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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6일이었다. 뜬금없는 뉴스를 봤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의 분노가 담긴 인터뷰 기사였다. 이날 윤 대표는 "한국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검토한다는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의 보도가 사실이면 국내 여론이 심하게 갈라질 것"이라며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론 분열 수준이다"라고 격앙되어 있었다.

갑자기 왜 소녀상 이전 문제가 이슈가 되었는지 의아했다.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에서 나오지도 않는 이야기가 왜 일본 신문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정부를 믿기로 했다. 일본이 '또다시 망언을 하는구나'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틀 후인 12월 28일, 대한민국 방송과 신문이 쏟아낸 '긴급 속보'를 접한후 나는 그야말로 어리둥절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전격적인 합의를 전하는 기자회견이었다. 뜬금없다 싶었던 며칠 전,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의 분노가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비로소 분명하게 알게된 것이다.

한일 정부가 발표한 '군 위안부 합의' 요약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굴욕적인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 주위에서 한일협상 반대와 소녀상 이전 반대 밤샘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 '소녀상을 지켜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굴욕적인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종로구 일본대사관앞 소녀상(평화비) 주위에서 한일협상 반대와 소녀상 이전 반대 밤샘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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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 양국의 외교부 국장급이 밀도있게 논의하여 합의된 내용"이라며 내놓은 '입장 발표문'을 접한 후 나는 말 그대로 경악했다. 이러한 일본과 한국 정부가 각각 발표한 입장 발표문을 정리하면 주요 내용은 이렇다.

먼저 일본측 입장 발표문의 핵심 내용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당시 군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에 상처가 입었다는 관점하에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며, 이에 따라 아베 내각총리대신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만들기 위해 일본 정부는 일본 정부의 국가 예산을 일괄 거출한다고 발표했다. 입장 발표문에는 그 액수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추후 별도의 발표를 통해 10억 엔(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97억 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입장 발표문과 함께 한국 정부도 입장 발표문을 냈다. 그 내용을 보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두 번째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 정부는 공통의 사항으로 매우 중요한 두 가지를 또 합의, 발표한다. 첫째는 이번 양국의 입장 발표를 통해 이 결정이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하고, 두 번째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1945년 해방 이후 한일 양국 사이에서의 반인륜 범죄인 '군 위안부' 문제가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졌다며 양국은 자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합의 결과 수용을 촉구했다.

하지만 한일 양국의 정부 당국자가 기대한 축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일본 국민은 그들대로 불만을 제기했다. 모든 일본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왜 한국 정부에 사과하고 국가 예산으로 10억 엔을 지원하냐"는 불만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일본이 가진 '역사적 표리부동'은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반드시 짚어야 할 심각한 일은, 바로 우리 정부가 취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의 태도와 인식이다.

한일 양국의 합의 타결, 무엇이 문제인가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지켜보는 시민들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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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뀐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적 분노가 일고 있는 한일 양국 사이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타결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아베 정권하에서 얻은 최상의 합의'라며 다시 한번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자화자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에도 자부심은 없었다.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합의 사항'이라고 국민에게 다그치고 있지만 여론은 비판이 압도적이다. '난감'. 박근혜 정부와 외교 라인 관계자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 심경을 드러내는 단어일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야기된 것일까.

문제는 많지만 한마디로 압축하면 '모든 것을 일본 요구대로' 해결해 줬다는 점이다. 그 확실한 증거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의 합의 당일 발언이다. 합의 발표 당일인 12월 28일, 기시다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후 곧바로 일본 기자들과 비공식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일본 기시다 외상은 질문을 받는다. "이번에 일본이 잃은 것은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기시다 외상의 답이었다.'

"잃은 것이라고 하면 10억 엔일 게다. 일본 예산으로 내는 것이니…"

그 10억 엔 역시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의미하는 '배상'도 아니었다. 그냥 '지원'이라고 했다. 졸지에 세계 경제대국 11위라고 흔히 자랑하던 대한민국이 우리 돈 97억 원 받고 '먹고 떨어지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의 우익진영 인사들의 망언도 이어지고 있다. '소녀상 이전에 관한 문제'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일본 정부의 10억 엔 지원 전제는, 소녀상 이전'이라고 못 박고 있다. 아베 총리 역시 "소녀상이 이전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의 순수한 모금으로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을 어디론가 이전하는 것이 확인된 후에야 일본이 약속한 10억 엔을 줄 수 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모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욕을 자초한 것 역시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다. 한국 정부 입장 발표문에서 일본이 요구한 '소녀상 이전'에 관한 내용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곤궁을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은 그나마 일본 정부가 표명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역시 일본 주요 정치권 인사들의 망언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월 14일에 있었던 일본 집권여당 자민당 소속 사쿠라다 요시타카 전 문부과학성 부대신의 망언이다. 그는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자민당 외교경제 협력본부 등의 합동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해 "직업으로서의 매춘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을(매춘부들이) 희생자인 것처럼 하는 선전 공작에 너무 현혹 당했다"며 망언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부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사실)이 일본과 한국에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명예와 존엄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준 피해자 분들에게 사과한다'는 일본 정부와 아베 내각 대신의 입장을 정면으로 들이 받았다.

