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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아들이 입대하는 날 싱숭생숭할 마음일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군 생활을 견디는 힘이 될까를 고민하다가 단 한마디만을 했습니다.
 
"호연지기를 키워라."

입영을 위해 집을 나서는 나흘 전, 아들과 함께.
 입영을 위해 집을 나서는 나흘 전, 아들과 함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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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한 상태에서도 짧은 이 한 마디쯤은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맹자가 수제자, 공손추(公孫丑)와 부동심(不動心)에 대한 대화중에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언급했습니다. 공손추는 맹자가 천하를 주유하는 유세(遊說)길을 파하고 저술 작업에 몰두할 때 최측근에 있었던 제자입니다. '맹자' 7편의 두 번째에 '공손추 상·하'로 구성됩니다.
 
공손추는 '호연지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되물었습니다. 맹자는 말로 정의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모자람이 없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라고나 할까. 이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고 곧아서 그것을 올바로 길러 상하게 하는 일이 없으면 광대무변한 천지를 꽉 채우는 원기(元氣)가 된다. 그 기운 됨이 의와 도를 함께 짝하게 되어 있다. 의와 도가 없으면 그 기운은 그대로 시들어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의를 쌓고 쌓아 생겨나는 것으로 하루아침에 의를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 조금이라도 양심에 개운치 못한 것이 있으면 그 기운은 곧 시들고 만다."

미국의 의형제 두 명과 한국의 산하를 자전거로 2,200km를 돌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아들. 마라도의 최남단 바위위에서...
 미국의 의형제 두 명과 한국의 산하를 자전거로 2,200km를 돌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아들. 마라도의 최남단 바위위에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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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연지기는 각 시대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으로 정의하곤 했습니다.
 
'至大(지대) 至剛(지강)한 氣(기)',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러울 바가 없는 도덕적 용기', '사물에서 해방되어 자유스럽고 유쾌한 마음' 등입니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 전재되는 것들은, 반듯이 도의(道義)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절대 서두르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니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상의 의리를 평소에 하늘에 부끄러울 것이 없도록 꾸준히 행하는 것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군대야말로 조국을 수호하는 대의를 위해 전우들과 함께 땀 흘리며 동행해야 하니 호연지기가 마땅히 바탕이 되어야 할 곳입니다.
 
#2
 
나는 아들의 군 생활 적응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태권도와 팔극권 수련으로 체력에 부족함이 없고 무예에 능하며, 축구를 하더라도 직접 슛을 쏘기보다 친구에게 어시스트하는 양보를 실천할 줄 알고, 모든 동물들조차도 사람처럼 대접하는 도타운 사랑의 자세를 알기 때문입니다.

노스다코타 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던 아들
 노스다코타 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던 아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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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담담하려고 해도 내가 35년 전 입대해서 훈련받았던 곳은 여전히 쳐다보기조차 싫어도 5일 전에 입대한 아들의 신교대는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요즘은 훈련병들의 생활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상세히 공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입대 장정들의 부모들이 궁금해할 내용들이 문답식으로 상세히 안내돼 있고, 훈련병들 매일의 훈련 내용과 식단까지 공개되고 있으며 각 기수별 편지함이 있어서 가족이나 친구가 편지를 남기면 매일 저녁 출력해서 해당 훈련병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또한 훈련병들의 부모들이 운영하는 카페도 있어서 부모들끼리 동병상련의 소식과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애절한 마음은 동일해서 신교대 카페에 아직 영대와 3월 8일에 함께 입대한 16-4기의 편지함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감사나눔'게시판에 메아리 없는 사랑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이 음~ 입소 나흘째-- 지금쯤 취침시간이겠구나. 열 맞추어 부모형제친구들 곁을 떠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오늘도 '백마신병교육대 카페' 100번도 더 드나들었어 ㅎㅎ 왜 ! 아들이 넘 보고 싶어서..."
"아들! 훈련소 입소 후 첫 주말이구나! 다음 주부터는 날씨가 풀린다니 안심이 된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보고 싶구나. 입소하는 날 사진도 한 장 못 찍고 입소식 한다고 줄 서라는 소리에 곧바로 분리되고 뒤에서 지켜보는데 많은 훈련병들 속에서 보이지도 않고 너무 애가 달아서 그저 눈물만 계속 나오더라."
"입대하던 날 군기가 팍 들어 긴장하고 있는 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리더라."
 
하루 전날 공지되는 훈련병식단에도 훈련병보다도 부모들이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3월 13일 훈련병식단입니다.|
아침 : 떡만두국. 오징어채무침. 배추김치
점심 : 오징어덮밥. 순두부양념장, 계란국. 배추김치
저녁 : 콩나물국밥. 버섯호박볶음. 생선묵맛살조림. 깍두기
매일매일 훈련병들 식단을 업로드 해드리겠습니다^^
급식은 정량배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 아래에도 어머니들의 다양한 모양의 사랑이 댓글로 붙습니다.
 
"엄마가 따라 하기 어려운 훌륭한 식단. 편식 습관이 개선될 듯싶습니다."
"울 아들, 만두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맛있게 잘 먹어^^ 항상 감사합니다~~ "
"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네요. 균형 잡힌 식단 대만족 합니다~~~^^"
"편식하는 울 아들 이번 기회에 싹~ 몸도 마음도 건강한 김OO 훈병, 화이팅! "
 
훈련병 부모카페에도 보모님의 또 다른 사랑의 토론이 담깁니다.
 
