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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사진을 좋아하는 선배와 같이 서울 정동길을 걷고왔습니다.

봄이 오면 걷고 싶었던 곳인데 더 기다리지 못하고 이날 다녀왔습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을 둘러 보고 광화문을 거쳐 덕수궁에 도착하니 오후 3시입니다.

고풍스런 성공회 건물을 둘러보고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습니다. 쌀쌀하던 날씨도 오후가 되니 포근해졌습니다. 덕수궁 정문에 있는 큰 북 옆에는 어느 외국인이 서울 시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선배와 나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조금 걷다가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 전망대로 올라 갔습니다. 전에 어느 신문에서 이 전망대에 오르면 덕수궁이 한눈에 보인다 하여 이날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전망대는 누구나 오를 수 있으며 전망대에는 카페가 있어 차와 간단한 쿠키, 케이크 등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저와 선배는 전망대에 오르는 순간 속으로 '야! 멋지다'라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여러 여건들에 대해 실망하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전망대를 모든 시민에게 공개하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망대에서 차도 마시며 한참을 쉬었습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선배와 같이 다시오기로 약속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에서 바라본 덕수궁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에서 바라본 덕수궁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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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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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정문
 덕수궁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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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에서 바라본 서울시 풍경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에서 바라본 서울시 풍경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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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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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의 외국인들
 정동길의 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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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는 1885년 10월 11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H.G.)에 의하여 정동 사저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창설자 아펜젤러는 1885년 4월 5일에 입국하여 그 해 8월 3일에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세워 한국의 근대교육을 창시하고, 또한 이를 보급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하였다.
아펜젤러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종교행사를 하였으나, 1887년 9월 전적으로 예배만을 볼 수 있는 교회용 건물을 구입해 이를 수리하고 교회이름을 베델예배당(Bethel Chapel)이라 하였다.
정동제일교회는 초창기부터 그 옆에 배재학당과 이화학당(梨花學堂)이 있어 학생들이 그 교회의 중요 회원이 되어 개화운동의 한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가 배재학당장까지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청년회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서재필(徐載弼)이 오랜 동안의 미국 망명생활로부터 귀국하여 배재학당에서 강의하면서 정동교회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를 조직하여 독립협회의 전위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협성회는 정동교회청년회의 노병선(盧炳善)·이승만(李承晩)·신흥우(申興雨) 등이 주도하였다
-백과사전 인용-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니 오래된 교회 건물이 보입니다.  그 앞에는 "항아리"라는 제목의 조각품이 있는데 난장이 모습의 조각상입니다. 외국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동제일교회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습니다.

정동제일교회를 보고 조금 더 걸으면 정동극장이 나옵니다. 정동극장의 모습만 보아도 무언가 문화인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여기서 조금 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 가면 중명전이 나옵니다. 오래된 건물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에는 아픈 우리의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중명전은 1901년 지어진 황실도서관으로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4년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면서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 황태자(순종)와 윤비(尹妃)와의 가례(嘉禮)가 여기에서 거행되었으며,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었던 비운(悲運)의 장소이기도 하다.
-백과사전 인용-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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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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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의 현장 중명전
 아픈 역사의 현장 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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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 심손 기념관
 이화여고 심손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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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의 고목나무
 정동길의 고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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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을 보고 이화여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화여고 정문으로 들어 가려는데 관리인이 출입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심손기념관 좀 잠시 볼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니 흔쾌히 "예, 들어가서 관람하십시오"라고 하십니다. 우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심손 기념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경향신문사가 보입니다. 거리의 가로수는 고목이 되어 보조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이 고목들은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보고 있었겠지요.

이문세님의 '광화문 연가'가 생각납니다.  이제 모두 세월을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 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오고 싶은 정동길입니다.


태그:#정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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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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