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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제정특별위원회'는 4.16 인권선언 운동, 더 나아가 세월호 운동에서 참사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드러나고 함께 담길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한 차례 워크숍을 진행했고, 이때 제출된 고민들을 글로 담아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 기자 말

1. 작가기록단이 '참사 속 10대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 이유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2014년 7월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2014년 7월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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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청소년들이 깊이 관련된 사건이다. 희생자와 그의 형제자매, 생존학생, 수학여행에 가지 않은 단원고 3학년 학생들, 친구를 잃은 10대들, 살아온 친구를 지켜온 10대들, 이 사건을 지켜봤던 대한민국의 10대들.

2014년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그동안 이들의 시간과 기억은 주로 누구에 의해 말해졌을까? 이런 질문과 함께 416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아래 작가기록단)은 '10대와 세월호'에 대한 기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겉표지
 <금요일엔 돌아오렴> 겉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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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기록단은 <금요일엔 돌아오렴> 기록 작업을 하면서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 이야기를 부모나 몇몇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이 형제자매를 잃은 고통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걱정으로, 학교에서, 일터에서, 이웃에서 주위 사람들의 태도로 상처를 받고 있으며, 그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을 보살피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5년 상반기 '416 연대'가 주최한 인권실태조사를 통해 생존학생들이 현재 어떤 고통에 직면해 있는지가 조금 알려졌다.

생존학생들 중에는 희생된 친구의 부모님들과 계속 만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희생 학생들의 생일모임이나 친구들이 있는 추모공원에 계속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도하거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가 세상의 관심에서 잊히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또 그 누구보다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10대 피해자들은 '너 단원고 다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야?'라는 물음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야 할 현실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은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상처를 받을 때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평생 안고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416 세월호 참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니까", 기록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 일인데 나중에 커서 후회할 것 같아서" 들을 준비를 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부모님을 이제 네가 챙겨야 하니 너희가 힘들어하면 안 된다", "부모님 힘들어하시니까 너희가 울어선 안 된다"라는 얘기를 '어른들'에게 들으며 부모에 대한 돌봄을 자신의 역할로 감당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시간들을 보면 청소년들을 돌봄을 받는 존재로만 보는 사회적 시선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참사를 겪은 10대 당사자들은 세월호 참사와 이후의 시간들 속에서 '알고 싶다'와 '알고 싶지 않다' 사이에 놓여 있곤 한다. 하지만 알고 싶어도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을 듣지 못하거나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0대 피해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랑 관련 있는 건데 저희랑 같이 얘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은 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무엇을 알려주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10대 피해자들은 "부모님뿐 아니라 우리도 아프고 고통스러운데..."라고 말한다. 10대라서 덜 아플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부모의 아픔에 가려져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못하거나 드러낼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10대 피해자들은 친구의 죽음, 가족의 죽음을 넘어, 국가의 무책임, 사회의 부조리함, 비참함, 진실의 은폐 등을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겪고 있다.

이들은 이미 삶에 대한 다른 선택과 해석,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10대 피해자들은 참사를 만들어낸 이 체제에서 살아왔던 기존의 삶의 방식을 의심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과 의미를 다시 만들려는 생각과 결정을 하기도 한다.

3. 10대라서 말하기 어려웠던 순간들 

아이들의 교실은 작년 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췄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가족들과 시민들의 관심으로 교실에는 노란 꽃이 지지 않고 있다,
 아이들의 교실은 작년 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췄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가족들과 시민들의 관심으로 교실에는 노란 꽃이 지지 않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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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10대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말을 할 수 없거나 말하기 어렵게 된 경험의 순간들을 보았다. 10대 피해자들은 구조과정과 세월호 참사 이후 전 과정에서 청소년을 대하는 사회의 폭력적 태도를 언론, 정부, 학교, SNS 등 여러 사회적 공간에서 경험했다.

비청소년(어른)에 의해 10대 피해자들은 대변, 해석, 진단, 치유되는 존재로 위치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주체적인 '사회적 화자'이자 증언자가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10대 피해자들 중에는 부모가 원하지 않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부모의 반대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부담을 안은 채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10대 피해자는 "미성년자여서 큰 권한이 없으니까 부모님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상황은 많은 10대들이 한국사회에서 이들의 사회적 위치로 인해 겪는 문제다.

기록은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과정이다. 그것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 하나의 의미를, 툭 던지는 짧은 문장의 행간을, 표정과 숨소리의 미세한 변화를 읽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만큼이나 '무엇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것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질문을 찾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10대 피해자들의 경우, 주로 비청소년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기록되었을 뿐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기록되지는 않은 편이다.

비청소년의 목적에 따라 구성된 질문에 답하는 경우여서 발화자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한 느낌을 받지는 못한 듯하다. 짧은 일시적 만남 속에서 질문에 갇힌 답을 하는 과정이었던 발화의 경험은 자신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미화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있긴 했는데' 정도로 남아 있기도 하다.

희생자 형제자매와 생존학생들은 자신의 부모나 다른 유가족 또는 생존학생 서로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묻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까 봐 조심스러워서, 내가 울게 될까 봐,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이 힘들어 보여서, 만나지 못해서 등 차마 묻지 못하는 질문들이 여러 얽힌 관계들 속에 놓여 있다.

10대 피해자들은 또래 친구들, 선후배들, 주위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피해 경험이 없어서, 상처받거나 반복되는 얘기에 피로감을 느낄까 봐, 부담스러워 할까 봐 등 말을 하고 싶고 묻고 싶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4. 닫힌 귀를 열기 위해 

피해자의 고통이 현재진행형이고 피해자들의 요구가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말의 무력감을 느끼고, 기억을 재생하는 것의 아픔을 잠시 내려놓고 싶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10대라는 위치로 인해 겪은 경험들과 복잡한 관계들이 무엇을 말할 수 있거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10대 피해자들은 이런 모든 상황을 다르거나 같게 경험하면서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자신과 가족과 주변을 서로 격려하고 일으켜 세우면서 지내온 역동적인 삶과 성장의 시간을 겪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을 온전히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기록 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기록은 참사를 겪는 10대들과 이 사회의 청소년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10대 피해자들이 말하기, 곧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이 사회와 시민들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들이 또다시 폭력적인 경험을, 무력감을, 절망감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적 말하기가 좌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 어떻게 만나느냐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10대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10대 피해자들은 무엇을 겪고 있는지, 이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제대로 듣기 위해 '어른들'은 준비가 되어 있거나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는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닫힌 '어른들'의 귀를 뚫어주기 위한 공부의 시간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인 이호연 인권활동가는 416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청소년, #416, #인권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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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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