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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거 뭐야?"
"그러게? 그게 뭘까…."

외출하고 돌아와 아내와 내가 나눈 대화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비닐로 쌓인 뭔가 놓여 있다. 비닐을 들춰보니 시금치 꾸러미다. 그것도 시금치가 잘 씻어진 채로 새색시마냥 배시시 웃고 있다. 그것을 들추어 보는 순간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한마디한다.

"아하! 그 거!"

사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16년째 시골에 사는 우리 집 문 앞에서, 잊을 만하면 생기는 해프닝이다. 한 곳에 정착한 것도 아니고, 여러 번 이사 다닌 '시골살이'인데도, 이런 해프닝은 가는 곳마다 생기곤 한다.

어떤 날은 흙이 더덕더덕 묻은 무 다발, 대파 다발, 부추 다발, 깻잎 다발, 오이 다발, 마늘 다발, 고구마 다발, 감자 다발 등이다. 다 기억하기가 힘들 정도다. 심지어 검은 봉지에 잘 익은 배와 사과 등이 있다. 과수원하시는 어르신의 소행이다.

이렇게 우리 문 앞에 우리 몰래 두고 간 '범인'(?)은 십중팔구는 들통이 나곤 한다. 마을이 큰 게 아니기 때문에 살다보면 결국 알게 된다. 대체로 누가 그랬는지 짐작이 가고, 그 짐작이 맞아 떨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끝끝내 '범인'(?)을 알아내지 못할 때도 있다.

요새 뭐가 제철인지 알게 해주는 선물들

몇 해 전 우리 가족이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 누가 몰래 가져다 둔 배추다. 배추 본 김에 김장 했다. 이런 사랑을 우리 부부는 '문전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골 살면 이런 문전사랑은 기본이다.
▲ 문전사랑 배추 몇 해 전 우리 가족이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 누가 몰래 가져다 둔 배추다. 배추 본 김에 김장 했다. 이런 사랑을 우리 부부는 '문전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골 살면 이런 문전사랑은 기본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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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랑을 받다 보면, 한 가지 알게 되는 뜻밖의 사실이 있다. 바로 요즘이 '무슨 철'인지 알게 되는 것. 감자 다발이 문 앞에 있으면 감자철, 오이 다발이 문 앞에 있으면 오이철, 고추 다발이 문 앞에 있으면 고추철인 게다.

우리도 약간의 텃밭을 하고, 마트에 가서 각종 채소를 사 먹지만, 아무래도 제철에 난 갓 따온 채소만 하랴. 그것도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을 담은 채소라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오늘 우리 문 앞에 도착한 '사랑'은 요즘 '시금치철'이라 말해주고 있다.

지난 일이지만, 이 사랑의 범인(?)을 색출하는 데 성공했다. 누굴까? 몇 분이 우리 부부의 수사선상(?)에 들었고, 예상대로 그분들 중 한 분이었다. 바로 '대장금 할머니'. 우리 흰돌리마을에 체험 학생들이 오면, 20명이든 30명이든 겁내지 않고, 혼자서 척척 음식 손님을 치러내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래서 며칠 후 우리 부부는 귀여운 복수(?)를 하기로 했다.

"우리도 그거 한 번 해보자."

아는 분으로부터 우리 '더아모의집(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 아내와 내가 목회하며 우리가 사는 집)'에 빵세트가 들어왔다. 이걸 어떻게 하지. 마을 어르신들이 계시는 마을회관에 가져다 드릴까. 그랬다. 며칠 전 일에 대한 복수(?)를 하기로 했다.

빵세트를 들고 처음 찾아간 집은 우리 마을 '기차 화통' 형님 집이다. 이 형님은 60의 나이에도 말씀하실 때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리 밖 들녘에서 하는 이야기를 방에서 듣곤 했다.

이 형님에게 복수(?)하는 것은, 지난해에 우리 텃밭을 무료로 '트랙터질' 해 갈아엎어주셨기 때문이다. 몰래 가져다 드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집 아들이 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웃으며 자리를 떴다.

이번엔 '대장금 할머니' 차례다. 집 앞에 도착했다. 사실 들켜도 아무 상관없다. 그냥 인사하고 드리면 서로 좋다. 하지만, 받은 게(몰래 사랑) 있으니 돌려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일부러 연출한 게 아니라 우리 부부가 없어서 그리 하신 것임을 알지만 말이다.

"엄니, 엄니! 계셔유?"

아무 소리도 없다. 밭일 하러 나가셨나 보다. '아싸',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만 있고, 엄니는 안 계신다. 입구 거실 바닥에 빵세트를 조심스레 놓았다. 들킬 새라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치며 나왔다. 그거 아는가. 계획대로 범행(?)이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을. 난 미소를 머금고 현장을 빠져 나왔다.

우리의 '범행'이 들통났다

2013년도 크리스마스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마을어르신들의 문앞에 양말 선물을 했다. 우리도 어르신들에게 나름 귀여운 복수(문전사랑)을 한 것이다.
▲ 산타양말 2013년도 크리스마스엔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마을어르신들의 문앞에 양말 선물을 했다. 우리도 어르신들에게 나름 귀여운 복수(문전사랑)을 한 것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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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아내와 내가 외출하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신다.

"빵 고마웠어요. 감사해요!"

팔순 엄니의 해맑은 미소와 공손한 인사에 우리 부부는 그저 고맙기만 하다. 이런 사랑을 우리 부부는 '문전 사랑'(문 앞에서 이뤄지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당신도 이웃이랑 '문전 사랑' 한 번 해보지 않겠는가.


태그:#더아모의집, #송상호, #이웃사랑, #나눔,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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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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