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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천 '컷오프', 그리고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의 '막말 파문'으로 정치권이 시끌벅적하다. 그 사이 정부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일 기세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밝혔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2월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2월 1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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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테러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예방과 대응 활동이 가능하도록 국회에서 '사이버테러방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정부의 속셈은 뭘까.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여세를 몰아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밀어붙이려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고 북한의 사이버 테러 공격 사례를 공개했다. 다음 날인 9일엔 청와대가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북한의 해킹 위험성을 경고했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나섰다.

사실 테러방지법은 은밀히 이뤄지던 국정원·검찰의 도·감청 행위에 '합법' 딱지를 붙여주는 데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해 11월과 1월 국정원과 검찰이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통신자료를 열람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은 문재인 전 대표 비서실 소속 당직자의 통신자료를 열람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장 의원의 경우 국정원 측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 내사과정에서 피 내사자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의 전화 가입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무차별 사찰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다. 과연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마당에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통과되면 어떤 일이 펼쳐질까?

구 동독 공산당의 비밀경찰 '국가안전보위성'

이 같은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1950년 독일민주공화국, 즉 옛 동독으로 옮기려 한다. 독일 분단 초기, 동독의 유일 지배정당 자리를 차지한 사회주의통일당(Sozialissche Einheitspartei, SED)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들은 동독 주민들을 '신인간'으로 개조하겠다고 호언하면서, 공산주의 영향권을 라인강 지역까지 확대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동독 주민들은 공산 정권에 반발해 서독으로 탈출했으니까 말이다. 이에 공산 정권은 베를린 장벽을 세워 인구 이탈을 막는 한편 주민들을 감시, 통제하기 시작했다. 비밀경찰인 '슈타지'는 이런 필요에 따라 창설됐다.

슈타지의 정식 명칭은 '국가안전보위성(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으로 1950년 출범했다. 동독 최고인민회의는 1950년 '국민경제보호'를 명분으로 '국가안전보위성법'을 만들고 내무성 산하의 '보안본부'를 개별부처로 독립시켰다. 그런데 슈타지 출범의 근거가 된 국가안전보위성법은 허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슈타지의 과제, 권한, 관할 범위, 통제 기능 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사실상 슈타지는 정권 친위대 역할을 수행했다.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기독민주당(CDU)과 관련이 깊은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2002년 <슈타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나?>라는 제목으로 낸 논문집을 살펴보자. 논문집 가운데 카르스텐 됨멜 아데나워 재단 함부르크 원장은 '사회주의통일당의 창과 방패'란 제목의 소논문에서 슈타지의 실체를 이렇게 기술한다.

"슈타지는 일반적인 첩보기관과는 달리 별도의 자체 구금시설, 수사기관을 두었다. 또한 별도의 집달리(집행관), 판사, 검사(총국 제9실: HA XIV)를 두었다. 슈타지의 주 임무는 사회주의통일당(SED)의 권력을 보호·유지하는 데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슈타지가 자신의 임무나 도달해야 할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는 일은 없었다. 슈타지는 사회주의통일당이 내리는 지시, 과제, 투쟁임무를 정확하게 수행해야만 했다. 슈타지는 사실상 사회주의통일 당과 정부 내 고위간부의 명령만을 따르면 되었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슈타지는 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는 '데탕트'라고 불린 동서 화합의 시대였고,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은 이런 흐름에 발맞춰 서독에 문호를 개방해야 했다. 슈타지는 이전과 같이 가혹한 방식으로 주민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더욱 은밀한 방식으로 진화하기에 이른다.

'사이버테러방지법' 강행이 우려되는 이유

슈타지는 주민들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정식 요원 외에 비공식 요원을 적극적으로 충원하고 활용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카르스텐 됨멜 원장의 소논문을 인용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정보에 의하면 1989년 현재 슈타지에는 91,015명의 공식 요원, 173,200명의 비공식 요원들이 종사하고 있었다. 동독 역사 40년을 통틀어 비공식 요원으로 슈타지에 종사한 사람은 60만 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슈타지는 그물망 같은 감시망을 구축했다. 요원 한 명당 감시 인원을 살펴보자. 슈타지 요원 1인당 감시인원은 180명으로, 구 소련 정보부 559명, 폴란드 1574명에 비해 월등히 높은 감시 수준이었다.

슈타지는 어떤 식으로 감시대상을 정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저 누군가를 '요주의 인물'이라고 지목만 하면 됐다. 됨멜 원장은 앞서 언급한 소논문에서 이렇게 풀이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기술된 슈타지의 작동 방식은 국정원이 특정인을 테러위험인물로 지목하고, 그에 대해 통신내역과 계좌정보를 추적, 감시할 수 있도록 규정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과 놀랄 만큼 닮은꼴이다.

"동독 주민은 슈타지에 의해'요주의 인물'로 지적되는 순간부터 '기관'에 이첩되어 슈타지가 동원하는 합법·비합법적 방식에 의해 직장생활과 사회생활, 그리고 사적이며, 은밀한 개인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소위 '털어놓아야 할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다시, 2016년 대한민국을 살펴보자.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사이버테러 관련 정보의 수집․분석․전파"의 권한을 담은 제2조, 그리고 단순 해킹, 바이러스 유포의 위험성만으로도 "국정원은 영장 없이 민간업체를 상시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제6조가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마당에 사이버테러방지법마저 법제화되면 국정원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감시망을 갖추게 된다.

구태여 국정원의 과거사를 들춰낼 필요는 없다. 국정원은 지난 2014년 유우성씨와 홍강철씨를 간첩 등 국가보안법 혐의를 씌워 기소했으나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국정원의 '의심'이 발단이었다. 결국 '무리한 기소'로 인한 '간첩 조작 사건'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국정원보다 더 우려스러운 곳은 청와대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많은 국가 기관이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모든 사람이나 사회단체, 이를테면 야당, 세월호 유가족 협의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주노총 등은 국정원의 '합법적인 감시망에 들어갈 위험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사실 이 같은 우려는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고자 진행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가운데 이미 나왔다. 당시 진선미 의원은 필리버스터에서 이렇게 외쳤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정청래 의원에 이어 테러방지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18번째 주자로 나섰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27일 정청래 의원에 이어 테러방지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18번째 주자로 나섰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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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늘 정권의 반대편에 선 사람과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 해당되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은 철저히 합리적이어야 하고 정보관리는 반드시 통제되어야 합니다. 비합리적인 의심과 통제되지 않은 정보는 권력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칼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현 정권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왜 테러방지법-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에 적극적으로 매달리는지 말이다. 혹시 과거 슈타지처럼 집권세력의 권력을 유지, 보호하려고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어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슈타지의 과거는 마치 '테러방지법의 미래'처럼 보인다. 독일 통일과 함께 사라져버린 슈타지의 망령이 2016년 대한민국에서 배회하는 것 같다.


태그:#슈타지, #국가안전보위성, #테러방지법, #사이버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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