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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제3세계의 정치 발전을 두고 "정치 발전은 정치적 질서와 안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치 제도화 수준이 정치 참여의 수준을 수용하지 못할 때, 정치적 불안이 증가하고 따라서 쿠데타의 위험 또한 커진다"라는 가설을 남겼다. 많은 정치학 연구자들은 한국을 비롯, 제3세계에서 일어난 쿠데타와 정치 불안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가설을 주로 이용하곤 했다.

이 가설을 정치 연구가 아니라 도리어 '대중의 정치 참여를 통제해야 한다'며 현실 정치에 이용하려는 이들 또한 존재한다. 헌팅턴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이들은 대개 '정치적 안정'을 이유로, '일종의 불안정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그 '불안정성'이란 주로 집회와 시위, 민주화 운동 등이다. 한국에서는 더 나아가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박정희와 유신 정권을 옹호하거나 그것에 향수를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이슈가 되고 있는 이른바 '테러방지법' 또한 같은 맥락이다. '테러'라는 일종의 불안정성 방지를 명목으로 국민을 사찰하며 국가정보원을 초헌법적인 기관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보인다. 물론 테러리즘 또한 정치적 불안정에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이건 애초부터 꽤 다른 층위의 문제다.

2014년 8월 30일 광화문 광장, 세월호 추모행진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하려던 세월호 추모행진을 경찰이 방패로 막고 있다.
▲ 2014년 8월 30일 광화문 광장, 세월호 추모행진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하려던 세월호 추모행진을 경찰이 방패로 막고 있다.
ⓒ 장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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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국자 법' 닮은 테러방지법의 '독소 조항'

테러방지법에서 말하는 '테러', '테러위험 인물', '대테러 활동'의 모호한 정의 때문에 독소조항이 지적됐다. 먼저 '테러'는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정부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이다.

'테러위험 인물'이란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 자금 모금·기부,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를 뜻한다.

또 '대테러 활동'은 "'테러 관련 정보를 수집, 테러위험 인물의 관리',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위험물질 등 테러수단의 안전관리, 인원·시설·장비의 보호, 국제행사의 안전확보, 테러 위협에의 대응 및 무력진압 등 테러예방과 대응에 대한 제반 활동"이다.

하지만 법안대로라면 테러와 테러위험 인물의 규정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다. 또한 '선전·선동'의 의미도 분명하지 않아 시위·집회를 테러로, 집회 참가자를 테러위험 인물로 규정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SNS나 1인 시위 등을 통한 정부 비판이 제약될 우려도 제기됐다. 그리고 '대테러 활동' 관련 '정보 수집' 부분은 국민에 대한 도청이나 인터넷 사찰 등을 사실상 합법화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조항에서는 '가능성'이나 '의심' 등 모호한 어구들을 통해 책임을 회피할 구석 또한 마련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대테러 행위'를 지휘하는 수반이 사실상 국정원장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장은 일상적 '대테러' 임무 외에도 금융감독, 통신감독 등의 임무 또한 갖추게 된다. 이에 국정원 및 국정원장의 임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구색 맞추기 식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을 두는데 단 1명뿐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부시 행정부가 제정한 이른바 '애국자 법(USA PATRIOT Act)'이 존재할 당시, 미국에서는 전화나 이메일, 전화 등에 대한 감시와 도청이 빈번히 이루어졌다. 당시 실제로 SNS 등에서 조금이라도 테러와 관련된 발언이 발견되면 해당 계정 사용자의 집으로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테러를 방지한다는 미명 하에 숱한 인권침해가 존재했던 셈이다(이후 2013년 스노든 전 CIA 직원의 폭로로 미국 국가안보국이 무차별 감청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연방 1심 법원은 애국자 법이 미국 수정헌법 4조를 위배한다고 판결했다).

테러방지법 또한 애국자 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정보기관과 사법기관에 가히 초헌법적인 힘을 부여하고 국민을 감시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정원이 불특정한 누군가를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 '선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다 들여다본다고 해도 찔릴 짓을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사실 이 반론 또한 굉장히 반(反) 민주적이다. 누군가(특히 국가권력이) 타인의 사생활을 빠짐없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권 침해다. 그런 데다 그것을 넘어 '테러방지'라는 명목으로 자의적인 잣대를 통한 처벌까지 가능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반 민주적이고 반 헌법적인 국가폭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적 불안정성'을 반드시 제거해야 할까?

