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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에 책상을 갖다놓고 공부중인 아이가 평화롭게 보였다.
▲ 공부중인 아이 집 밖에 책상을 갖다놓고 공부중인 아이가 평화롭게 보였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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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지역이라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쉽다.
▲ 생선을 손질중인 여인 바닷가 지역이라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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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만나 친해진 엘비라를 나는 주로 비리라고 불렀는데 그녀의 스페인 신분증의 사진은 흡사 안젤리나 졸리라고 해도 믿길 만큼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만난 비리는 사진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수술로 인해 25킬로가 쪘고 머리는 아주 짧았으며 영어로 조금 흥분해서 얘기할 때 보면 싸우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아에서 허름한 방을 나눠 쓰는 내내 숨길 수 없는 자신의 매력을 드러냈으며 허름한 방에서의 동지애가 싹텄다.

해변 옆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때는 즐거운 음악이 나온다고 즉석에서 일어나 춤을 추자고 하지 않나, '난 그냥 앉아있겠다'고 거절했더니 같이 안 춰준다고 잔소리에, 바다에서 비키니를 입은 그녀의 사진을 찍어 주고 '아, 비리가 보면 안 좋아하겠구나' 했는데 바다에 있으니 사진이 잘 받는 것 같다고 본인의 모습에 감탄을 했으며 (나라면 싫어했을 것이 분명한!)

수술 이후 찐 살이 인도 여행 중에 급격히 빠졌다며, 맘에 안 든다고 했다. 자기는 좀 천천히 빼고 싶다며. 보통의 한국인 여성의 사고로는 이해가 안가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그녀의 자신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위 사람들에게도 한껏 퍼트리는 재주가 있었다. 

만남이란 얼굴 아닌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 일이기도...

바닷가 지역이라 그런지 생선 퍼주는 인심이 나쁘지 않았다.
▲ 일용할 양식을 얻은 고양이 바닷가 지역이라 그런지 생선 퍼주는 인심이 나쁘지 않았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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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새벽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나왔다. 함피(hampi)로 가는 길이었다. 가장 이른 시간에 아침을 깨우는 것은 역시 기차역 근처의 식당들이리라. 그곳의 짜이 한 잔은 고아에서의 시간을 되새기며 정리하기에 좋았다. 고아에서는 비리와 함께였기에 편했고 훨씬 즐거웠다.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흥미로운 시선을 가늠할 만남도 있었다. 흥미로운 만남이란 단순한 새로운 얼굴을 보는 것만이 아닌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 일이다. 베나울림 비치에서 점심을 먹으며 비리와 얘기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있던 중년여성이 의자를 돌려 이쪽을 향해 말을 걸었었다.

"실례지만 들으려던 건 아닌데, 한국인이시라고요?"

그 장소만을 즐기는 것이 아닌, 전통 악기(돌락 등)등을 배우기도 하는 외국여행자들.
▲ 악기를 배우고 있는 여행자 그 장소만을 즐기는 것이 아닌, 전통 악기(돌락 등)등을 배우기도 하는 외국여행자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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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온 그녀는 딸이 한국 서울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며 서두를 풀었다. 서울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는 딸이 엄청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개인적인 필자의 생각들을 궁금해했다.

다행히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외국인 친구도 주위에 있었기에 좀 구체적인 정보를 말해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생활을 즐기며 편안해하니 걱정 마시라, 또한 그녀는 젊으니 경험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등의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는가 했는데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의자를 이쪽으로 돌린다.

"오 자꾸 방해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nuclear bomb(핵폭탄)에 대해선 어찌 생각해요?"

