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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3일, 태국 북부 치앙마이 근교에 있는 '코끼리 자연농원((Elephant Nature Park)'을 찾았다. 1995년 코끼리보호운동가인 태국여성 '렉(Lek)'이 설립한 코끼리 자연농원은 학대받은 코끼리를 구조해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야생동물보호소다. 40만m²의 대지에 코끼리 69마리, 물소 70마리, 개 500마리, 고양이 200여 마리, 그리고 돼지 한 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야생동물보호소라고 하면 문턱이 높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홈페이지를 통해 짧게는 당일치기부터 길게는 일주일까지 나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골라 신청할 수 있다. 자원봉사라도 참가비를 지불해야 한다. 참가비는 보호소를 운영하고 코끼리를 구조하는 기금으로 사용된다.



치앙마이 시내 숙소로 보내 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코끼리 자연공원에 도착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보호소를 걸으며 코끼리들을 만나고, 코끼리들이 구조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야생동물인 코끼리가 트레킹, 동물쇼같은 관광 산업에 쓰이면서 겪는 학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며칠을 묶어놓고 굶기고 때려 어린 코끼리의 야생성을 없애는 '파잔 의식'이나, 명령을 따르게 하려고 피부를 찌르는 '불훅(Bull-hook)'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코끼리 한 마리 한 마리가 겪은 끔찍한 과거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했다.

'쇼하다가 부상당하면 구걸', 끊이지 않는 동물학대

태국, 미얀마, 버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 코끼리는 수백 년 동안 벌목산업에 쓰여 왔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음식을 먹으며 가파른 산에서 나무를 끄는 '트랙터' 역할을 한다. 발은 뒤틀려 불구가 되고, 나무가 몸에 떨어져 등이 부러지거나 지뢰를 밟는 경우도 많다. 1989년 태국에서는 벌목이 금지되었지만, 아직도 국경지역에서는 불법 벌목장이 운영되고 있다.

구걸하는 어린 코끼리
 구걸하는 어린 코끼리
ⓒ www.saveelephan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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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이나 공연에 쓰이는 코끼리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야생에서 코끼리는 하루에 18시간 먹이를 먹으며 보내지만, '일하는' 코끼리들은 하루에 18시간씩 노역을 한다. 굶주림과 갈증, 스트레스와 소음에 시달리며 혼란스러운 삶을 살다가 병들어 죽는다.

벌목코끼리든 트레킹장의 코끼리든, 그들의 고통은 한 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병들고 다쳐 하던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곧장 다른 업종에 '취업'을 해야 한다. 서커스단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쇼를 하던 암컷 코끼리 '럭키'는 강한 조명 때문에 시력을 잃고, 번식장에 팔려가 사지가 틀에 묶인 채로 강제로 교미를 당했다. 뒷다리 사이에는 빠져 나온 생식기의 분홍빛이 선명했다.

'쉬리', 태국어로 '자유'라는 뜻의 이름을 얻은 코끼리는 한 발로 서는 재주를 부리다 자기 다리에 주저앉았다. 불구가 되자 곧장 거리로 나가 바나나를 파는 '구걸 코끼리'로 전락했다. 일흔 마리 코끼리 중에 몸이 성한 코끼리는 몇 마리 되지 않았다.

모진 학대도 빼앗을 수 없는 코끼리의 영혼

앞다리가 불구가 된 코끼리. 벌목과 관광산업에 쓰이던 코끼리들은 다리와 발에 질병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앞다리가 불구가 된 코끼리. 벌목과 관광산업에 쓰이던 코끼리들은 다리와 발에 질병이 있는 경우가 많다.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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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코끼리는 혈연관계로 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한다. 이곳의 코끼리들은 자기들끼리 무리를 선택한다. 전혀 본 적 없는 코끼리들이 대여섯 마리씩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아기 코끼리의 유모 역할을 자청하기도 하며, 때로는 단짝친구가 되기도 한다.

벌목에 쓰이던 '조키아'는 임신 11개월의 몸으로 나무를 끌다가 유산했다. 산 밑으로 굴러떨어진 태아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조키아는 우울증에 걸렸다. 움직일 의지가 없는 조키아에게 마훗(Mahout, 코끼리를 조련하는 사람)은 새총으로 한쪽 눈을 쏴서 노동을 강요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결국에는 남은 한 눈도 칼로 후벼 팠다.

앞이 보이지 않는 조키아는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먹이를 실은 트럭이나 자원봉사자 일행이 다가올 때마다 '끼익, 끼이익' 하며 불안감을 표시했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어김없이 '꾸우웅-'하는 굵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단짝친구 '매펌'이다. 조키아가 불안해 할 때마다 소리를 내서 "괜찮아, 놀랄 필요 없어"라는 신호를 보냈다. 식사 때가 되면 높은 소리로 친구를 부르고, 개울가로 목욕을 갈 때도 잊지 않고 챙겼다.

힘든 노역도, 모진 학대도 앗아갈 수 없었던 코끼리들의 아름다운 영혼. 그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진정한 동물과의 교감은 '생명 존중'

조련사의 지시를 듣지 않다가 두 눈을 잃은 코끼리 조키아와 그를 보살펴주는 친구 코끼리 매펌
 조련사의 지시를 듣지 않다가 두 눈을 잃은 코끼리 조키아와 그를 보살펴주는 친구 코끼리 매펌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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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비교적 간단했다. 코끼리와 걷고, 코끼리가 개울에서 목욕을 할 때는 물을 끼얹는 일 등이었다. 개울이 얕아 덩치가 큰 코끼리는 몸을 완전히 담글 수 없어 사람들이 바가지로 물을 뿌려준다. 물과의 마찰로 코끼리 피부에 붙은 모기 알을 떼어내는 효과도 있다. 아흔 살이 넘어 건초를 소화하지 못하는 코끼리가 먹을 주먹밥을 만들고 나르기도 했다.

공간이 넓다 보니 많이 걷는 것 외에는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는 않았다. 코로 모래를 뿌려 더위를 식히고, 떼를 지어 진흙 목욕을 하고, 등으로 나무둥치를 긁는 코끼리들의 모습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니. '봉사'라기보다 '호사'에 가깝다.

자원봉사자들이 코끼리의 목욕을 돕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코끼리의 목욕을 돕고 있다.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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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코끼리가 먹을 주먹밥을 만드는 모습
 늙은 코끼리가 먹을 주먹밥을 만드는 모습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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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자연공원은 동물들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집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동물들이 먹어 치우는 농작물은 하루에 4톤. 근처 농가에서 생산하는 건초, 옥수수, 신선한 과일을 소비하고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공동체를 유지한다. 코끼리를 다루는 '마훗'으로 버마 전쟁난민들을 고용하고, 그 가족들이 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정말 코끼리를 사랑한다면, 코끼리 등에 타거나 코끼리가 등장하는 공연을 보는 대신 코끼리 보호소를 방문해보자. 동물과의 '교감'은 단지 동물과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고통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나와 같은 '생명체'임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교감이고 동물사랑이다.




태그:#코끼리자연공원, #코끼리 , #야생동물보호소 , #태국여행 ,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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