새뮤얼 헌팅턴의 가설을 '정치 참여 통제'로 해석하는 것처럼, 정치적 안정을 위해 강제적으로 '불안정성'을 제거하고자 했던 사례들은 사실 좌우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히틀러도 그랬고, 스탈린도 그랬고, 루마니아의 챠우셰스쿠도 그랬다. 그리고 김일성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비슷한 이야길 했다. 화가 나서 회의 중에 울분을 토하시며 책상을 내려치신 어떤 정치 지도자도 비슷해 보인다.

정치적 불안정성은 꼭 제거되어야만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 체제이건 간에 불안정성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불안정성의 결과물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때로 왕의 목을 베고,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며 이루어졌다. 그런 만큼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한 정치체제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불안정성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런데 불안정성을 제거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국민 사생활을 감시한다는 말은 결국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 체제로 전환을 꾀한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즉, '불안정성'을 제거한다는 것은 그 말 자체로도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될 수 있다.

2015년 4월 18일 광화문, 세월호 추모행진 광화문 부근에서 경찰이 한 참가자의 목을 눌러 강제로 연행하고 있다.
▲ 2015년 4월 18일 광화문, 세월호 추모행진 광화문 부근에서 경찰이 한 참가자의 목을 눌러 강제로 연행하고 있다.
ⓒ 장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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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에는 정당성 없다'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꼴

보수적 정치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요제프 슘페터의 '최소 민주주의' 이론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의해 이루어진다. 슘페터는 급진적 세력과 혁명론을 오히려 '반 민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혁명까지 가지 않더라도, 시위보다는 선거를 통해서만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보수적인 정치이론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행보는 보수적인 슘페터의 이론으로 봐도 민주적이지 못하다. 선거의 핵심인 '자유'와 '공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2년 18대 대선 정국에서 일어난, 국정원과 관련된 일련의 논란을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국정원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사안을 무시하거나 "개인의 일탈"이라고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테러방지법은 국정원과 사법기관에 대한 논란들을 해소하기는커녕 초법적, 초헌법적 힘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사실 사법기관은 이전부터 최근까지 공공연하게 국민, 특히 정부에 반대하는 국민을 꾸준하게 감시해오고 탄압해왔다. 국정원은 더 말할 나위 없고 말이다. 예컨대 사진가 박정근씨는 트위터에서 북한 트위터 계정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윗들을 리트윗하고 "김정일 카섹스" 등의 글을 트위터에 작성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및 고무죄)으로 구속당했던 적이 있었다(이후 무죄로 석방되었다). 또한 여러 사람이 비슷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은 여러 참가자의 그 전날 행적과 CCTV를 조사하고, 이전 기록들과 SNS까지 공공연하게 사찰해가며 조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얼굴을 가리고 거리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이 허용한 시위에 참여한 자국민을 '테러리스트인 IS'와 동일선상에 놓는 발언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치르겠다는 얘기인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며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치르겠다는 얘기인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며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비판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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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에는 박 대통령이 "기막힌 현상"이라 발언하며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조차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회와 거리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에 대한 거대한 선동이자 위협이다. '최소 민주주의적 시각'으로 보더라도 현 정부는 자유와 공정, 그리고 스스로 정치적 정당성까지 걷어차 버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판국에서, 선거에서조차 더 이상 자유와 공정을 기대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숱한 부정과 감시, 선동과 탄압이 공공연한 비밀로 존재하니까 말이다. 보수적 이론조차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당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민주주의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의도와 행정 과정, 그리고 결과까지 모두 '이 정부에는 정당성이 없다'라고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꼴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정치학 용어 중에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가치인데, 그들에게는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공정한 체제'라는 신념과 더불어 그것을 지키려는 신념 또한 필요하다는 뜻이다. 만일 정치 지도자가 그런 신념이 부족하다면 그들에 의해 오히려 민주주의가 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행태와 테러방지법 관련 보수 진영 정치인들의 태도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정치적 리더십' 부재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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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