수심이 완만하고 낮은 편인 팔롤렘 해변
▲ 팔롤렘(palolem) 해변 수심이 완만하고 낮은 편인 팔롤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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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소는 참 안어울리는 듯 하지만, 고아의 해변들에서는 이내 익숙해진다.
▲ 바닷가의 소 바닷가의 소는 참 안어울리는 듯 하지만, 고아의 해변들에서는 이내 익숙해진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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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외국인들의 이 시선을 매우 이해한다. 벌써 십 년 전인데도 호주에 있을 당시, 북한과의 어떤 이슈가 있었는데 (연평도보다 약했던) 정말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질문세례를 받았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괜찮니? 다시 연락 안 해봐도 되겠니? 너희 나라 어떡하니... 등등.  그들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과도하게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 밖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밖에서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인구순위 2위의 인도에서 강간뉴스가 나오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나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편지들을 수거중인 직원
▲ 우체통 편지들을 수거중인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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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부인에게 그런 관점을 얘기하고 밖에서 보는 한국은 위험할 수 있으리란 걸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우린 (적어도 필자는) 정치적으로 컨트롤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대화 도중 또 건너편에 앉은 중년 여성이 말을 거들며, 자신도 남한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꽤 발전한 나라인 것 같았다며 화제를 거들었다.

한국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은 나름 그 런던에서 온 딸을 걱정하는 여인에게 작은 위안이 된 모양이었다. 여인은 곧 남편의 부름으로 대화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벽에 붙은 흑백의 공개수배 전단지
▲ 수배범 전단지 벽에 붙은 흑백의 공개수배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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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었던 부부의 대화 "여보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중년부인의 언행에는 이목을 끌 만한 것이 있었는데, 무언가를 권유하는 남편에 대한 그녀의 간단한 대답이 그러했다.

"No honey, but thank you" ("아니요 여보, 하지만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신선했다. 매일 보는 지겨운 얼굴일 수도 있는 상대에게 하는 '고맙다' '미안하다' '실례하다' 등의 기본적인 표현이.

고아 주의 안주나 해변
▲ 안주나 해변 고아 주의 안주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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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대화를 들으니 상대에 대한 존중이 말에 자연스럽게 배어있었다. 생각을 해보니 한국에선 가까운 관계일수록 고맙다 미안하다 실례한다 등의 기본적인 표현을 한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것이, 이는 영국인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때로는 일관적인 정중함과 친절함에 속을 느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의 언어에 배어있는 상대를 향한 존중은 기꺼이 배워야 할 것이라 본다. 가장 힘든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니.

본인 소유의 버팔로를 바다에 데리고 와 목욕을 즐기게 해주는 청년.
▲ 버팔로를 목욕시키는 청년 본인 소유의 버팔로를 바다에 데리고 와 목욕을 즐기게 해주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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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함피로 가는 기차에서 프랑스에서 온 노년의 커플을 만났다. 사만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부인의 머리는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하얗게 세었음에도 감각적인 끈 머리띠를 소화하고 있었다. 멋져 보였다. 더구나 각자 작은 캐리어 하나씩만을 들고 부부가 장기간 인도 여행을 하고 있다니, 그들 내면의 젊음이 느껴졌다. 영어가 서툰 비리를 비롯해 이 커플과 대화를 하며 蝌蚪時事 (과두시사, 올챙이 적 일이라는 뜻)라는 말이 생각난다. 

피지를 여행할 당시였는데 당시 같이 여행하던 동생과 나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냉혈한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에 자유롭지 못했기에 그들이 말하는 것에 자주 되물어야 했고 처음에는 친절하게 다시 말해주다가도 어느새 대화가 끊길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좌절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기억이 불과 얼마 전인 듯한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이제는 비리와 이 프랑스 여행자들과 대화를 하며, 그 당시의 답답함을 느꼈을 상대를 이해하고 있다. 그랬던 시작이 있었기에 타 언어를 통해 얻는 배움이 크다. 단순히 말이 통하는 것에서 시작해 좀 더 폭넓은 사고를 공유받기도 하고 언어에 배어있는 문화를 발견하기도 한다. 시작의 답답함보다는 발견의 기쁨이 크다.  

벼룩시장을 돌며 직물을 파는 노인
▲ 장돌뱅이 벼룩시장을 돌며 직물을 파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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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 및 외국인들의 숍으로 구성되어 있는 안주나 플리마켓
▲ 안주나 벼룩시장 현지인들 및 외국인들의 숍으로 구성되어 있는 안주나 플리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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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12월부터 2014년 2월에 걸친 인도의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인도여행, #고아 주, #안주나벼룩시장, #팔롤렘 해변,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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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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