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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가 성적 장학금을 전면 폐지를 골자로 하는 장학금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고려대학교 포털사이트의 장학금 제도 개편 안내문에 따르면 올해부터 성적장학금이 폐지되고 장학금 유형이 자유 장학금, 정의 장학금, 진리 장학금으로 바뀐다. 이 중 논란이 되는 것은 면학장학금의 일종인 정의 장학금이다. 고려대학교는 정의 장학금을 통해 0~2분위 학생들에게는 등록금 100%를,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게는 교내 근로 장학을 연계해 생활비를 지원한다. 3분위 이상자에게는 신청받은 후 심사를 거쳐 지급한다.

출처 : 고려대학교 포탈사이트
▲ 고려대학교의 정의장학금 출처 : 고려대학교 포탈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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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논의의 차원은 면학장학금이 옳냐, 성적장학금이 옳냐에 맞추어져 있다. 즉, 한정된 예산으로 수여되는 장학금의 기준으로 소득분위와 학점 중 어떤 것이 더 옳은 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적장학금 폐지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경쟁사회에서 경쟁에 이긴 대가인 '인센티브'로서의 장학금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비친다. 그런데 이는 오해다. 고려대학교 학생인 필자 주변인들의 반응은 "면학장학금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성적장학금을 폐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적장학금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이 '이기적'이어서 혹은 '경쟁논리에 파묻혀서'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들의 불만은 "한국장학재단의 소득분위 산정결과가 학기마다 들쭉날쭉하고 그것이 실제 소득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는데, 이와 연계해서 면학장학금까지 준다면 '애매한 위치'에 있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박탈된다"라는 긴 문장에 가깝다. 바꿔서 말하자면 장학금을 받고 싶어 하는/받아야 하는 이들은, 저소득층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득분위 위주로 장학금이 개편되면서 발생할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학생들에 대한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에 불만을 표시하며 그 방안의 하나로 '성적장학금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애매한 소득분위의 문제로 장학금을 받지 못해 어려웠던 경험을 토로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성적장학금 폐지 관련 기사의 댓글 애매한 소득분위의 문제로 장학금을 받지 못해 어려웠던 경험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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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더 '정당'하냐를 생각한다면 면학장학금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등록금이 절대 저소득층에게만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있다. 소득분위 상의 '중산층'에게도 등록금은 현실적인 압박이다. 필자는 2012년에는 국가장학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당시 기준에 의하면 필자는 '소득 상위계층자'였다. 하지만 등록금을 낼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2014년이 되자 소득수준이 낮게 측정되었는지 250만 원 상당의 국가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갑작스레 소득분위가 낮아진 것에 대해 의아하기는 했지만,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올해도' 학자금 대출을 해야 했기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등록금을 냈다. 등록금은 현실적인 고통이며 대부분의 학생에게 장학금은 꼭 필요하다. 올해 한국장학재단에서 소득분위가 새로 산정되면서 기준을 두고 불만을 토로한 학생들이 필자의 카톡방에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 년 전 대출 받았던 학자금은 한 달에 한 번 씩 "한국장학재단대출 이자 납입일입니다"라는 문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정말 학생들을 위한 게 맞습니까?

개편과정 또한 문제였다. 염재호 총장은 취임 후 3무 정책(절대평가, 무감독 시험, 출석체크 자율화), 정정 기간 변경, 휴·복학 관련 변경 등 학사행정 개편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물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장학금 개편 역시 그러했다. 성적장학금을 없앤다는 장학제도 개편은 지난 12월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공지'되었을 뿐이다.

장학금은 학생들의 삶과 직접 관련된다. 따라서 이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방식으로 개편되든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학교 역시 이러한 반응을 예상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 개편 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묻기 위한 어떤 시도도 없음은물론이거니와 개편 이후 학생들의 불만을 수렴할 창구 역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개편과정의 일방적임에 대한 학생들의불만도 상당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학생들의 불만은 개편으로 인한 장학금 사각지대에 더 집중되어 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다른 방식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신지영 (고려대 학생처장) "소득분위에는 반영되지 못한 경제적인 문제들을 신청서나 면담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하면 교내장학금뿐만 아니라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많은 교외장학금이 있고 그걸 연계시켜 줄 거고요." (연합뉴스 <"전과목 A+ 받아도 장학금0원"…고려대 시끌> 2016.02.19)

필자가 숱하게 도전해왔으나 받지 못했던, 혹은 기준 충족이 너무 어려워 신청조차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교외장학금은 제외하고 교내장학금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소득분위가 3분위 이상으로 나온 학생들이 정의장학금을 받고자 한다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학교 측은 이것이 소득분위를 통한 장학금 지급이 야기할 수 있는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에 대해 "장학금을 받기 위해 가난을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비참하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불만에 대해 신지영 학생처장은 고대신문지면을 통해 "장학금 신청서는 누가 누가 가난한지를 겨루는 문서가 아니다. 누가 투자 가치가 있는 미래의 인재인지를 겨루는 문서다. 장학금이란 학생들의 꿈과 미래에 투자하는 투자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장학금 신청서에는 자신의 어려운 경제 형편에 대한 내용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경제 형편이 자신의 꿈과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자신의비전이 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신청서 작성 및 심사를 통해 사각지대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거기에는 사각지대 해결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금'이라는 명목이 하나 더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 본인들의 소득분위에 대한 '해명'과 함께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희망을 품고 도전하는 '투자할 만한' 학생임을 '어필'해야한다. "필요한 학생에게 돌아가는 장학금 비율을 높여 가계곤란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성적장학금 폐지 및 정의장학금 확충 명목과 엇나가는 부분이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신청서에 꿈과 희망을 적는다고 해서, 현실에서 꿈과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 고려대학교 성적장학금 폐지 관련 기사 댓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신청서에 꿈과 희망을 적는다고 해서, 현실에서 꿈과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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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장학금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은 신청서라는 종이의 하얀 막막함에 직면한다. 그래도 받아야 하니까, 1000자에 맞춰 몇 번이고, 고쳐 쓴다. 이 신청서를 평가하는 장학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이 신청서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신청서가 장학생 선정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그때는 학생이 '알아서' 할일이다. 학생들은 장학금 제도 개편에 대해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그 결과가 학생 개개인에게 피해로 돌아왔을 때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학교는 장학포탈을 정비하여 학생들이 장학금에 대해 쉽게 접근하고, 교외장학금과 학생들의 연계를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내부의 성원인 필자는, 그리고 필자의 지인들은 그러한 변화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한 것은 성적장학금이 폐지되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적장학금 폐지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꾸짖는' 목소리가 드높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생들은 면학장학금의 취지에 반대하지 않는다. 논점이 바뀔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장학금의 기준이 아니라, 장학금의 기준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현실. 누구에게나 등록금이 부담스럽다는 사실이다. 등록금이 높아지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학생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장학금 제도 개편 과정에도 학생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내야 하는 '돈'은 학생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태그:#성적장학금, #고려대학교, #면학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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