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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7시 전남 여수시 학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조호진(56)의 2번째 시집 ‘소년원의 봄’ 북콘서트에선 시인의 모습
 26일 오후 7시 전남 여수시 학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조호진(56)의 2번째 시집 ‘소년원의 봄’ 북콘서트에선 시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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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7시 전남 여수시 학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조호진(56)의 2번째 시집 '소년원의 봄' 북콘서트가 열렸다.

그에게 여수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처음 글을 쓴 것도 지역 정보지인 교차로 신문이었고, 그 이후 본격적으로 <오마이뉴스>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지난해 7∼11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인 다음의 '스토리 펀딩'에 총 18회 연재한 '소년의 눈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에 발간된 <소년원의 봄>은 2009년에 출간된 <우린 식구다> 이은 두 번째 시집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 서울에서 여수로!

광주전남 민주언론 신선호 공동대표가 소년의 봄 북콘서트에서 ‘담장꽃’을 낭송하고 있다.
 광주전남 민주언론 신선호 공동대표가 소년의 봄 북콘서트에서 ‘담장꽃’을 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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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여수는 어떤 곳일까? 모진 가난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엄마 찾아 삼만리'의 땅이 바로 여수였다. 하지만 더 큰 상처를 받은 연민의 땅이기도 하다. 20여 년 전 결혼에 실패해 두 아이를 데리고 여수를 떠났다. 지금은 두 아들이 장성했다. 이런 그를 도와준 여수 시민단체는 그의 오랜 동지이자 벗이다. 이날 그가 준비한 '여수 벗들에게 바치는 발라드'에는 그가 살아온 과정과 그의 속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양천구 오목교 일대에 있던 판자촌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그가 아주 어릴 때 헤어졌다. 그가 여수에 첫 인연을 맺은 건 1971년.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엄마는 부산 범일동 여관에서 장사밑천을 마련해 여수로 왔다. 돈을 벌기 위해 휘파리 골목에서 술집을 차렸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부터 홍등가로 유명해 밑바닥 인생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휘파리 골목에서 자리를 잡은 어머니는 여름 방학 때 자식을 불렀다.

그는 비둘기호를 탔다. 장장 12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한 전라선 종착역 여수. 고등학교는 여수공고 야간을 다녔다. 졸업 후 서울 동대문과 구로공단 탈수공 노동자로 일하면서 투쟁의 깃발을 들었지만 실패하고 끝내 전라선 입석열차를 타고 다시 여수로 돌아와야 했다.

제2의 인생인 결혼에도 실패했다. 아이 엄마가 달아나고 집이 없어지면서 오갈 데 없던 그는 문수동 영구임대 주공아파트에서 불법 입주자로 숨어 살아야 했다. 발각되면 강제 퇴거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는 아파트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의 얼굴은 자주 멍들어 있었다. 술주정뱅이 아빠는 정부가 지급한 기초생활 수급비를 술값으로 사용했다. 학교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하면 소년은 용의자 1순위였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소년은 돈과 신발, 그리고 빵을 훔쳤다. 학교와 교회도 그를 외면했다. 자비와 용서를 얻지 못해 끝내 소년원에 보내졌다.

"소년은 빵을 훔치다 붙잡힌 빵을 얻는 것 보다 훔치는 것이 더 쉬웠다고 진술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소년의 아픔을 외면하는 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길 잃은 양을 돌보지 않는 교회가 도대체 무슨 선교를 말합니까? 사람도 나눔도 없는 승자독식의 이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시집 <소년의 봄>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시인은 3년 전 어느 봄날 서울 성동구치소 접견실에서 한 소년을 면회했다. 그는 소년의 눈에서 자신의 연년생 형을 봤다. '한국 아빠'와 '러시아 엄마'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엄마의 가출로 '총명' 대신 '원망'이 가득한 소년은 유년시절 내내 왕따에 시달렸다. 친구들은 소년을 '소련놈'이라고 놀렸다. 가출도 했고 노숙 생활을 하다가 술을 배웠다. 세상을 향한 반항심이 컸던 탓일까. 우울증에 시달리던 소년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불을 지르다 구속됐다.

이날 김정명 목사, 여수장애인 종합복지관 천중근 관장 여수 시민협 이현종 대표를 비롯해 그를 응원하는 시민 200여 명이 참가했다. 북콘서트에서 그의 인기가 확인됐다. 청소년 기금모금을 위해 정가보다 2천 원 올려 1만 원에 팔았으나 시집이 동이 났다. 완판된 것.

사회를 맡은 여수YMCA 이상훈 총장은 "오늘 그의 정신적 고향 여수에서 하는 콘서트는 형식도 내용도 조촐하게 진행하려 한다"면서 "이 자리에서 그를 알고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시를 나눠 읽고,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려고 여수의 형제' 조호진 시인이 자리에 섰다"라고 소개했다.

