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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지난 2월 27일 오후 4시 20분 11시간 39분의 필리버스터를 종료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11시간 39분... 최장기록 세운 정청래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지난 2월 27일 오후 4시 20분 11시간 39분의 필리버스터를 종료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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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선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11일 정청래 의원 '컷오프' 사유를 공개했다. 정청래 의원의 막말에 대해 비토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컷오프 사유를 공개한 이유는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 소식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홍 위원장은 정 의원 말의 문제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트럼프'를 언급했다.

물론 홍창선 위원장도 정청래 의원의 말을 트럼프에 비유하는 것이 좀 부담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똑같지는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두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홍창선 위원장 '트럼프' 비유의 문제점

우선 11일 홍창선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 10일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했을 때 발언과 사실상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 때는 문제시된 정청래 의원의 막말에 대해서 '귀여운 수준'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실 홍창선 위원장의 이 말을 듣고 필자는 꽤 놀랐다.

왜냐하면 홍 위원장의 이 발언은 다른 것은 몰라도 설화와 관련해서는 정청래 의원의 과오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 일반 사람들의 통념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 의원의 막말 수준이 별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11일에는 트럼프 카드를 꺼내 들면서 정 의원 말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 것 같다. 사실상 전날의 말을 바꾼 것이다. 아마도 정청래 의원 컷오프 이후 이에 대한 저항이 매우 거세게 나타나자 본인도 당황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나름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 것이 바로 '트럼프 카드'인 것 같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의 말을 정청래와 비교하는 것은 전형적인 '마타도어'이며 '견강부회'라고 본다. 그리고 정청래 의원에 대한 심각한 인신공격이라고도 본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천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이 그와 같은 인식을 하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트럼프의 말은 '막말' 아니라 '위험한 수준'

토론회에서 두 손을 들어보이는 트럼프 <미국ABC-TV화면 촬영>
 토론회에서 두 손을 들어보이는 트럼프 <미국ABC-TV화면 촬영>
ⓒ ABC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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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위에서 '막말'과 '말'이란 표현을 따로 구분해서 사용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선 정청래 의원의 설화는 막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막말의 사전적 정의는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막말은 폭언과도 좀 다르다. 폭언이 주로 인신공격성 욕설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면 막말은 세속 세계에서는 흔히 사용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청래의 설화는 막말의 정의에 부합한다. 단적으로 작년에 문제시되었던 '공갈'과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다른 국회의원의 행동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갈'이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 지나쳤다. 정 의원의 설화는 대체로 그런 편이기 때문에 그의 잘못은 막말의 정의에 부합한다.

그러면 트럼프의 발언은 무엇이 문제일까? 트럼프의 문제는 단순히 말의 품격과 관련된 표현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트럼프의 발언이 비판받는 가장 핵심적 이유는 그가 '인종주의'와 '종교차별'처럼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사실상 금기시 하는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매우 위험한 포퓰리즘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민 완화 정책을 통해서 몰려드는 유색인종 이민자들과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그리고 인구 구성상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들의 발언권이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최초로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집권하는 등의 사회문화적 변화는 백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요인이 결합되면서 저학력, 저임금 백인노동자들의 불만이 강하게 누적되어 있는데, 트럼프는 이들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는 '멕시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담벼락을 세우겠다'고 하고 '이슬람 교도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겠다' 등의 매우 위험하고 황당한 주장을 한다. 지금 트럼프는 대공황 시기 독일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반 유태인 정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면서 집권한 히틀러와 비슷한 존재로 비교되고 있다.

정청래와 트럼프 발언 비교는 '어불성설'

언론이 '트럼프의 막말'이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트럼프의 표현이 좀 거칠고 상스럽다고 해서 문제시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심각한 오해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 내재한 구조적 한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할 정도로 매우 위험하면서도 심각한 퇴행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죽하면 미국 공화당 주류가 자기 당 경선에서 1위를 달리는 트럼프 후보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하겠는가?

그러므로 트럼프의 발언을 정청래의 말과 비교하는 것은 '마타도어'이자 '견강부회'라고 생각한다. 정청래의 막말은 운동권 특유의 과도한 정의감과 독선적 태도와 결합된 것으로, 흔히 말하는 '욱'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정청래의 막말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으로 '태도의 문제'이지, 가치관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트럼프의 말은 거칠고 예의 없고 세속적인 차원의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트럼프의 말은 매우 위험하고 공포스러울 정도다. 이런 트럼프의 말과 정청래의 말을 비교하는 것은 정청래에 대한 심각한 인격모독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청래 컷오프에 반발하는 지지 세력에 대한 모독이다.

오히려 막말은 홍창선 위원장이 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이런 배경에 대한 고려도 없이 자신들의 오류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분별한 대응을 하는 홍창선 위원장의 인식과 태도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홍 위원장은 11일 발언과 관련해서 정청래 의원을 비롯해서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신기 기자는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 사회 보수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보인 일반인 32명을 심층인터뷰하여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태그:#정청래, #트럼프, #홍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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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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