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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야, 나 죽고 싶어. 삶의 의미가 없어."

용혜인 동지가 4.11총선에 노동당의 비례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던 날, 늦은 저녁에 전화를 건 친구는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을 울었다. 친구와 난 대학 졸업 후의 미래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 나눈 적 없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더 나아질 건 없다는 사실을. 죽고 싶다는 친구의 말은 우리가 말없이, 그러나 불안하게 공유하고 있던 미래의 실체였다.

그 실체는 기성 정치인들이 일일 알바체험 따위로 상상해볼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 선 그들에겐 환한 얼굴로 음식을 나르다 앞치마만 벗으면 놓여날 수 있는 삶이었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매일이고 일상이었다. 너무 흔한 탓에 어디 가서 불평하기도 민망한 일상이었다. 기껏해야 백만 원 안팎인 월급, 10개월짜리 비정규직.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그만큼이었다.

사회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난 이제껏 '노력'하지 않은 내 자신만 탓해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같은 시간을 살아내는 청년들을 만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삶이 왜 이토록 불안하고 희미한지 고민하고 알아갔다. 문제의 본질과 해결방법은 조금씩 명징해졌다. 그리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한 개의 문장과 하나의 이름 덕분이었다. 바로 '가만히 있으라'와 용혜인이다.

함께 비를 맞았던 사람들

세월호 침묵 행진 제안자 용혜인 후보의 발언 모습
▲ '가만히 있으라' 행진 중 발언 중인 용혜인 세월호 침묵 행진 제안자 용혜인 후보의 발언 모습
ⓒ 청년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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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떠오른,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던 사회의 참혹한 민낯은 많은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나 역시 무언갈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무얼 해야 할진 막연했다. 그러다 SNS를 통해 '가만히 있으라'라는 추모 행진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청년들이 거리 곳곳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게시물과 행진 일정을 알리는 포스터엔 어김없이 용혜인이란 이름이 있었고 난 그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여러 장의 행진사진을 들여다보던 중 검은 옷을 입은, 연단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블럭 위에 올라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사진엔 어떤 설명도 없었지만 이 사람이 용혜인이겠구나 싶었다. 사진 속 인물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이대로도 괜찮은 것이냐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냐고. 그이의 강인한 의지와 거리의 시민들을 향한 짙은 호소는 사진 너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내게 들었던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함께하고 싶다.'

그 마음은 나를 이끌어 지난해 6월 10일에 있었던 가만히 있으라 행렬에 합류하게 했고, 난 그 날 눈앞에 있음에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보았다. 청와대 인근 지하철역 출구마다 경찰들이 빼곡이 서 있었고, 10여분동안 세 번의 불심검문을 당했다. 내가 행진 참가자가 아니라 판단한 한 경찰은 오늘 이곳에서 질 나쁜 사람들이 데모를 하기로 해서 그렇다며, 딴에는 미안하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가 내세운 선의, 행진 참가자와 비참가자들 사이에 긋는 선명한 무언가에 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무 대꾸도 못 한 채 황망히 그를 지나쳐 마구 걸었지만 어디로 가야할 진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수백 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인 행진 대오를 찾을 수 있었고, 난 그들과 함께 끊임없이 구호를 외쳤다. 내리는 빗속에서 우산 같은 건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 위에선 하얀 김 같은 것이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아는 이 하나 없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한 여성은 야간 근무를 하는 경찰들이 불쌍하다며 "경찰도 노동자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고, 그 유쾌함에 난 잠시나마 혼란스럽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밤이 깊어 사람들이 한 명씩 끌려갈 때 주위에 있던 이들은 내 팔과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고, 그것은 연행이 되어 유치장에 수감되던 순간까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마지막 수확

그날을 계기로 난 청년좌파란 단체에 가입해 사회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활동을 하면서 여러 농성장과 송전탑 공사 현장 등에 가기도 했고, 해고노동자 복직과 파업에 연대하기 위한 오체투지 행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과정 동안 한 번 더 연행이 되었고, 여러 통의 출석 요구서를 받았다. 작년 11월에 있었던 1차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후부터는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농사를 물려받아 농장을 꾸려나가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큰 압박이었고, 급기야는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체포가 되었다. 난 동네 주민들의 당혹스런 시선을 받으며 농장에서 기르던 가축들을 내버려둔 채 경찰서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다행히 기각되었고, 난 다시 농장의 가축들 곁으로 돌아왔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논에서 직접 수확한 햅쌀로 지은 밥이었다. 유치장에서의 식사를 말끔히 잊을 만큼 달았으나, 한 톨 한 톨 사라져가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빚을 갚지 못해 논이 경매로 넘어간 터라 이것이 마지막 수확이었기 때문이다.

설사 논이 팔리지 않았다고 해도 거기서 기대할 만한 것은 없었다. 쌀값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폭락했고, 이미 수매 창고에 가득 쌓여있는 것도 모자라 정부에서 밥상용 쌀을 더 수입하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농민의 삶을 내팽개친 나라에 저항하고자 수많은 이들이 민중총궐기 날 거리로 나왔고, 그곳에서 어떤 중년의 여성은 나락이 달린 몇 개의 벼줄기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 까끌한 벼줄기만큼 거칠어진 손으로 땅을 일궈오던 이들에게 정부는 세찬 물대포로 답했고, 밀농사를 짓던 백남기 농민은 그에 맞아 100일이 넘도록 의식이 없는 상태이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도 사과 한 마디 나오지 않는 정부에게 쌀 수입 중단이라니,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던 걸까.

가파른 절벽을 메우고

이 같은 시간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은 분명했다. 겨울이 가면 자연스레 봄이 오는 것처럼, 잘 견디면 우리의 절망도 언젠간 지나가리란 어설픈 기대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채워가고 싶었다. 앞으로만 가라고 재촉하는 수레바퀴에 짓눌린 일상을 가쁜 숨을 쉬며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만큼만 걸어도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삶은 누군가가 선심 쓰듯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껏 내가 20대 청년이자 여성농민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소외와 배제, 억압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이 말이다.

용혜인 동지는 출마선언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기에 오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같은 흔하고 의미 없는 수사로 '우리'를 지칭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고,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알고, 이 글을 읽는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혜인 동지의 '우리'안엔 내가 있었다. 죽고 싶다던 내 친구도 있었다. 뜬 눈으로 팽목항을 지키던 세월호 유가족들도 있었다. 푸른 밀을 키우던 백남기 농민도 있었다. 청년을 내세워 노동개혁을 부르짖는 박근혜 대통령은 몰랐어도, 용혜인 동지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절벽 끝에 있는 우리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절벽의 앞쪽으로만 나아가는 것, 우리를 억누른 수레바퀴를 계속해서 굴려나가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잘 안다. 난 용혜인 동지와 함께 가파른 절벽을 고르게 메우고 싶다.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만 걸어가도 모자람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것은 우리의 꺾이지 않는 바람이다. 그리고 '용혜인'이란 이름과 함께, 절벽 너머를 채워나가는 우리의 첫 삽 뜨기는 시작되었다.  


태그:#용혜인, #가만히있으라, #노동당, #세월호,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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