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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 통과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무제한 연설)가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도 국회정문에서 시민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 법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의 통과에 반대하는 인터넷 서명은 단 3일만에 30만을 넘어서고 있다.

국정원강화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행렬

테러방지법은 테러방지라는 제사보다 국민사찰이라는 잿밥에 더 치중한 저인망식 국민사찰법이다. 국정원강화법이고 빅브라더법이다. 국정원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미국에서도 논란 끝에 폐기된 테러방지법보다 더 심각한 독소조항을 가득 담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북한과 IS이슬람 국가 등의 테러공격이 예상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해서 국정원이 추진하는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회토론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다고 설득력 없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김정은이 테러 역량을 준비'하라고 했다는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와 정부의 강압에 못이긴 국회의장이 국회 의사일정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것, 이 자체가 테러방지법이 몰고 올 세상의 한 단면이다. 국회 안팎에서의 필리버스터는 국정원과 정권의 농단에 정치가 사라진 상황에서 '뭐라도 하자'는 국민들과 야당 정치인들의 최소한의 저항행동이다.

국정원 발 국민사찰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로 시작되는 2016년 총선 국면, 시민사회의 화두는 '정치는 죽었다. 뭐라도 하자'다.

2016.2.23(화)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천부적격자 신고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2016.2.23(화)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천부적격자 신고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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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죽었다

돌아보면, 시민의 경제적인 삶, 나라 안팎의 평화,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 어떤 것도 위태롭지 않은 것이 없다. 대다수의 삶은 너무나도 고달프고 힘겨운데, 이 모든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무능하고 독선적인 정부는 도리어 국민을 탓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개혁' 담론을 보자. 아주 노골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건 노동자 탓이라는 거다. 정치적 토론은 없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토론은 더더욱 없다. 청와대는 테러방지법에 이어 노동관련 법도 직권상정하라고 국회의장과 여당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의 독선과 실정을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할 국회는 그 기능을 잃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논쟁이다. 국회가 만든 법을 정부가 어기고 시행령(대통령령)을 제멋대로 고쳐서 모법母法을 종잇조각으로 만들어도 국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최소한의 양식을 발휘해 이를 바로잡으려 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분노를 사 동료의원들에 의해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지 않았는가? 청와대의 압력에 못 이겨 국회의 수장이 국회 의사일정을 강제로 중단시킨 테러방지법 직권상정도 같은 사례에 속한다.

권력의 행동대장으로 전락한 집권여당을 견제해야 할 야당 역시 무능하고 균열된 채로 각자도생에 몰두해 왔었다. 그 중 최악은 선거구 획정이다. 새누리당과 구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지난 1월 24일 "현행대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를 253석으로 현재보다 7석 늘리고 대신 비례대표를 47석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1등 뽑기 승자독식' 방식으로 선출하는 지역구를 늘리고 정당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 수를 줄임으로써 선거제도 전반을 더욱더 승자독식구조로 개악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비율을 200명 대 100명으로 하고, 각 당에 비분하는 의석수를 정당득표율과 연동하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혁신적인 선거법 개혁안은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19대 총선에서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얻은 득표율은  79.3%(새누리42.8%+민주36.5%)로 총 300석 중 238석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두 정당은 41석이나 더 많은 279석(152석+127석)을 확보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7석 더 줄인 이번 합의는 이 편차를 더 키울 것이다. 만약 선관위의 개혁안이 적용되었다면 신생정당이나 소수정당은 현재보다 41석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국민들은 더 다양하고 참신한 대표를 확보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총선청년네트워크 출발! "우리는 변화에 투표할 것입니다"
 총선청년네트워크 출발! "우리는 변화에 투표할 것입니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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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의 약속, 기억하자 행동하자

시대는 변하는데 정치는 변하지 않고 후퇴하고 있다. 국회는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에게 닥친 고통, 국민들의 절박한 관심사와 상관없는 극소수 권력자들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공간 혹은 과두 정치의 거래처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필리버스터 하듯이 시민들 스스로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한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하자'는 것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모두의 고백이었고 다짐이었다. 기억은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약자들의 무기이고 행동은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열쇠다. 다가오는 총선이야말로 이런 약속들을 실천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선거 자체가 기억과 심판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지난 2월 17일 출범한 2016총선시민네트워크가 그것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현안을 위해 활동해온 전국의 33개 사회운동 연대기구들이 모였다.

청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청년들, 갑질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온 경제민주화 운동 단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노동운동단체들, 테러방지법에 반대해온 이들, 국정교과서와 위안부 합의에 항의해온 이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해온 가족과 시민들, 핵발전소에 반대해온 주민들과 환경운동 단체들, 용산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활동해온 가족과 시민들이 2016년 총선을 기억과 심판의 장으로 만들자고 다짐하고 있다. 이들 연대기구에 참여한 개별 단체들을 펼치면 1,000여개 이상이 참여한 셈이다.

낙천·낙선운동

총선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한 연대기구들은 각 기구의 이슈에 따라 각자의 형편에 맞는 활동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청년총선네트워크, 을들의 총선연대 등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함께 협력하는 식으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시너지를 높여갈 생각이다.

특히 각 분야별 연대기구들은 각자의 심판대상자 명단을 낙천대상자 명단 혹은 낙선대상자 명단의 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2016총선시민네트워크는 각 부문에서 공개한 리스트와 정보를 가급적 많은 유권자들이 알 수 있도록 온라인을 통해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처럼 공천단계에서는 소속 단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다양한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하되,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전체 차원에서도 이들 명단 중 최악의 인물들을 선별해 집중 공천반대 명단, 집중 낙선대상자 명단을 선정할 예정이다.

총선시민네트워크에서는 참가 단체들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모바일 기반의 후보자 정보공개 사이트(www.2016change.net)를 개설해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공천해서는 안 될 인사라고 생각하는 정치인과 그 근거를 제보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중 사실로 확인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총선넷이 선별하지 않고 그 일체를 각 당 공천심사위원회에 그대로 전달하여 공천에 참조하도록 할 것이다. 또한 지역별로 유권자 위원회를 만들어 지역의 공천반대자, 낙선대상자, 집중 낙선대상자를 유권자들이 직접 선정하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총선시민네트워크의 최종적인 집중 낙선대상자 선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유권자위원회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낙천낙선운동 외에 시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선정하여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약속하도록 하는 정책약속운동도 병행한다. 유권자와 사회단체들로부터 '내가 원하는 정책'을 제공받아 유권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중점정책과제를 선정하여 정당과 후보자 전원에게 발송, 약속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쟁점화해나갈 계획이다.

공안기구 선거개입 감시, 정책 약속운동도

더불어 총선시민네트워크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더불어 20대 총선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미치려는 국가기관과 공직자, 관변단체의 선거개입 행위를 시민들과 함께 감시하기 위한 '국가기관 선거개입 시민감시 캠페인'에 착수해서 불법선거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시민들이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행위를 발견할 경우, 지체 없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콜센터1390)로 신고하고, 또 선관위에 신고한 후에는 선거개입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위해 총선넷(ask2016change@gmail.com)으로도 제보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나아가 예비군 훈련 현장 등에 모니터 요원을 파견하는 현장행동, 공무원노조의 지역조직들과 연계된 전방위 감시활동도 병행할 예정이다.

이런 계획들에 반신반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라도 하자'는 정신만은 잃지 말자.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태호님은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입니다.



태그:#필리버스터 , #테러방지법, #총선, #낙천낙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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