축사에 나선 김정명 전 은현교회 목사는 "조호진 시인이 여수에서 추운 바람에 벌벌 떨다가, 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가정이 회복됐다. 이번 시집이 두 번째다"면서 '아이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이다'라는 조 시인의 글처럼 그가 어린 시절 아픔을 생각하며 상처를 받은 아이들을 돕는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격려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어린 목숨 죽이는 이따위 조국, 조국 아니다

열린교회 정한수 목사가 낭송한 ‘당부’는 심금을 울렸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는데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열린교회 정한수 목사가 낭송한 ‘당부’는 심금을 울렸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는데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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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도 이어졌다. 광주전남 민주언론 신선호 공동대표는 '담장꽃'을 낭송했다. 그는 "어떤 시로 조 시인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담장꽃을 택했다"면서 "시인은 시집에서 봄과 희망을 노래하며, 담장 안의 꽃을 보며 연민이나 안타까움보다는 사랑을 표현하고 기대를 끝내 놓지 않는다"라며 "우리를 짓밟은 그 세상에 꽃을 피우러 가자고 강조한 꽃들의 울부짖음에 필이 꽂혔다"라고 말했다.

초청가수 이지상 가수의 노래가 이어졌다. 그는 "조호진 시인은 사람이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지는 낙엽에 물어보라는 안도현의 말을 빌리자면 조 시인은 낙엽과 같은 사람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청중들은 그의 반주에 맞춰 그가 작곡한 '아줌마 삼겹살에 소주 한잔 주시오'를 따라 불렀다.

이번 시집의 주인공은 바로 소년이다. 이날 북콘서트에 많은 청소년이 자리를 지켰다. 방과 후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참가한 문수중 1학년 이수아 친구는 그의 시 '움막1'을 낭송했다. 그는 "이 시를 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흘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고 싶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열린교회 정한수 목사가 낭송한 '당부'는 심금을 울렸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거다"면서 "그 사건으로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울지 않았던 통곡을 한 경험이 있는데 많은 국민도 같은 생각일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시는 조 시인이 아픈 가슴을 안고 찢어지는 심정으로 쓴 시가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세월호 사태는 아직까지 원인과 주범이 누구인지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의 시낭독이 끝나자 청중들의 눈물이 치솟았다.

'당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은
이따위 조국이 아니라
내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다.
어린 목숨들이 죽이는
이따위 조국은 조국이 아니다.
우리들의 자식 빼앗아 가는
이따위 조국은 조국 아니다.

(중략)

어린 목숨들을
침몰시킨 대한민국
이따위 조국은 놔두고
자식, 목숨 걸고 지켜라.

치유, 돌봄, 자립... '스마일 어게인' 생긴다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최승주 대표는 소년들의 희망공장 ‘스마일 어게인(SMILE AGAIN)’사회적 협동조합을 소개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내년 3월 경기도 부천에서 설립된다.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최승주 대표는 소년들의 희망공장 ‘스마일 어게인(SMILE AGAIN)’사회적 협동조합을 소개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내년 3월 경기도 부천에서 설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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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최승주 대표는 소년들의 희망공장 '스마일 어게인(SMILE AGAIN)'사회적 협동조합을 소개했다. 협동조합은 내년 3월 경기도 부천에서 설립된다.

조 시인의 아내 최승주 대표는 "위기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은 조 시인이 만들었는데 하다 보니 제가 아바타 수준으로 활동 대장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 김정명 목사님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최 대표는 "위기에 놓인 학교 밖 청소년은 춘천시(인구 27만 명) 인구보다 더 많은 28만 명으로 매년 6만~7만 명이 발생하는데, 한 명당 우리 사회가 치르는 비용이 645만 원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면서 "이들을 방치하면 사회적 비용이 26조 3508억 원이 든다. 자립이 필요한 이들의 사회적 자폐를 치유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중간기착지인 자립공간을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소년희망공장은 치유, 돌봄, 자립이 핵심이다. 스마일 어게인은 사회적 자폐를 치유하고 지속적 돌봄과 대안가족을 형성한다. 또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자립훈련 및 자립기반을 지원한다. 학교 밖 청소년 대안사업으로, 설립기금은 약 4억 원이다. 시설과 기숙사가 갖춰진다. 설립기금은 뉴스펀딩 기금 외 개인과 단체 및 기관의 사회공헌기업 후원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곳에선 특화되고 전문화된 제빵을 만들어 기업 및 기관에 온라인 판매를 할 예정이다. 모든 수익금은 보호청소년의 자립과 교육에 지원된다.

26일 오후 7시 전남 여수시 학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조호진(56)의 2번째 시집 ‘소년원의 봄’ 북콘서트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6일 오후 7시 전남 여수시 학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조호진(56)의 2번째 시집 ‘소년원의 봄’ 북콘서트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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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시인은 "여수 올 때마다 민폐를 많이 끼쳤고, 큰 환대를 받았다"면서 "사실 세상에서 빚을 갚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돈 버는 일은 많이 못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살면서 가난하다는 말은 사람을 많이 위축시킨다"라며 "돈과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그렇게 당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라며 "어쨌든 약자, 밟힌 자, 억울한 자, 슬픈 자에게 간다"면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자신이 없어 여러분에게 신세 갚을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내가 살아온 얘기로 오늘 이 자리를 함께 나누자"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호진, #소년의 봄, #희망공장, #스마일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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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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