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탯줄도 떨어지지 않고, 눈도 뜨지 못한 고양이 세 마리가 버려졌다.
▲ 버려진 새끼 고양이들 탯줄도 떨어지지 않고, 눈도 뜨지 못한 고양이 세 마리가 버려졌다.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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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학교 인근 분식집 앞에 반찬 통들과 함께 탯줄도 끊어지지 않은 아기 고양이 3마리가 버려져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에 고양이들을 동물병원에 데려가 응급처치를 하고 3일 동안 돌보았지만, 세 마리중 두 마리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학내에서 고양이 쉼터 활동을 하고 있는 '고려대 고양이 쉼터'의 정희영(21)씨와 학내 녹색당 모임인 '녹색당 고려대 모임'의 구성원인 저는(진일석, 26) 이 문제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이에 반려동물을 책임감 없이 키우고 동물을 생명으로 생각하지 않는 세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대자보를 작성해 21일 게시했습니다. 아래는 대자보 전문입니다.

"당신이 죽였습니다"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 부착한 대자보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 부착한 대자보
ⓒ 진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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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고른 햇살 앞에 세 마리의 고양이가 박스에 담긴 채 버려져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반찬 통들과 함께 버려져 있었습니다.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응급처치부터 했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아직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가 어미와 떨어져 있는 경우, 생존 확률은 1% 미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취방에 고양이들을 데리고 오자마자 체온 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보일러를 세게 켜고,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아기 고양이들이 담긴 상자를 수건과 목도리로 덮고서, 1시간마다 분유를 먹였습니다. 살릴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야 했으므로,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배변 유도를 위해 상자를 덮은 천을 걷었을 때, 아주 빠르고 거세게, 구체적인 슬픔의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밤새 제대로 된 울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뭉그러진 비명 같은 것을 울어대던 까만 아기 고양이는 더 이상 그 미완성의 울음도 내지 못했고, 작은 몸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었습니다.

죽음은 손대지 못할 정도로 작고, 온기가 사라진 채 차가운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선명하게 작고 차가운 죽음 앞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고, 서로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고, 그리고 울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던 일, 다만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어쩌지 못한 죽음을 바라보며 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다음 밤에는 남은 두 마리 중 식욕이 눈에 띄게 줄었던 한 마리도 죽음을 맞았습니다. 아기 고양이들이 차례로 죽어간, 이 자취방의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저 바깥은 대학가의 새로운 학기에 대한 활기와 열기로 뜨겁고 시끄러웠습니다. 그 온도 차를 원망할 여유도 없이, 너무 빠르게 죽어간 아기 고양이들을 보며 속수무책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자를 덮은 천을 열 때마다 달려드는 선명한 두려움, 그것은 작고 약한 아기 고양이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차갑게 식은 몸, 굳어진 다리, 벌어진 채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입, 그 차가운 고요. 나머지 한 마리마저 그 가벼운 몸을 휴지로 감싸게 될까 봐, 세 마리를 담았던 종이상자를 텅 비운 채 다시 바깥으로 내놓게 될까 봐 무섭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거리에 버려진 개와 고양이는 8만 마리가 넘습니다. 하루에 200마리가 넘는 유기횟수입니다. 사람의 손을 탄 동물들은 길에 버려지면 살 수 없습니다. 아주 강한 생의 의지로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인간이 버린 인간의 음식과 길거리 여기저기에 고인 오염된 물로 삶을 연명한대도, 그 삶은 갖가지 위험들에 의해 아주 단기간에 끝나버립니다.

운 좋게 사람에게 발견되어 구조된다고 해도, 입양되지 않으면 결국 안락사 당합니다. 길에 내놓아지는 순간 그들의 생은 빠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 떨어지고, 그 원인은 당연하게도 길바닥 삶에 대한 요령이 없는 약한 동물을 길에 버린 당신, 바로 사람입니다.

그들은 인형이나, 물건이 아닙니다

SNS에 올라오는 귀여운 고양이 사진이나 동영상에는 그 귀여움에 몸서리치는 댓글들이 셀 수 없이 달려있습니다. 귀엽지만, 그들이 안전한 삶을 살 권리가 귀여움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인형이 아니고, 물건이 아니므로, 인간이 만약 값을 주고 그 '귀여운' 동물을 가지게 됐대도, 결코 그것이 동물을 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이 더 이상 귀엽지 않아도, 성가시고 귀찮고 아프고 흉하고 못났대도, 인간이 한 번 그들의 생을, 질이 좋은 삶을 약속했다면 그 약속은 그들의 권리로서 지켜져야 합니다.

