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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중 두 개가 터키에 있다. 그중 한 개가 에게해 인근 에페소(Efes)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BC 580년에 건립된 후 수난을 당한 역사 현장을 쫓아 잠시 에페소를 머뭇거렸다.

이곳에는 신전뿐 아니라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원형극장과 켈수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신전, 헤라클레스 문을 장식했던 승리의 여신 나이키 등 로마시대 소아시아 수도의 영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에페소를 뒤로하고 에게해 휴양도시 아이빌릭으로 가는 길에 옛 그리스인의 집성촌인 쉬린제 마을에 들러 와인 한 잔으로 쌓인 여독을 풀었다.

검투사의 거친 호흡이 느껴졌다.
▲ 에페소의 원형극장 검투사의 거친 호흡이 느껴졌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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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 에페소의 고대유적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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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상표의 로고가 보이는지...
▲ 승리의 여신 나이키 나이키 상표의 로고가 보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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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간여행은 BC 3천 년 전부터 로마시대까지 역사의 숨결이 층층이 배어있는 다르다넬스 해협 인근 트로이(Troy)에서 멈췄다. 신화인지 역사인지 알쏭달쏭한 그리스와 트로이의 10년 전쟁.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의 불륜이 낳은 이 전쟁에서 트로이는 그리스의 목마 전술로 너무도 처참하게 무너졌다. 역사의 격동기에는 늘 영웅과 여인이 등장하듯 아킬레스와 헬레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나도 6일 동안 제국과 시대를 넘나들며 3500km를 달려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로 마르마라 해(海)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해협이다.

트로이 전쟁의 명성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 트로이 목마 트로이 전쟁의 명성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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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을 자리를 지켜온 고양이
▲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 3천년을 자리를 지켜온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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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여권의 문서가 소장됐던 에페소의 상징이다.
▲ 뒤로 보이는 켈수스 도서관 12000여권의 문서가 소장됐던 에페소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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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마지막 밤, 피에르 롯티 언덕을 올랐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롯티가 이 언덕에서 애플티를 마시며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글의 영감을 얻은 장소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나도 이스탄불의 야경을 배경삼아 그에 못지않은 영감이 필요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길이 서울의 남산과 흡사했다. 2백년 넘게 영업하는 찻집의 석축 가장자리 테라스에 앉아 나도 에플티를 마시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멀리 이스탄불의 시내 야경과 교각 가로등 불빛을 머금은 보스포루스 대교 주변의 수면이 빛을 발하며 너울거렸다.

쉬린제 마을에서
▲ 여행의 맛은 잠시 머무는 것 쉬린제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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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롯티 언덕에서
▲ 애플티와 이스탄불의 야경이 어울리는 곳 피에르 롯티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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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터키를 떠날 아쉬움에 다시 이스탄불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예레바탄 지하궁전을 찾았다. 말이 궁전이지 6세기 빈번한 외세 침입에 대비해 비상식수로 사용하기 위한 지하 저수지였다. 길이 140m, 폭 70m, 깊이 8m, 지붕을 떠받치는 336개 석주 아래 최대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시 적이 잠입해 독을 풀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수조에 키웠다는 팔뚝만한 물고기 떼가 지금도 무리지어 수조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저수지 기둥 받침 중에 옆으로 누운 메두사 머리도 그에 얽힌 신화 속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예레바탄 지하궁전
▲ 비상식수 대형 저수지 예레바탄 지하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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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기둥 받침
▲ 거꾸로 막히 메두사 머리 저수지 기둥 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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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은 550년 전통의 재래시장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20개의 출입구와 60여 개의 통로, 4천여 개의 상점들이 운집한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명물이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1462년 노예시장이었던 이곳은 비잔틴시대의 무역 중심지답게 수공예품, 의류, 보석류 등 터키의 특산품이 죄다 모여 있는 초대형 재래시장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모여든 인파 속에서 치열했던 터키 역사의 흔적이 배어있었다. 물건에 가격표는 있지만 대개 흥정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라니 진짜 재래시장다웠다.

그랜드 바쟈르 거리
▲ 초대형 재래시장 그랜드 바쟈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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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마지막 일정으로 터키의 베르사유로 불리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찾았다. 1856년 오스만제국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건립된 유럽식 궁전이다. 776개 촛대가 꽂혀있는 무게 4.5톤의 대형 샹들리에, 35년간 장인의 공이 깃든 대형 카펫, 궁전 내부를 치장하는데 금 14톤과 은 40톤이 들어갈 정도로 화려함과 웅장한 규모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궁전은 터키공화국 건립 후에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관광지로 개방하고 있다. 지금도 외국 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 종종 사용된다고 하는데 여기에도 시계의 바늘은 모두 오전 9시 5분에 멈춰있었다.

돌마바흐체 궁전
▲ 오전 9시 5분, 시간이 멈춰 있는 곳 돌마바흐체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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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케밥
▲ 한국에서는 김치와 불고기를 먹듯 고등어 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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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1938년 11월 10일, 이 곳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서거했다. 그리고 남겨진 국민들은 그가 떠난 시각을 기억하기 위해 시계 바늘을 오전 9시 5분에 고정시켜 놓은 것이다.

그 후 매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이 되면 전국 동시에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국민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추모의 묵념을 올린다. 심지어 달리던 차량이 멈추고 승객과 운전자까지 내려 그를 다시 기억 한다고 한다. 터키의 모든 화폐에는 동일 인물이 들어가 있다. 그도 바로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 대통령이다.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 한 명의 절대적 영향력이 사후에도 얼마만큼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을 발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터키에 대한 부러움을 넘어 시샘까지 났다.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 터키인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 대단했다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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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서 일탈만한 스릴은 없다. 6.25전쟁 때 파병으로 한국을 도운 나라 터키. 2002년 월드컵 3, 4위 전 때 대형 터키 국기로 응원의 목청을 높였던 우리나라. 하지만 터키와 한국이 형제의 나라라는 기원은 훨씬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의 선조 고구려와 동시대에 동맹관계였던 돌궐(투르크)이 위구르에 멸망해 서방으로 이동한 후에도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1500년 전부터 서로를 형제의 나라로 불러왔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건설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지금의 터키로 이어졌다. 형제의 나라, 터키로의 여행은 내 삶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 이스탄불 마라톤대회 준비가 한창이다 이스탄불 시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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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마라 해 선상에서
▲ 여행은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다 마르마라 해 선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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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을 떠나는 날, 시내는 다음 날 있을 이스탄불 마라톤대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도로 곳곳에 대형 아치와 대회 홍보물이 넘쳐났다. 다른 한 켠에는 내전을 피해 탈출한 시리아 난민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뤘다. "Save SyriA!" 피켓을 든 난민들은 축제 분위기가 고조된 거리를 배회하며 애절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스탄불의 극명한 두 낯의 잔상을 남긴 채 서울행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나를 만든다. 내가 바라보는 곳에 나의 미래가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나만의 가치를 찾아 나는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태그:#김경수, #사막, #오지, #여행,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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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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