"아침 : 불고기버거
점심 : 게맛살볶음. 쇠고기육개장. 감자조림. 배추김치
저녁 : 돼기고기부추볶음. 버섯된장찌개. 무초절이. 배추김치
신병교육대대…. 오늘 메뉴이네요…….
매주 일주일에 한 번은 치킨을 시켜 먹을 정도로 치킨 좋아하는 아들이 얼마나 치킨이 먹고 싶을까, 생각에 눈물이 또 핑~"

"어제는 신병교육대 카페에 식단하고 훈련병 소식이 안 올라와서 내심 궁금했네요. 식단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이 궁금증의 어둠 속에 한줄기 빛처럼 반갑기만 합니다."
"모두들 염려하는 것보다 잘 지낼 거라는 위로에 저도 많이 편해졌습니다만 아들이 참 많이 보고 싶어서 주인도 없는 아들 카톡에 톡을 날려봅니다. 나중에라도 보면 엄마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주라고... 후에 제대하고 복학 후 사회생활하다가 장가라도 가면 이런 엄마 마음은 알지도 못하겠지만요."

아들을 군인으로 보낸지 4일째가 되는 날, 한 어머니께서 훈련병 부모 게시판에 올린 카톡메시지 사진. 주인 없는 아들의 카톡에 메아리 없는 사랑을 남기는 어머님의 심경에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수긍하게 됩니다.
 아들을 군인으로 보낸지 4일째가 되는 날, 한 어머니께서 훈련병 부모 게시판에 올린 카톡메시지 사진. 주인 없는 아들의 카톡에 메아리 없는 사랑을 남기는 어머님의 심경에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수긍하게 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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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2주차가 되길 기다려봅니다. 그리고... 입소할 때 입었던 옷들은 몇 주차에 집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장** 맘님이시지요... 오늘이나 월요일쯤 장정 소포 도착할 거예요. 낼부터 훈련 시작입니다. 함께 응원하며 홧팅입니다."
"아드님 입소 후 첫 주말 이네요. 아드님 잘할 것입니다. 아드님 무사 무탈 건강 충만한 가운데 수료하기를 기원합니다."

"신병교육대대 저희 아들도 있어요... 근데 메뉴는 어떻게 알죠? "
"신병교육 카페 들어가시면 좌측 중간 정도에 있습니다."

"편지는 어떻게 보내요? 제가 아직 초보라 아들이 인터넷으로 편지를 볼 수는 있는 건가요?"
"지금 카페 카테고리 맨 아래 보시면 신병교육대 카페가 있습니다. 그곳에 등업 신청하시고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 정도에 16-4기 공지함에 연명부가 게시되면 해당 소대 편지함에 인터넷편지를 작성하시면 당일 24시까지 쓰신 편지를 다음날 저녁 개인정비 시간에 훈련병에게 전달해줍니다. 그동안 말로 하지 못 했던 사랑의 편지, 많이 보내셔요^^
오늘이나 내일 정도에 아드님께 전화가 오니 모르는 번호라도 꼬옥 받으세요."

서로 주고받는 문답들을 보면 이미 어머님들은 군 조직과 부대의 일과를 훈련 장교나 훈련 조교만큼이나 훤히 꿰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 조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머님들이 이렇게 소상할 수 있는 것은 피에 대한 내리사랑의 위대함에 대한 입증이지 싶습니다.
 
저의 아내도 아들을 보내고 쿨 한척하지만 새벽 기상 후 출근하기 전 그 바쁜 시간에 처음 하는 일이 아들을 향한 108배입니다.

아내는 아침마다 아들의 훈련소를 향해 108배를 하고 출근을 합니다. 아들이 키운 창밖의 애완견 해모가 아침마다 108배를 받는 모습입니다.
 아내는 아침마다 아들의 훈련소를 향해 108배를 하고 출근을 합니다. 아들이 키운 창밖의 애완견 해모가 아침마다 108배를 받는 모습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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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매일 밤 하는 일 또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입니다. 지난 토요일(12일) 오후 불쑥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아버지, 영대입니다!"
 
아들이었습니다. 마치 100만 년 전에 헤어졌던 사람에게 연락이 닿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엄청 잘 지내고 있어요. 이러다 계속 군인으로 살고 싶을지 모르겠어요. 제 몫 잘하겠습니다. 훈련 끝나고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뚝!"
 
아들과의 3분 통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몽롱하기만 했습니다. 즉시 모두 궁금해할 우리 가족 카톡 방에 통화 내용을 올렸습니다.

아들이 미국에서 1년간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2011년 5워 29일, 온 가족이 함께 함께 모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직 한 번도 온 가족이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항상 누군가는 외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군 입대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미국에서 1년간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2011년 5워 29일, 온 가족이 함께 함께 모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직 한 번도 온 가족이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항상 누군가는 외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군 입대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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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영대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 훈련병들에게 3분간 부모와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군. 너무나 씩씩한 목소리였고, 또한 차분한 목소리였다. 요점은 이랬다.

"전혀 걱정하지마세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 중대원들을 책임지고 있거든요. 분대장훈련병으로 뽑혔는데 잘한다고 중대장 훈련병으로 지명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대장훈련병 역할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 체질이 군인인 것 같아요. 엄마에게도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셔서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정말 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중대장 훈련병은 이번 기수로 입소한 전 훈련병을 대표해서 보고와 구령을 하는 동료들의 리더이다."
 
가장 낮은 계급, 작대기 하나. 그 이등병의 자리가 이렇게 높아 보이고 위대한 위치라는 것을 아들의 입대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됩니다. 그 자리는 훈련장정들의 인내와 부모들의 애끓는 사랑의 합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입대, #훈련병, #신병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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