고양이를 상자에 넣어 버린 사람은 아마도 "더 좋은 사람이 잘 키워주겠지"하는 생각으로, 작은 동물에 대한 안쓰럽거나 미안한 마음은 꽤나 빨리 잊어버릴 수 있었을 겁니다. 애초에 헌 옷을 내놓는 마음이나, 못 쓰게 된 가구를 내다 놓는 마음으로 가뿐히 두고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밤새 눈을 떼지 않으며 돌봤지만 세 마리의 고양이 중 두 마리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나머지 한 마리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실 때는, 아마 마지막 아기 고양이마저 죽은 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상자에 담아 찬 밤 길바닥에 내려놓은 그 사람, 그 사람은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약한 동물은 항상 그렇게, 벼랑 끝에서 내몰리며 죽어갑니다.

새끼 고양이들에게는 그 사람이 벼랑이었을 겁니다. 인간은 자주 동물들에게 벼랑이 됩니다. 우리가 밀어 떨어뜨릴지, 손을 뻗어 구해주고 지켜줄지를 선택함에 따라 어떤 동물은 살고, 어떤 동물은 죽습니다.

버린 사람의 사정이 얼마나 어쩔 수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피치 못한 경우일지라도 생명 살해에 가까운 유기 행위보다는 나은 선택지가 있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사람이 꼭 사람을 죽여야만 악마가 될까요? 버려진 새끼 고양이들은 손바닥보다 작았지만, 사람의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발에 그보다 더 작은 발톱까지 야무지게 조르르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 없고 약한 생명들이 인간의 무책임에 의해 이렇게 쉽게 죽어가는 장면을 또 목격하고 싶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어딘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골목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틈을 타서, 사람의 손에 의해 버려지는 강아지,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오늘밤에도 검고 싸늘한 새벽녘, 어떤 동물들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생명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

특히 대학가에서 자취를 하는 학생일수록 반려동물을 기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른다는 것은 온전한 책임과 보호를 위한 일정한, 혹은 예상보다 커다란 금액의 지출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전적, 경제적 각오와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반려동물을 입양하지 마세요. '키우다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그만큼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했던 결정이라는 것의 방증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한 포기는, 말했듯 유기이며 살해 행위입니다. 우리가 발견한 세 마리의 고양이는 반찬 통과 함께 버려져 있었습니다. 정황상 높은 확률로, 학내 구성원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학내 대자보로 쓰게 된 이유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대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먼저, 인간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동물들의 생명을 위해 윤리적인 태도를 견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 구성원으로서,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생을 부여받은 동물들의 권리를 지켜줄 것을 주장합니다.

녹색당 고려대 모임은 지난 겨울 학교에 있는 고양이들을 위해 스티로폼 쉼터를 만들었고, 이후 생긴 고려대 고양이 쉼터는 쉼터를 체계화해서 규칙적인 사료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나무숲 등의 커뮤니티에 '고양이가 무섭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 어쩌려고 밥을 주냐'는 식의 이야기들이 올라오는 것을 종종 보곤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생태계의 최대 교란종은 인간입니다. 어째서 인간만이 이 땅에서 모든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생명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생명 존중의 아주 당연한 태도입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하는 개들이 갇혀 있는 번식장에 대한 규제도, 중성화 수술(TNR)도, 형식적이고 쉬운 입양절차 등의 문제도 마땅히 인간이 책임지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저희는 학내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중성화 수술도 강제로 고양이의 생식 기능을 빼앗는 것이라 마음 아픈 일이지만 지금의 환경에서 인간과 고양이들이 공존하기 위한 타협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함부로 입양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한 우리의 활동을 지지해주세요. 조금만 생각하면 모든 생명에게 보호란 당연하지 않은가, 인간만 좋은 삶이라니 너무 오만하지 않았나, 하며 이해해주실 학우 분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만 벼랑에서 동물들을 무책임하게 밀어버리지 않는다면 인간과 동물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그런 공존을 바라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드릴 것은 역시 아주 당연한 것들입니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을 더 사랑해주세요. 나만 기쁘고 나의 행복만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그들의 행복과 안전까지 돌봐주는 사랑을 주세요. 사랑을 구성하는 부분 중 많은 부분이 책임감인 사랑을 주세요.

인간보다 짧게 살아가는 동물의 평생을 책임져줄 단단한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짧은 생을 더 짧게, 함부로 줄이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키울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고 해도 길거리에 내놓지 말고 유기동물 보호소나 커뮤니티에 맡기는, 마지막 수고라도 해주세요.

그리고 애초에, 함부로 입양하지 말아주세요. 인간의 주변에서 귀여운 소품이 되기 위해,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존재는 없습니다. 당신에게 탄산음료 같은 기쁨을 주는, 인간을 짜릿하게 만드는 불과 몇 분간의 귀여움의 순간 이외에, 인간이 시시각각 동물들에게 들여야 하는 상상 이상의 비용과 시간과 정성을, 그 피곤함을 각오해야 하는 매일을 생각해주세요. 그들도 인간이 약속한 최적의 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살 권리가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세요.   

교육 10 진일석/ 정외 14 정희영

2015년 3월 21일
고려대 고양이 쉼터 X 녹색당 고려대 모임


태그:#동물권, #녹색당, #고양이쉼터, #고고쉼, #대학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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