덕이가 그런 동일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매듭짓고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덕이는 바로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아마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으리라.

일단은 집으로 들어가서 다음 일정을 하면서 당분간 서로 어떤 반응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마도 덕이는 봉사할 때에 혹시 그 대상자들이 자신을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길까봐 염려하는 것 같다. 덕이가 이 점에서 스스로 자유로울 때 남에게 휘둘리지 않을 텐데….


태그:#자유, #퇴근시간, #기억, #아이들,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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