그런 지경에 일본 정부의 입장은 별스럽지 않다. 개개 정치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응하지 않으며 기존 입장 발표문이 전부라는 간결한 입장이다. 이게 과연 제대로 된 합의에 기초하여 사과하고 반성하는 국가의 진실한 태도란 말인가.

박근혜에게 전했다는 아베 위안부 사과, 더 기막혀

입장 발표문을 통해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했으나, 이 역시 진심이 담긴 사과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아베 총리의 사과는 더욱 그렇다. 아베 총리는 단 한번도 자신의 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 없는 10억 엔 거부' 입장이 전달된 후, 아베 총리는 "반성은 하되 직접 사과는 없다"는 황당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이미 기시다 외무상을 통해 사과했고, 또 박근혜 대통령과 합의 당일 전화통화를 하면서 사죄와 반성이 담긴 말을 전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모두 끝"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그 전화 사과는 과연 어떤 말이었을까.

"위안부들의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게 다였다. 이것이 그 끔찍한 일본군 성노예로 일생이 짓밟힌 분들에게 아베 총리가 내놓았다는 '사과의 전부'였다. 그러면서 이 말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했으니 더 이상 직접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아베.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아베 총리의 사과 전화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고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의원이 전문 공개를 요구하자 '국가 정상간의 대화'라며 공개 불가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피해 당사자도 모르고, 국민도 모르고, 국회의원조차 모르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합의 과정에 대해 도대체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피해 당사자가 수용할 수 없는 합의, 인정할 수 없어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평화비)을 지키기 위한 제1차 토요시위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대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도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하며 끝까지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 무효와 소녀상(평화비)을 지키기 위한 제1차 토요시위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대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도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하며 끝까지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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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주권을 잃고 식민지배로 고통 받던 시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결할 목적으로' 조선의 어린 여성을 납치한 반인륜 범죄, '일본군 위안부'. 일본 정부의 대표로 참여한 기시다 외교상의 말처럼 그들은 일본 돈 10억 엔에 면죄부를 샀다. 이 돈을 받는 조건으로 우리 정부 역시 '해서는 안 될 잘못된 합의'를 해줬다.

그야말로 외교참사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일본의 우익 세력과 또 그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속내는 말로는 '반성과 사죄'를 언급하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여전히 '자발적인 매춘부'라는 오욕을 씌우고 있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어떤 이는 밭 일을 하던 중 "뭘 물어 볼 것이 있다"는 말에 속아 끌려 갔고, 또 어떤 이는 동네 우물에 물 길러 가는 길에 납치되어 일본군 성노예가 되어야 했다며 일본 정부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울부짖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반인륜 범죄 피해자들을 오늘, 다시 한번 모욕과 고통 속에 떨구는 일이 우리 정부에 의해 벌어졌음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이런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보다 더 미운 것은' 참으로 묘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잘못된 정부간 합의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 국회의 비준 동의도 거치지 않는 합의 선언은 실제로 법적 구속력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정치적 선언일 뿐이다. 1965년, 전 국민의 어마어마한 분노를 샀던 '한일 국교 정상화 조약'도 국회 비준은 받았다.

그런데 한일 관계에서 엄청난 갈등이 존재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때로부터 50년 후인 지금, 국회 동의도 없이 이 문제를 덮겠다는 발상 자체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 동의가 필요없다'고 주장한다는 그런 말장난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그렇기에 피해 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합의 발표가 있고 처음 열린 지난 2015년 12월 30일 1211번째 수요집회에서 다시 일본 대사관 앞에 섰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관련 한일 양국 합의, 파기하라.'

그렇다면 이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요구하는 합의 기준은 무엇일까. 모두 7가지다.

▲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 진상규명 ▲ 국회결의 사죄 ▲ 법적 배상 ▲ 역사교과서 기록 ▲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 책임자 처벌

이것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최소한이다.

피해자도 동의할 수 없는 합의를 해 놓고, 이를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강요는 있을 수 없다. 누가 당해도 마찬가지다. 불가역적이며 최종적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 터무니없다. '권력은 유한하고 역사는 무한하다.' 잘못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파기만이 답이다. 다시 하라!


태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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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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